아래의 내용은 김구원 교수의 <구약꿀팁>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모든 질병을 피한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100세를 넘기지 못합니다. 오늘날처럼 의학이 발달하고 영양이 좋아진 시대에는 100세까지 사는 것이 꿈만은 아니겠지만, 불과 150년 전까지만해도 우리 조상들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넘지 못했다고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요. 성서학자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평균 수명도 40세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물론 왕과 같이 좋은 환경에 살았거나, 특별히 건강한 사람들은 80세 인생도 가능했겠지만, 대부분은 그보다 적은 수명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과 달리 창세기를 보면 1,000년에 가까운 수명을 누린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담은 930세까지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이렇게 긴 수명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모든 사람이 1,000년에 가까운 수명을 누린 것이 아니라 홍수 이전의 사람들만 그랬다는 사실입니다. 홍수 이후 사람들의 수명은 오늘날 인간의 기대 수명까지 내려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홍수 이후에 바뀐 새로운 환경이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켰다고 추정합니다. 예를 들어, 홍수 이전 세계에 있었던 수증기층이 해로운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홍수 이후 변화된 환경 때문에 사람들이 일찍 죽게 되었다는 주장은 '노아'의 예에서 무너집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600세가 넘었는데요. 만약 그 주장이 옳다면,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변화된 환경 때문에 금방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350년을 더 살아, 그의 조상 아담보다도 오래 살았습니다. 따라서 홍수 이후의 환경적 변화 때문에 인간 수명이 줄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와 달리 홍수 이전의 조상들은 1,000년까지 살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홍수 이전의 조상들에게 1,000년 이상 살 수 있는 유전자를 주시고, 홍수 이후의 새 인류에게 열등한 유전자를 주실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홍수 이전의 조상들이 그 이후의 사람들보다 절대로 더 의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담은 그렇게 오래 살 이유가 더욱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선악과를 따먹은 장본인이고, 하나님은 창세기 2장 17절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그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New English Translation은 이 구절을 "In the very day you eat from it, you will surely die"로 번역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930세까지 살았다는 것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홍수 이전의 인류가 누린 1,000년에 가까운 수명들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한다면 이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봉착합니다. 그럼 다른 대안이 없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은 '문맥'입니다. 특히 문학적 문맥과 신학적 문맥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홍수 이전 사람들의 수명이 언급된 창세기 5장의 문학적 문맥이 '족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족보에는 수명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예를 들어 마태복음 1장의 족보)을 고려할 때, 창세기 5장은 조금 특별한 족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왕들의 계보를 나열하면서 그 왕들의 통치 기간을 명시한 수메르의 왕명록(kinglist), 즉 왕들의 족보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과 수메르 왕명록을 비교하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만나게 됩니다. 즉 대홍수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5장 족보의 홍수 이전 인류처럼 수메르 왕명록의 홍수 이전의 왕들도 엄청나게 긴 수명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수메르 왕명록에 따르면 홍수 이전의 왕들은 평균 30,000년 정도를 통치합니다.
창세기 5장 족보와 수메르 왕명록 사이에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평균 통치 연수가 30,000년인 수메르 왕명록과 달리, 창세기 5장 족보에서는 최고 수명이 1,000년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아담이 20,000년을 살았다' 혹은 '에노스가 30,000년을 살았다'라고 기록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성경이 아담의 수명을 930년이라고 말하면 믿고, 아담이 20,000년을 살았다고 말하면 믿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 900년이 아니라, 10,000년을 훌쩍 넘는 수명을 할애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5장은 홍수 이전의 조상들, 타락한 아담과 그의 후예들이 모두 1,000년에 미치지 못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900세는 넘겼지만 한 사람도 1,000년을 넘지는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그날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범한 아담이 그날 죽지 않은 사실과 연결시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신 죽음을 영적인 죽음으로 이해해왔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은 그날에 죽었다고 이해합니다. 이런 이해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날' (히브리어로 욤)이 인간의 '날' 즉 24시간과 다르다는 유대인들의 주장과 관련 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하나님의 '날'은 인간의 1,000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벧후 3:6 참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다는 성경의 기록은 그가 무지 오래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한 날' - 물론 하나님의 한 날입니다 - 도 채우지 못하고 죽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아담은 하나님의 경고대로 선악과를 따먹은 그날 죽은 것입니다.
이런 문학적인 관점에서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수명들을 이해하면, 창세기 5장의 신학적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창세기 5장 족보에 기록된 1,000년에 미치지 못하는 수명들은아담의 후예들도 아담의 죄의 영향 아래 살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도 아담과 같이 죄로 인해 죽는 운명임을 알려 주는 것이죠. 성경 저자가 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 수메르 왕명록에서처럼 수만 년의 수명을 할당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죽음이 죄의 결과'임을 교훈하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5장 족보의 신학적 메시지는 아담의 후예, 즉 인간들이 죄 때문에 죽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홍수 이전 사람들은 무척 오래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 메시지는 구속사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지요.
홍수 이전 사람들이 어떻게 900세 이상까지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답해 보았습니다. 이 질문은 창세기 5장 족보에 나오는 수명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한 것인데, 그 전제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창세기 5장 족보를 유사 장르인 수메르 왕명록과 비교함으로써 창세기 5장 족보에 기록된 긴 수명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즉, 창세기 5장족보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기적적으로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아담의 후예들도 아담의 죄의 영향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