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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을 때의 결과(4) (신명기 28장 30-34절)

작성자심호진|작성시간26.06.10|조회수21 목록 댓글 0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을 때의 결과(4)

(신명기 28장 30-34절)

 

신명기 28장 30-34절「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며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겨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원수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여기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까지 박탈될 것에 대한 내용이다.

 

약혼한 남자는 징집 면제의 특권이 박탈되거나 기타의 상황(전쟁, 약탈 등)으로 인해 약혼자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집을 건축해도 낙성식을 행하지 못하며 파괴될 것이며, 포도원을 조성해도 열매를 거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가축을 잡아먹으려고 할 때에 강도나 폭력으로 인하여 빼앗길 수도 있는데, 전쟁의 패배로 인한 적군에게는 말할 나위가 없다. 모든 가축들이 노략 당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가축을 빼앗기는 것에는 생계의 큰 타격을 입게 되지만, 자녀를 적군에게 빼앗기는 것은 마치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과 같은 비통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기막힌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것들을 정복자들에게 다 빼앗기고 노예처럼 살게 될 것이다. 사사 시대에도 주변 국가들에게 압제를 당하여 기근이 심하였고, 수확을 하여도 그들이 모르게 포도즙 틀에서 숨어서 타작을 하기까지 하였다. 훨씬 뒤에는 아예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식민지가 되어, 조공을 바치면서도 압제는 계속하여 받게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신명기 20장 5-9절「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바이트)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레바브)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하나님은 다음의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게했다.

 

첫째,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다. 여기서 낙성식은 건축물의 공사를 다 마치고 기념하는 의식인데, 건축물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지 못한 자는 돌아가게 했다. 낙성식을 봉헌으로 표현했다.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성막, 성물, 성전을 구별하여 거룩한 목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말한다. 봉헌식은 이를 바치는 의식이다. 낙성식에는 제사가 있고, 그리고 건물이 완공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인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봉헌)과 부활(낙성식)을 기념하는 것이다.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는 전쟁에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므로 전쟁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바이트는 성전을 의미하며, 영적으로는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성전이 세워짐을 믿음으로 바라보지만, 성령이 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둘째, 포도원을 만들 과실을 먹지 못한 자다. 포도원은 영적으로 심령 속의 성전이며, 그 과실은 부활생명의 열매를 의미한다. 부활생명이 없는 자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약혼은 하고 아직 결혼하지 못한 자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처럼, 영적 혼인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넷째,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다.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라고 했다. 레바브는 에워싸이다, 정신없다, 어리섞어 보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영적으로 율법에 마음이 빼앗겨, 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항상 두려움에 사는 신도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인하여 네가 미치리라.”이는 28절에서 언급된 정신적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미치다는 것은 미쳐서 날뛰는 것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하여 마음과 행동을 주체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귀신들린 자로 표현하셨다.

 

마가복음 5장 1-5절「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예수님 일행은 가다라의 한 해변 지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곳에 귀신들린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 나타났다. 이들은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는데 몹시 사나워서 사람들이 아무도 그길로 다닐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보자 소리질러 하는 말이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며 자신들을 내쫒지 말고 그 부근에 있는 돼지떼에게로 보내달라고 간구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내시자 곧바로 많은 돼지 떼가 몰사하여 죽고, 동네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가 달라고 간구하였다.

 

귀신들렸다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자를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체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돼지 떼에 들어간 귀신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군대귀신으로 표현했지만, 마태복음에는 귀신들이라고 표현했다. 가다라 지방은 이방인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귀신들린 자와 같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귀신에게 나오라고 하므로 군대 귀신이 나왔다.

 

누가복음 8장 31절에서는『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 되어 있다. 즉 심판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심판하시지 말아달라는 간청이었다. 군대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허락하셨다. 그런데『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바다는 율법을 상징한다.

 

 바다에 빠져 죽는다는 말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는 율법 아래 죽은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관련해서 애굽의 군대가 다 수장 당해서 죽은 것을 나타낸다. 돼지는 누구인가? 돼지는 율법주의자를 말한다. 그리스도를 발견했지만 여전히 율법을 신봉하고 있는 자들이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낸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예수님의 모친과 육신의 형제들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는데, 서기관들이 예수를 바알세불(귀신의 왕)의 하수인으로 규정한다면, 사탄이 사탄을 쫒아내는 결과가 되어, 논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는 것은 귀신들린 자에게 하나님의 권능으로 죄를 사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가 없어지므로, 귀신이 그를 지배할 권리가 없어지게 된다. 귀신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죄인을 관리하는 천사이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대상은 귀신(천사)이 아니라, 심령 속에 있는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심령 속에 있는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육적자아인 것이다. 영적 전쟁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와의 전쟁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육적으로 탐심이 기본 바탕이 되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통해서 이 탐심이 못박혀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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