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인] [오전 10:06] 이 음성 파일을 들을 때 주님의 레마, 선지자의 레마, 사도의 레마….이어야 탕약이 되는 주체자를 밝히지 않고 있으니, 로고스와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전개가 되고, 레마에 대한 기존의 이해가 이와 같았기에 마치 레마가 로고스와 달리 탕약이 되는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즉 레마 속에 영과 생명의 내용물을 담느냐? 레마 속에 육과 혼 사망의 내용을 담느냐? 따라서 탕약이 되고, 사약이 될 수 있음이 이번 논쟁의 시작이고 마칠 때까지 제가 밝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형제님 이해력과 문해력이라면 처음부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를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마음에 찌꺼가를 여기에서 비롯되어 남아 있습니다.
레마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셔도 어쩔 수 없겠으나, 마음 한켠에 무엇인가? 자리하겠지요.
[라도관] [오전 10:19] 홍형제가 계속 주장한 중심이 댓글로 나타납니다.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인 로고스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조문의 율법으로 가르친 랍비들의 신앙교육과 이를 바로 잡아 다시 가르친 예수의 신앙교육은 다릅니다.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오해한 랍비들의 가르침인 다른 교훈들(레마)를 로고스의 본래 뜻대로 가르친 바른 교리를 구분하지 말라는 주장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그 말씀은 기록된 문서인 성경으로 유전되었고 예수께서 성경을 근거로 다시 해석하신 가르침은 기록된 문서와 살아서 역사하는 말의 생명력이라는 분명한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고후3:6-9절에는 조문의 율법이라고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와 그 말씀의 뜻을 설명해주신 예수님의 증언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교계의 말쟁이들이 주장하는 말장난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교계 말쟁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왜 구태어 로고스와 레마라는 두 가지의 용어를 사용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문서인 성경과 그 성경을 오해한 랍비들의 다른 교훈을...
[라도관] [오전 10:30] 로고스는 기록되어 유전되는 문서인 성경에 있는 말씀이고 예수의 가르침인 레마는 먼 후일에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재해석하신 그 당시에 살아서 역사하는 영과 생명력을 가진 새 교훈이었습니다.
사도들과 증인들이 이 레마 가르침을 이어받았고 현대 교계의 어떤 목회자들은 유대교 랍비들의 다른 교리들을 이어받았습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신앙의 표준을 삼지만 그 때 그때 가르치는 율법선생들의 다른 교리들로 인하여 매 세대마다 영적 전쟁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그 말씀을 기록한 문서인 성경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홍석인] [오전 10:34] 형제님 레마는 거짓들의 말도 성경에서 레마라 표현하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도 레마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고 계시고 인정하십니까?
[라도관] [오전 10:37] 홍형제의 변론은 그게 핵심이 아니잖아요?
로고스는 기록된 성경으로 유전되며 랍비들은 그 로고스를 오해하여 다른 교훈들로 가르쳤으므로 먼 후일 예수께서 오셔서 로고스를 다시 해석해주신 것이 핵심이지요.
왜 로고스와 레마가 다른지 아직도 이해를 못해요?
랍비들의 로고스-기록되어 유전되는 성경 해석은 대대로 그 당시 유대교인들에게로 유전되고 때가 찼을 때 예수께서 오셔서 오해한 로고스의 본 뜻을 설명해주신 새 교훈이 그 당시의 레마로서 그때 그 때 즉시로 살아서 역사하는 영과 생명이지 문자로 새겨진 조문의 율법이 아닙니다.
[홍석인] [오전 10:39] 정말 형제님은 이번 주제가 어떤ㅍ것이었는지를 몰라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교훈에 대한 주제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홍석인] [오전 10:41] 이번 주제는 말과 말씀을 로고스와 레마로 표현하는 것에서 레마라는 고유한 용어에 대한 것이 주제이었습니다.
[홍석인] [오전 10:43] 레마에는 누가 내는 레마에 따라서 전혀 다른 탕약이 될 수도 있고, 사약이 될 수 있는 것이 레마라는 구술로 내는 말(레마)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었습니다.
[라도관] [오전 10:47] 기록되어 유전되는 조문의 율법 말씀이냐? 예수의 새로운 해석 이후로 매 시대마다 증인들에 의해 그 세대에게 주어지는 살아서 운행하는 말씀 증거냐의 문제입니다.
홍형제는 기독교계의 말장난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미혹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요.
기록된 문서인 성경이 그 때그때 달라지나요?
로고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농사 비유이니 밭갈이 때와 씨를 뿌릴 때와 곡물을 기를 때와 열매가 맺히는 때와 결실을 거두는 때가 다르니 로고스를 해석하는 것은 때에 맞추어 달라져야 당연하지요.
오늘 우리에게 이천 년 전, 오백 년 전의 저명한 목회자?들이 가르친 말을 그대로 답습하는 교계의 현상을 보면서도 이런 주장을 계속하렵니까?
[라도관] [오전 10:49] 교계의 말쟁이들은 헬라문화의 인본주의 바탕에서 조직신학 교리로 성경의 참뜻인 진리를 변개하려는 사탄의 사자들이 내뱉은 미혹들입니다.
그들의 가르침(레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진리를 변개하여 올바른 신앙 길을 벗어나게 하려는 마귀의 활동을 대대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홍석인] [오전 10:51] 형제님 레마는 예수님과 제자들 사도들만이 하는 말만 레마이고, 다른 사람의 것은 레마가 아니다라는 그런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제 질문은 간단히 답변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홍석인] [오전 10:52] 이렇게 딱 붙이는 일반화시키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답습하거나 인용한 것도 하나 없습니다.
[라도관] [오전 10:54] 몇번을 반복해요?
유대교 랍비들의 가르침도 레마라는 용어로 표기되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대대로 기록된 로고스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지 다른 경전을 인용하지 않잖아요?
예수님은 왜 그들의 다른 교리를 바르게 고쳐주는 말로 성경을 다시 풀어서 설명해야할까요?
[홍석인] [오전 10:54] 형제님 말대로 조직신학 그런 것을 추정하면 왜 제가 여기에 남아서 교회를 이룬다고 있겠습니까, 이런 말을너무 쉽게 하십니다.
[라도관] [오전 10:58] 홍형제의 끈질긴 주장은 로고스와 레마는 다르지 않으니 구별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논지입니다.
나는 로고스는 기록된 성경으로 유전되나 레마는 그 때 그 때 그 로고스의 뜻을 풀어서 가르치는 새 교훈이라는 것을 반복 증거하는 중이니 로고스와 레마는 당연히 다르지요.
[홍석인] [오전 10:58] 그럼 제가 그들의 것과 구별하지 말자는 주장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위에 글에서 누구의 레마에는 혼과 육 사망의 것을 담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교회 지체들 대부분은 레마이면 모두 신령한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홍석인] [오전 10:59] 이렇게 왜곡시키십니까? 구분하지 말자라고 하는 의미의 한 자라도 찾아주십시요?
[라도관] [오전 11:00] 예수님의 가르침(레마)은 바른 교훈이며 유대교 랍비들의 가르침(레마)는 오류가 섞였다는 뜻이므로 우리는 유대교인들과 동등한 자칭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내어 새 교훈으로 양육하는 증거의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홍석인] [오전 11:03] 100%동의합니다. 이것을 20년 들어왔고 동의하니 현재까지인데, 이런 것을 제가 이의를 달고 그것을 논하자고 지금 이런다고 생각하셨다면 정말 모욕으로 느꼅니다.
[라도관] [오전 11:04] **로고스와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전개가 되고,** 레마에 대한 기존의 이해가 이와 같았기에 마치 레마가 로고스와 달리 탕약이 되는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
이 주장에는 홍형제의 일관된 관념이 투철하게 배여 있어요?
당연히 로고스와 레마는 시차도 다르고 듣는 이들이 이해하는 것도 다를 수 밖에 없으니 대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계에 히.헬 성경으로 말장난하는 자들의 주장은 로고스와 레마는 다르지 않으며 그 때 그 때 가르침을 받는 이들에게 살아서 역사되는 레마 말씀이나 기록된 말씀인 로고스를 구별할 필요가 없이 혼용하라고 그럴듯하게 주장하며 수많은 교인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레마는 때를 따라서 그 때마다 듣는이들 속에서 살아 활동하는 말의 능력이므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과는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홍석인] [오전 11:10] 로고스와 레마를 대조하는 것으로 … 대조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고, 인간의 말이 레마이가 때문입니다.
다만 레마에 무엇을 담느냐? 즉 누구와 함께하는냐? 따라서 대언 증언이 되는 살리는 말이 되는 것이고, 레마가 사탄의 앞잡이로 대적의 말이 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라도관] [오전 11:11] 듣는 이들의 영이 감동을 언제 어떤 증거로 받아 들여서 회심할지는 로고스를 해석하시는 그 영의 증거인 레마 말씀의 역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제회는 기록된 불변하는 말씀과 즉각적으로 살아서 역사하는 해석의 말씀의 차이라고 가르칩니다.
기독교계는 레마는 즉각적으로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라고 하면 펄쩍 뛰면서 극구 반대하지요?
[홍석인] [오전 11:12] 저의 생각 하나를 밝히자면 영과 생명의 레마를 통해서 근원이신 로고스를 추적해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바는 있습니다.
[홍석인] [오전 11:14] 예, 그 영의 레마이어야 함에 100% 동의합니다
[홍석인] [오전 11:15] 영과 생명의 말은 주관적이고 즉각적인 역사에 110% 동의합니다
[홍석인] [오전 11:17] 그런데, 이번 주제는 레마라면 영적이고 생명적인이라 이해하는 것에 대한 수정작업이었지, 지금 형제님의 분별이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라도관] [오전 11:23] 예수님의 가르침과 랍비들의 가르침의 근거는 동일하게 기록되어 유전한 성경이며 성경이 그 때그 때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로고스의 본 뜻인 진의를 왜곡하는 자들의 가르침과 진리를 대언하는 증인들이 당세 사람들을 설득하는 그 내용이 세대마다 부딪히는 것이지요.
[라도관] [오전 11:50] 랍비들의 본능적인 성경지식은 현대 교계의 기득권자들에게 유전되며 예수님의 영과 생명을 얻게 하는 영적 지식은 후사들인 중매자들에게 유전됩니다.
[홍석인] [오후 1:06] 저는 지금도 논한 주제를 분별이라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에서 의아할 뿐입니다. 지금까지 분별과 관련하여 올린 글을 저와 참여한 지체들이 새삼스럽게 들어야 할 말인가? 너무도 당연한 것을 말할 때, 오히려 논하는 주제의 논점을 옮기려는 솔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홍석인] [오후 1:13] 현재 윤형제가 레마에 대한 이해가 어떤한가? 레마이면 해석되고 영적인 신령한 말을 레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고요. 레마이면 영적이고 생명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대표적인 분이 미주교회 유형제님이었습니다. 그분 강론을 들을 때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지어서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저게 맞는가? 생각하면서부터 로고스와 레마에 대한 개념 정립을 한 것이고, 현재의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홍석인] [오후 1:17] 한 마디로 유대교 랍비들이 하는 말은 로고스이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을 레마라고 생각하는 강론들이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레마에 대해서 레마라고 무조건 영적이고 신령한 말이 아니라 사람이 입으로 토설해서 내는 말을 레마라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레마)는 내용을 살펴야 한다는 논쟁이 있었던 이후에는 전혀 레마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형제님은 저의 의도를 이해했구나 생각했습니다.
[라도관] [오후 1:22] 조문의 율법이라고 기록된 말씀은 태초부터 있는 로고스 라고 표기되었고 먼 훗날 때가 차서 오신 예수께서 유대교 랍비들이 대대로 백성의 신앙을 지도하는 표준인 문자로 기록한 성경을 오해하여 그 말씀의 뜻을 본능적인 지식으로 아는 것들을 가르쳐 백성들을 하나님과 분리시켰으므로 예수께서 바른 교훈으로 세세하게 설명하며 가르쳤는데 제자들은 영과 생명의 말씀으로 들려서 즉각적인 생명력이 그 속에서 운행되어 믿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로고스는 기록된 성경 말씀이고 랍비들이나 예수님, 제자들 모두 신앙의 표준을 삼습니다.
문제는 랍비들의 가르침과 예수님, 성령의 가르침이 그 로고스의 뜻을 달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제까지 어떤 성경의 어떤 말씀을 많이 읽었으나 그 영의 큰 감동으로 자신의 영에 역사하는 운동력을 발휘하지 않으므로 본능적인 지식으로 알고 지나치던 말씀이 오늘은 갑자기 영적 생명력을 공급해주심으로 말씀께 무릎을 꿇게 되는데 이것이 레마 말씀의 즉각적인 운동력입니다.
[라도관] [오후 1:25] 랍비들은 로고스 말씀인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이지 랍비들의 가르침은 로고스이고 제자들의 가르침은 레마라고 이해했다면 성경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이해입니다.
[홍석인] [오후 1:30] 당연한 합니다. 이해를 달리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변을 계속 하실 필요가 있을까 합니다.
[라도관] [오후 1:34] 네. 이 정도로 마칩니다.
로고스와 레마는 그 의미가 다르며 레마는 그 당시 듣는 이에게 즉각적으로 운동력을 발휘하여 영적 생명력을 공급해줍니다.
[홍석인] [오후 1:37] 예, 이쯤으로 충분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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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성령과 신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6 왜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생명의 말씀인 로고스는 조물주 자신이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라고 표기되고
먼 훗날 성경의 약속대로 때가 찬 후에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땅의 자기 백성에게 오신 예수께서
유대교의 랍비들이 지금까지 대대로 가르쳐 온(레마) 말을 바른 교훈으로(레마로) 풀어서 설명해주심으로
가르치실 때(레마) 유대교인들은 극구 반대하고 제자들만 믿어서 구원을 얻었는가?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을 왜곡하고 인간 교훈들을 섞어서 혼잡하게 가르친 랍비들은 사실 사탄의 사자들이지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고스 말씀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기록된 성경이 되었고 그 성경은 불변하는 로고스 말씀이나 시공과
상황에 따라 보내신 주의 종들과 마귀의 자식들이 대대로 가르치는 그 말씀들의 뜻이 다르므로 서로를
대적하며 심지어 죽이기도 하면서 유대교라는 종교 체제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신앙의 본질에서 너무 멀리 나가게 되었고 이방의 우상 나라에 포로가 되어 흩음을 당하기도 했다.
오늘날 기독교계는 로고스라는 용어로 표기한 태초부터 계신 그 생명의 말씀과 그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들의
다른 교훈들(레마)은 -
답댓글 작성자성령과 신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6 시간도 공간도 상황도 다르므로 분별해야 한다고 가르치면 극구 반대한다.
레마는 어느 때 누구에게 그 영의 감동을 주시어 기존에 많이 읽던 로고스가 그 때는 그 상황에
맞추어 전혀 달리 읽어지고 영과 생명을 공급하시는 살아서 활동하는 말씀이므로 기록된 글인
성경 말씀인 로고스와는 엄연히 분리된다.
레마 말씀은 시간과 공간, 상황에 맞추어 즉각적인 활동력을 발휘하여 영적 생명력을 공급하시는
살아 계신 말씀이나 로고스는 성경으로 기록된 말씀이므로 성경은 조문의 율법이라고 정의하며
조문의 율법은 죽이는 역할을 하고 영과 생명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율법은 죽은 영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레마라고 기록하셨다.
기독교계는 로고스 말씀이 곧 성경이 되었고 유대인들은 조문의 율법으로 믿으나 참 제자들은
동일한 성경을 풀어서 가르쳐주시는 레마 말씀을 통해서 영적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는 즉각적인
깨달음과 믿음을 주시는 활동력을 가진 말씀이라는 것을 극구 반대하니 그들에게 레마 말씀은
역사할 수 없고 활동력을 가진 말씀을 통해서 로고스 말씀의 영광에 이를 수가 없다. -
답댓글 작성자성령과 신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6 성령과 신부 그 영께서 레마의 말씀을 통해서 즉각적으로 빛을 발해주심으로 로고스 말씀들이
믿어진 신자들에게 활동력을 발휘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이 토론을 통해서
로고스와 레마라는 성경 용어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역할에 대한 확실한 분별을 하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