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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인 표현들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작성자심호진|작성시간26.06.19|조회수17 목록 댓글 0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요한계시록 5장 1-4절「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케뤼쏜타)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앜시오스) 하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휴레데)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4장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장엄한 광경을 상세히 기록했던 사도 요한은 이제 방향을 바꾸어, 5장에서는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와 이를 받으신 그리스도에게로 초점을 모으고 있다.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한 것이다. 이 두루마리는 심판과 구원에 관한 책이며, 복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경 책에도 봉해져 있다. 이 말은 성경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다. 에수님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같다고 말씀하셨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지 않으면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그람마)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은 살리는 것이니라" 그람마는 기록 문서 서신 성경 등의 의미다. 성경을 읽으면서 문자에 집착하면 그 속에 있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겉에 있는 것이 율법의 조문(율법주의)이고, 그 안에 있는 것이 프뉴마(영)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고 말한다. 성경은 성령의 능력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증거다. 두루마리는 악팎으로 쓰여져 있다. 겉(문자:율법주의)과 속(성령:그리스도)이라는 의미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율법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율법주의가 된다.

 

일곱인으로 봉해졌다는 것은 하늘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는 것이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하늘의 문이 열리며, 일곱인으로 봉해진 것이 풀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이다. 안팎으로 되어진 의미를 깨닫는다. 천국의 서기관 된 자마다 옛것과 새것을 꺼내온다는 것이다. 두개의 것은 안팎이다. 그 봉해진 것이 열쇠로 채워졌다고 하며, 그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 것이다. 천국 열쇠라고 했다. 성경에 쓰여진 내용을 이면으로 읽는 것이 바로 천국의 열쇠 역할을 한다.

 

마태복음 13장 13-15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사람들이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육(사륵스)으로 듣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말씀을 들어야만 깨달을 수 있다. 사륵스는 종교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것을 의미한다. 때가 되면 열리는 것이 계시가 된다. 그래서 듣고 깨달을 때, 계시록인 것이다. 이 책의 계시된 내용은 6장 부터 소개된다.

 

아노이고는 하늘이 열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케뤼쏜타는 선포하다 라는 의미다. 아시오스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성령이 없는 자는 인을 뗄 수 없다는 말이다. 누가복음 3장 15-16절에서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물은 구약성경의 율법을 상징하기도 한다. 성령과 대비되는 말이다.

 

책을 펼 수 있는 자는 없다는 말이다. 성경을 아무리 올바른 내용을 말을 하지라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인을 떼는 자는 바로 성령이 역사하는 자가 된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봉인된 책이 열리지 않으면 그 자체가 심판이다. 심판받아 죽은 자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어 있으면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진리를 깨달을 수 없으며, 알 수 없는 것이다. 봉인된 책이 열리면 죽었던 영이 깨어나 구원으로 인도된다.

 

오늘날은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깨달을 수 없는 자는 비진리에 속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 책에서 그 가운데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심판의 책(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이 될 수 있지만, 깨달으면 생명의 책(생명 나무)이 될 수 있다.

 

휴레데는 발견되다 라는 의미다. 순간적으로 그 책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있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이 크게 울었다는 표현을 한다. 누군가가 와서 열어달라는 말이다. 인간의 의지로서는 열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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