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세기 3장 17-24절)

작성자심호진|작성시간26.06.23|조회수28 목록 댓글 0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세기 3장 17-24절)

 

 

창세기 3장 17-19절『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전체적인 의미는 아담은 첫사람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의 저주를 하시는 것이다.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심판이 내려지고, 고통의 수고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의 생명 열매를 맺게하라는 메시지이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아내가 한 말이 무엇인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말은 그동안 상황을 설명했을 것이다. 여자(천사)가 남편에게『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그리스도)가 여자가 주는 열매를 먹었다. 열매를 먹었다는 것은 여자처럼 사탄의 미혹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영들이 들어가야 하므로 남편(그리스도)이 아내(영들)를 데리고 이 세상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들어간다는 것은 죄의 몸이 되는 것이다. 단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열매를 받아 먹고, 죄를 지었다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표상은 죄를 짊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들어옴으로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땅은 저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

 

땅은 애굽을 상징한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서『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노동(아보다 5647에서 유래)은 고역이다. 애굽은 고역을 의미한다. 5467은 아바다는 섬기다, 경작하다, 예배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진정한 예배가 없는 교회는 지도자의 종살이 하는 모습이다. 어비자와 아들간의 관계가 아니라 섬기는 관계가 된다. 애굽은 파라오(사탄)를 섬기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7-18절의 내용은 첫사람 아담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저주이다. 첫사람 아담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이 땅에서 고난 받는 자를 위해 대속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안식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그의 백성들(하와를 상징)이 그의 소산을 먹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을 하셔야 성도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 예수님도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16-18절에서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예수님이 저주받은 이땅에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다.

 

수고하다(בְּעִצָּבֹון֙  브이짜본:기본형 이짜본 6093)는  6087에서 유래;‘괴로움’, 즉 ‘노동’, 또는 ‘고통’:-슬픔, 수고라는 의미다. 창세기 5장 29절에서『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이짜본)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안위라는 말은 위로하다라는 뜻이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엉겅퀴는 웨다르다르(ְדַרְדַּ֖ר기본형은 다르다르)로 표현되었다. 다르다르는 반복하는 용법으로 사용된다. 호세아 10장 8절에서『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아웬은 공허함, 우상, 사악함을 의미한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우상을 비난하기 위해 아웬의 산당이라는 표현을 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우상의 집으로 타락한 모습이다. 제단에 가시와 찔레가 나온다. 이는 우상의 상징이다.

 

마태복음 13장 17-18절에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예수님은 가시덤불을 비유하여 씨가 그곳에 떨어진 경우를 말씀하셨다.

 

13장 22절에서『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땅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된다. 염려는 분리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선악을 알게하는 지식으로만 나무(율법)를 바라보므로 분리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분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로로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심판이 이루어진다. 사사기 8장 7절에서『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그리고 사사기 8장 16절에서『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라고 했다.

 

호세아 10장 8절에서도 같은 의미의 표현이 있다. 하나님을 떠나 이 땅에 들어온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없이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잘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된다는 것이다. 심판은 말씀으로 심판하신다.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려 함이시다.

 

땅과 밭은 다르다. 밭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개간한 땅이다. 3장 23절에서도『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땅을 갈아서 밭이 되는 것이며, 땅과 밭을 마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아다마는 밭이 아니라 땅이다. 땅(아다마)이 잘 경작되어서 밭이 된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오는 곳은 땅이고, 채소가 나오는 곳은 밭이다. 먼지(아파르)가 물과 섞이므로 땅(진흙:아다마)이 되고 이 진흙을 사람 모양으로 만든 것이 아담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하나님이 심판하실 때까지는 밭의 채소를 먹는다는 것이다. 즉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때까지는 밭의 채소를 먹으라는 것이다. 씨 가진 채소를 내기 위해 그리스도가 사역(수고)하시는 것이다.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하는 것에 대해서 땀은 흐른다는 의미다. 즉 코를 나타내는 것이다. 얼굴에 땀이 흐른다는 것은 열심히 일을 해서 땀을 흘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코를 상징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고, 창세기 7장 22절에서 노아의 홍수때 코로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다고 말한다. 코에서 흘러나와야 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을 것(레헴)은 떡이다. 성소 떡상 위의 진설병이 레헴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은『땅은 가시덤불을 내어서, 인간들은 아무리 자기의 의를 행하려고 해도 심판받을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 때까지 인간들은 밭의 식물을 먹어야 한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코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성령)이 흘러나와야, 떡(율법:약속)을 먹는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지만 결국 심판받아서 죽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 첫 심판이 바로 노아의 홍수였다. 40일 동안 하늘의 창이 열려서 물이 쏟아지고 땅에 있는 호흡하는 생물들이 다 죽었다. 노아와 7명의 가족만 방주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게된다. 떡을 먹게된다는 것이다. 떡은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을 잘 지켜서(떡을 먹고)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다가 율법에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참생명의 떡을 먹으라는 것이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이 말의 궁극적으로는 코에서 흘러나와야(육의 몸이 죽어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즉 율법 속에서 생명(그리스도)을 발견하고 영의 몸을 입게된다는 것이다. 땀을 흘리는 것은 옛사람이 죽는 것이며, 먹을 것을 먹는 것은 새생명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그래서 로마서 6장 4절과 연결된다.『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창세기 3장 20-21절『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와는 생명을 주는 자 라는 것이다. 최초의 여자‘하와’라고 되어있다. 어머니(엠 אֵ֥ם)는 히브리어 철자를 보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자는 아담이 가지고 있는 언약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녀가 뱀을 취하므로 흙이 되어버렸다. 아담은 영적으로 죽은 여자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하겠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첫사람 아담과 함께 세상에 온 영적으로 죽은 지체들을 마지막 아담이 생명을 주어 살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언약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이 여자를 하와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담과 하와가 되었다는 것은 다시 문짝이 하나가 됨을 말한다. 이 말 속에는 마지막 아담이 자기의 영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약속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구원받을 영들을 산자라고 하는 것이다. 하와는 영들을 대표하고, 모든 이 세상에 오는 영들은 마지막 아담을 통해서 구원받을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게 된다.

 

여자라는 명칭은 돕는 베필을 말한다. 돕는 베필(네피쉬하이)은 쌍의 한쪽이 필요한 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다. 즉 하나님 나라로부터 이 땅으로 들어오는 영들을 말한다. 그들은 아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네피쉬하이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말한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만물)은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땅에 들어온 영들은 천사와 같은 모양이다.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버리고 이 땅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죽으면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천사와 같이 되어 돌아간다. 마태복음 22장 30절에서『부활때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영들은 옷을 입어야 하는데, 이 땅에서는 흙으로 옷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늘의 처소(집, 옷)를 입는다 라고 표현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가죽옷은 레위기 1장 6절에서『그는 또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것이요』 라고 되어있는데, 이와 연계되어 있다. 가죽옷을 히브리어로 가죽(오르)의 옷(코트노트)이다. 개역개정에서 가죽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영어성경의 skin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러나 skin은 살도 된다. 즉 가죽이라는 오르는 레위기 1장 6절의 살 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옷은 번제물의 가죽에 해당된다.

 

가죽옷(살과 가죽)에서 가죽에 해당하는 오르는 벌거벗음을 면하다 라는 의미다. 벌거벗다 라는 의미이며 벌거벗은 살을 나타낸다. 벌거벗은 살은 육체이며, 영이 갇힌 곳이기도 하다. 영이 갇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의 영이 옥에 갇힌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세상에 던져진 자들은 다 벌거벗은 자들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인간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벌거벗었음을 면하기 위해 옷을 입히는 것이다.

 

가죽옷에서 옷(코터노트 כָּתְנֹ֥ות )은 긴옷이다. 제사장들이 입는 세마포를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가죽(5783오르 עֹ֖ור)에서 기본어근은 벗다, 벌거벗기우다 라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는 벌거벗기는 모습이다. 그의 죽음으로 입혀지는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한다. 옷을 지어 입히시는 분은 엘로힘이시다. 가죽은 동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가죽은 장막에 사용된다. 장막의 덮개로 사용되는 것이 오르이다. 가죽은 죽음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누군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가죽옷은 유월절 어린양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양들의 목자이시다. 예레미야 50장 6절에서『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이 땅에 흙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이 죽어버렸다. 흙에 갇히므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서 하나님을 알게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혔다는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이 땅에 어린양의 모습으로 내려와 그들의 영을 살리시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가죽옷은 그리스도 안을 상징하며, 노아시대 방주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영들을 데리고 이 세상에 오시고, 다시 영들을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는가? 그들은 양들이기 때문이다. 양들은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제 갈길로 가기 때문이다. 양들은 사탄인지도 모르고 따라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양들의 들어올 수 있는 문(십자가)을 만들어주시는 것이다.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는 좁은 양의 문으로 들어올 것이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돌이키는 자는 살게된다.

 

창세기 3장 22-23절『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 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같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대부분 교회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사람이 선악을 알게하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하나님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라고 말하므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인데 인간이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죄를 범한 것이고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므로 모든 인간이 죄를 지어 죽는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삼위일체의 사상이 엿보인다. 하나같이 되었으니 라는 말은 성부와 그리스도와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은 결국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하나가 되는 자를 의미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될찌니라 에서 한 몸의 하나는『선악을 알게하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가 되었으니』의 하나(히브리어 에하드)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한 쪽(악의 열매)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영생의 열매를 먹게 된다.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들다라는 이쉬라흐(יִשְׁלַ֣ח기본형은 솰라흐7971)는 내보내다, 쫒아내다, 파송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첫사람:그리스도)가 손을 들어(내어쫒겨)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 나라로부터 세상으로 죄의 몸을 입고 내어 쫒긴 것을 말한다.

 

로마서 8장 3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펨포) 육신에 죄를 정하사』

헬라어 펨포는 파송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히브리어 솰라흐와 같은 개념이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은 그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고,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선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기 자신을 판단하여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부활에 이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기를 바라보지 않고 남을 행하여 율법의 잣대로 비판만 하니 율법주의에 빠져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말하는 것이다. 독사의 자식들은 사탄의 자식으로 율법주의에 빠진 자들을 의미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그(첫사람)를 에덴에서 아내셨다. 에덴에서 내쫒았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죄있는 모양으로 세상에 육신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로 분리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범죄한 영들이 세상으로 쫒겨왔다는 말이다. 그래서 첫사람으로부터 죄의 몸을 이어받아 인간들이 된 것을 의미한다.

 

땅을 간다에서 라카흐는 취해졌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문법적으로는 칼 동사 수동태 3인칭 단수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땅이다. 바로 물질세계이며,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을 의미한다. 땅을 갈다의 아바드는 제사장이 성전에서 예배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섬김의 의미다. 그래서 왜 죄인이 되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땅을 간다는 의미는 깊히 묵상하고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내용의 의미가 무엇인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먹지말라고 하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서 아담과 하와가 물질의 땅인 에덴에서 겨났다는 것만을 생각하며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왜 창설하셨는가?

 

아담이 세상에 창조되고 아담이 왜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아담은 왜 생명나무를 먹어야 되는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인간이 왜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 즉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기 위해 에덴을 창설하셨다 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않고 이단적인 해석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무엇인가 설명을 해야 될 것이 있는 것이다. 왜 세상을 창조하게 되었고, 아담은 왜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3장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35절에 이는『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로 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라고 하신 것이다.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옛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옛 비밀한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인데, 옛 비밀한 것이 무엇인가?

 

창세로부터 감추인 천국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씨뿌리는 비유 안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천국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있다고 하는데, 교회사람들은 모르는 것이다. 단지 천국의 비유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정도로 받아들인다.

마태복음 13장 13절에『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라고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생각이 땅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땅에 있는 비유의 이면에 감추인 것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씨뿌리는 비유 안에 창세로 부터 감추인 천국의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그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 지금도 틀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못찾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나기를 원하는 무리들을 하나님 없는 세상을 창조하셔서 내 보내주신 것, 아내신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비유를 베풀어서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인간들에게 말씀해 주시는데, 그것을 기어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이 말을 천사들과 불칼로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 생명나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지켰다』라는 말은『감추었다』라는 말이다. 감추신 이유는 볼 수 없게 감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두었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천사인 것이다. 그룹(케르빔)은 지식의 천사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마귀가 말씀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37장 9절에서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으며 그 얼굴은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속죄소를 보호하는데, 속죄소 안에는 법궤가 있다. 그룹(cherub)은 천사인데, 법궤 안에는 맛나와 십계명,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다고 전한다. 즉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율법)이 있는 것이다.십계명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담겨져 있다.

 

『두루도는(하파크) 불칼』에 대해서『두루도는』이 말은『뒤집어 엎는, 완전히 바꾸는, 변화시키는』이라는 의미다. 불은 창세기 3장 2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불꽃(여호아 하나님, 또는 여호와의 사자)이고, 칼은 성경에서 성령(또는 하나님 말씀)을 표현한다. 즉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생명나무의 길을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려면 천사들을 만나야 되고 두루도는 불칼을 맞아야 된다.

 

천사들을 만나고 두루도는 불칼을 맞으면 죽게된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해서는 천사들이 지키는 율법을 통해서 자기의 의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만나라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위해서는『자기의 의가 죽어야 된다는 것』이 일차적인 의미를 담고있다.

천사들과 두루도는 불칼로 하나님의 생명나무의 길을 지켰다는 말은『감추었다』라는 말인데,

 

마태복음 13장 9-17절의 씨뿌리는 비유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넉넉하게 되되 무룻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비유로 하시는 이유는 말씀 속에 생명나무의 길이 감추어져 있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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