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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풀이)
우주 만물은 하나(一)에서 생겨 나오지만 그 하나는 시작과 끝이 없는 하나이고, 본래부터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단지 그 이름을 하나(一)라고 부른다.
(질문1) 一(일)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것은 숫자인가 아니면 상징인가?
一(일)은 우주와 만물을 만들어 내는 근원(根源)이자 궁극적 실재(實在)를 의미한다. 이것은 불교의 空(공) 또는 一心(일심)과 유사한 개념이며,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道(도)나 無極(무극)의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삼일신고의 天訓(천훈)에서 설명하는 하늘(天)은 천부경의 하나(一)와 동일한 개념이다. 또한, 서양의 카발라 전통에서는 이것을 무한자(無限者) 또는 궁극적 균형(Equilibrium of Equilibrium)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궁극적 실재의 절대 균형과 조화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一(일)은 사물의 크기나 순서를 나타내는 여러 숫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궁극적 실재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부호로 이해하여야 한다. 천부경에는 모두 11개의 一(일)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숫자적 의미로 사용된 경우도 있고, 여러 개가 모여 하나가 된다는 합일(合一)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궁극적 실재를 상징하는 一(일)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삼일신고의 天訓(천훈)이다. 여기서 설명하는 ‘하늘(天)’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하늘(天)’은 우리민족이 생각한 궁극적 실재인 一(일)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낮에 보는 저 푸른 창공이 하늘이 아니며, 밤에 보이는 까마득한 허공 또한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상도 없고 드러난 속성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위 아래와 사방도 없고, 비어 있어 아무 것도 없는 듯하나 어디 한 곳에도 없는 곳이 없으며, 그 품 안에 들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질문 2) 궁극적 실재(實在)를 상징하는 一(일)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가?
이 문장에서 一(일)은 궁극적 실재의 상징으로 숫자가 아니므로 一(일) 이전의 ‘0’과 같은 기준에 대한 개념이 추가로 필요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므로 어디에서 생겨 났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서양의 카발라 전통에서는 만물의 근원이자 궁극적 실재의 이전(以前)의 상태를 Great Void(대공허)부른다. Great Void(대공허)는 일반적으로 혼돈(Chaos) 또는 무질서(Disorder)라고 번역하는데 이것은 궁극적 실재를 생겨나게 만든 원인이나 주체가 아니다. 궁극적 실재는 우주와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제1원인이자 질서(Order)의 시작이다.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지능(Intelligence)이며, 혼돈이나 무질서는 지능의 부재(不在)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돈이나 무질서가 우주와 만물의 온전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최초의 질서와 이후의 모든 질서를 만들어 내는 궁극적 실재는 혼돈이나 무질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 없이 문득 또는 우연히 자연(自然) 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질문 3) (一)始無始(一)에서 始無始(시무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러한 표현은 일상적인 문장이나 대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에 해석하는 방법이 매우 다양하고 혼란스럽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주로 불교 경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장 구조이다. 불교에서 궁극적 실재 또는 근본 마음자리를 상징하는 용어가 空(공)이나 一心(일심)이다. 空(공)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두루 가득하다는 의미로 서로 상반된 의미의 단어가 같이 섞여있는 표현이다. 이러한 문장구조가 空(공)의 속성을 문자로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에 서로 상반되는 글자를 동시에 묶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말하는 一(일)의 개념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적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一(일)은 그 안에서는 아무 것도 구별되지 않는 전체적 하나(一)이기에 무엇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이나 우주와 만물이 모두 여기서 나왔으니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있고 없음이 공존하는 절대적 균형 상태와 시작과 시작함이 없는 것이 공존하면서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양자역학의 발견으로 空(공)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전까지 과학계에서 서로 상반되는 속성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빛의 입자적 속성과 파동적 속성이 서로 별개의 현상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발견으로 빛(양자)은 관찰자의 의도에 따라 입자로 인식되기도 하고 파동으로 인식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빛(양자)은 관찰자의 의도 없으면 입자와 파동이 어느 하나로 드러나지 않고 공존하다가 관찰자의 의도가 더해지면 비로서 입자나 파동의 속성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언어로 표현하려면 一(일)과 空(공)은 ‘A’와 ‘not A’의 집합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은 전체적 하나로서 궁극적 실재인 一(일)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구조로 ‘一(일)은 始無始(시무시)하고 終無終(종무종)하는 一(일)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궁극적 실재는 전체적 하나(一)의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없다. 궁극적 실재인 一(일)에서 생겨난 것은 모두 부분(部分)이며, 부분은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이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전체(一)는 ‘바다’라고 할 수 있고 ‘바다’는 무한하며 시작과 끝이 없지만 바다에서 생겨난 ‘파도(만물)’는 유한하며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一(일)은 천부경의 정수(精粹)이며, 81자의 숫자와 문자가 모두 一(일)에 녹아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주와 만물은 외부적으로는 각각 형상과 속성이 다르게 보이지만 모두 一(일)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실상은 한 순간도 궁극적 실재인 一(일)을 떠난 적이 없지만 인간은 스스로 착각과 환영을 일으켜 자신의 본래의 형상과 속성을 망각하고 물질적 존재로 추락하였다. 이제 천부경의 가르침으로 전체적 하나인 一(일)을 회복하여 자신의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내야 할 시기가 도래하였다. 마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착각과 환영이 만들어 내는 분리의식을 극복하고 태양보다 밝은 내면의 진면목을 바로 보라는 것이 천부경의 핵심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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