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장 7-10절『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이에』라는 말은 육체를 입으므로 영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영의 눈이 감겨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육의 눈(자기의 의)이 밝아진 것이다.『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아담이 육체적 알몸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을 벗어난 것 때문에 두려운(부끄러운) 상태가 된 것이다. 일종의 죄의식 상태가 된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지식으로 나무를 바라보니 자기 속의 죄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치마라는 말이 없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었다는 말은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게 하는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열매없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라죽게 했다. 열매없는 나무는 죽어야 함을 말해준다. 부활영생이 없는 나무(악의 지식나무)는 죽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수치를 면하게 하려는 모습이다. 인간은 육이라는 옷(푸쉬케)을 입고 있는데, 이 옷은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탐욕이라는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을 벗고 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이다. 육의 몸이 죽고 하늘로부터 새로운 옷(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의의 옷을 입지 않으면 벌거벗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의 띠는 자기가 엮은 자기의 의를 의미한다. 이사야 64장 6절에서『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그러나 의의 옷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61장 10절에서『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의의 옷은 인간이 스스로 입는 옷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옷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율법은 바리새인들이 가진 율법주의로서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계명이 되며, 장로들의 유전, 교회의 전통을 만들어서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자기의 의를 통해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한 것이다. 인간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망각한채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죄악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나님을 벗어난 것 때문에 두려운(부끄러운) 상태가 되므로, 인간은 우상을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강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영이 흙속에 들어가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죄가 무엇인지 몰랐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사람은 육의 몸으로 모든 영들을 세상에 데려와 죄인들이 되었으며, 마지막 아담은 영의 몸으로 택한 자의 영들을 데려가 의인들이 되게 하셨다.
첫사람 아담(죄인)과 마지막 사람 아담(의인)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육체적 죽음이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 아담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과 동시에 죄의 죽음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의 죽음에 연합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도 죄의 죽음이 발생한다. 죄인들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죄의 죽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첫사람 아담이 데려와서 (죄가 죽고), 마지막 아담이 모든 영들을 데려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죄가 죽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그들도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무화과 나무의 잎 하나 하나는 율법의 한 조항 한 조항들이다. 무화과 잎을 엮듯이 율법을 통해서 벌거벗은 것을 알게해 주겠다는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죄인)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을 알지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은 것은 그들에게 율법이 주어졌음에도, 그들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무화과나무는 율법주의에 빠져 부활생명이 없는 나무를 상징한다. 성경의 흐름을 통해서 볼때,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하시고 싶은 것은 너희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라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 것 심판을 통해서 알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민족을 택해서 율법을 주고 언약을 세워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그 날의 날은 첫째날, 둘째 날과 같은 날(욤)이다. 욤이란 말은『날, 기간, 때』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람이 불때는 히브리어로 『루아흐』다. 즉 『루아흐』라는 히브리어는 바람, 숨쉬다(호흡), 불다, 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여기에서 영은 루아흐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영으로 번역하고, 3장 8절에서는 바람이 불 때로 번역되어 있다. 그래서『그 날 바람이 불때』라는 말은『성령이 오실 때에』라고 번역이 되었어야 한다.
르루아흐 하이욤(לְר֣וּחַ הַיֹּ֑ום )은 『여호와의 날』이다. 이사야 2장 12절에서『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이사야 13장 6절에서『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관계가 깊다.
에스겔 30장 3절에서『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은 신약성경에서는 주의 날로 되어있다.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거니시는 하나님은 임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그래서『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소리를 듣고』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직접 나타나시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9장 18절에서『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하나님이 나타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서 떨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에게 자기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요청했다.『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부끄러워서 숨은 것이 아니라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숨은 것이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듣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묵상하고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벗었다는 것은 영의 몸을 벗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다. 하나님이 왜 아담 앞에 나타나셨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자, 곧 하나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출애굽시켜주시고, 드디어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려고 두려우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동산 중앙에 나무는 하나밖에 없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다. 그러나 그 속에 생명나무가 숨어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사이에』 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말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사이라는 말은 선의 나무와 악의 나무 사이, 즉 복음과 율법 사이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도 좋고, 율법주의도 따르는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뒤에 숨어있는 그들에게, 회개하여 돌아서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찾아서 먹으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주셨는데, 오히려 백성들은 율법 뒤에 숨어버렸다. 그것이 율법주의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생명나무)를 발견하여 먹으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하나님이 아담이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나타내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것은 사탄의 미혹에 의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미혹의 당사자가 사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