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열왕기하 6장 8-23절)

작성자심호진|작성시간26.06.15|조회수14 목록 댓글 0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열왕기하 6장 8-23절)

 

8-14.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그 때는 여호람 왕과 아람의 벤하닷의 전투로. 한편 나아만 사건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다. 진을 치리라는 말은 복병을 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당시에 여호람 왕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민족의 재난을 방관하지 않고 여호람 왕을 도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이와 같이 보임으로 인해 왕이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적군이 매복하고 있으니 함부로 다니지 마소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아람 군사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을 치고 숨어 있는 곳을 미리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경고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아람의 공격은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그 기회를 틈타 오히려 기습을 가하여 아람을 패주 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있어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아람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엘리사로 인하여 아람 왕이 얼마나 곤혹스러워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급기야는 내부의 간첩을 색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엘리사의 명성을 듣지 못한 아람왕의 우매함은 패배를 자초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는 엘리사의 능력을 단순한 점술사의 점괘로 알았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엘리사의 명성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 아람에서도 자자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나 그 밖의 다른 이적적인 사건들이 아람에 전하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도단은 두 우물이란 뜻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사마리아에서 동북쪽으로 약 18km정도 떨어진 도단 계곡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아람 왕이 도단에 있는 엘리사를 잡으려고 한 것은 바로 자신들의 비밀 계획이 엘리사에 의해서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아람 왕은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하여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에워살 만큼 많은 군사들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군대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을 힘으로 잡으려는 것은 무력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15-20.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엘리사가 말하는 것과 사환이 말하는 것은 대조적이다.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라고 말하는데, 사환은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환은 엘리사와 동행한 선지자 생도들 중의 한 명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말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여기에서도 그런 상황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의 눈으로, 제자들은 자기의 지식과 경험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평지에 있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기가 아주 쉬웠다.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엘리사의 사환은 군사들이 왜 성을 포위하고 있는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크게 놀란다. 그는 믿음의 눈이 열려있지 않아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대하여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눈이 열려진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영의 눈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를 보호하는 천군 천사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불말과 불병거가 이 땅에 임재해 있다는 것은 지상의 어떠한 무력이라도 천상의 군대를 능히 물리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람 군대는 밑에서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사의 기도로 그들의 눈이 어둡게 된 것이다. 눈 앞이 가리워져 육의 눈으로 못보게 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나 처지를 전혀 모르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영적 눈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계곡의 언덕 위에 있는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말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급경사가 많고 바람이 많이 불어 험난하기가 말할 수 없는 길인데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어 섰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엘리사의 인도대로 이끌려 간 것이다.

 

이사야 6장 9-10절『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공격하는 자들은 눈이 어두워져서,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지도자들이 그러했으며,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소경이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사망의 길로 인도했다. 마찬가지로 아람 왕은 나아만의 문둥병 치료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깨달았어야 했는데도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다.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마리아 한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이 도단성을 에워쌌던 처음 상황과는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리어 이스라엘 군에게 포로가 되어 죽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아람(시리아) 군인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시력을 회복시켜 준 것은 그들의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21-23.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은 어떤 부자간의 관계를 전제로 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존경과 경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호칭을 사용한 것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가 행한 일에 탄복하여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이스라엘이 포로에게 행하던 관례 즉, 적군이 포로로 잡히거나 항복해서 잡힌 경우를 막론하고 죽였던 당시의 관례에 따라 죽일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람 왕이 관례대로 포로를 죽이지 않고 엘리사에게 물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엘리사는 아람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마리아에까지 유인해 온 것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안겨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참 하나님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아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관대하게 대해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의 권능을 인식케 한 것이다. 포로에게 떡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하는 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한다. 포로들은 죽은 목숨이다. 그러나 떡과 물을 먹으므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는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엘리사)의 은혜로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계시해 주고 있다.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엘리사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죄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회개하여 생명의 떡과 포도주를 마시므로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자가 된 것이다.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엘리사가 나타낸 이적과 더불어 그가 보여준 사랑으로 인해 끊이지 않고 계속되던 아람의 침입이 멈추고 평화가 회복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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