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헤미야 1장 8-11절)
8-10.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마알)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마알은 범하다, 은밀하게 감추다, 불충성하게 행동하다의 뜻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를 잊고 다른 신을 찾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국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한 것이다. 여러 나라는 앗수르, 바벨론, 애굽 등을 가리킨다.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육체에 가두고 사탄의 종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범죄한 영들은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나오는 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악의 열매를 먹은 자들이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자기의 의를 의미한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슈브)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슈브는 죄악된 마음에서의 돌이킴, 곧 회개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의 축복된 상태로 회복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
회개는 자신이 행동한 잘못을 돌이키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탐욕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은 계명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계명에 기록된 글자, 문자 그대로 행동하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너희 쫓긴 자(나다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샤칸) 택한(바하르) 곳(마콤)에 돌아오게 하리라”
나다흐는 내쫒다, 추방하다 라는 의미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니다하켐으로 표현되었으며, 나다흐의 수동형 분사로서, 추방된 자, 사로잡힌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회개할 때 다시 본토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무리로 묘사되고 있다.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은 예루살렘이다.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샤칸은 머무르다, 정착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하르는 종교적인 목적에 따라 특별히 구별시키는 행위를 가리키며, 마콤은 구별된 경배 처소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파다)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파다는 대신 값을 지불하거나 그에 상당하는 대체물을 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속해 있던 개인에 관한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을 그 기본 의미로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탄의 종을 사는 그런 개념이다.
주의 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소유임을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은 신분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하신 것 때문이었다.
큰 권능과 강한 손은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바로 이와 같은 문구의 사용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과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동일선상에 올려놓는다. 즉, 이것은 출애굽 때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이전의 형편으로 완전히 회복될 것에 대한 느헤미야의 간절한 염원이다.
11.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종들은 팔레스틴에서 느헤미야를 찾아온 하나니 일행을 가리킨다. 느헤미야가 그들을 이같이 표현한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의 형편을 느헤미야에게 전달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무릅썼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종이 형통하여(찰라흐)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찰라흐는 앞으로 돌진하다, 건너가다, 유익하다, 번영하다 등의 의미다. 하나님께서 종들이 시작한 일을 그 과정과 결과까지 성공적으로 이끄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주어가 하나님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느헤미야를 찾아온 종들을 의미한다. 이 사람들과 페르시야 왕 사이에 느헤미야 자신이 중재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은혜를 입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페르시아 왕은 인간적 입장에서는 대단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한 것을 나타낸다.
은혜를 입는 것은 느헤미야에게 왕의 면전으로 나아갈 수 있고, 소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느헤미야의 소청이 왕에 의해서 기꺼이 받아 들여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술 관원이라는 특별한 지위의 소유자였다는 점에서 위의 두 가지 중 첫째의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느헤미야가 중요 직위에 있었으면서도 이 같은 염려를 한 까닭은, 페르시아왕들의 변덕스러움, 어떤 때는 신하들에게 호의를 베풀다가도 곧 태도를 급변시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왕에게 소청을 했을 경우 그것을 불쾌히 여겨서 심지어는 선대의 왕들이 내린 조서까지도 무효로 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술 관원(마쉬케)이 되었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이미 술 관원의 지위에 있었다. 다시 번역하면, “그때에 술 관원이었느니라”고 번역함이 타당하다. 느헤미야가 하나니 일행이 팔레스틴으로 부터 오기 전에 이미 술 관원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수산궁에 있었다는 점에 의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술 관원의 지위는 대단한 지위를 의미한다. 왕과 대면할 수 있고, 왕의 신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니 일행이 느헤미야를 찾아온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느헤미야가 술관원장이라는 것을 강하게 나타내는 이유는 창세기 40장에서 요셉의 이야기를 은근히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다.
창세기 40장 9-11절「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되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요셉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바, 십자가의 고난 뒤에 부활생명을 얻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창세기 40장 12-13절『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사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후에 부활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술맡은 관원장이 풀려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있다.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느헤미야가 술맡은 관원장으로서, 고난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나가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