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도 중고로 산다…30만건 시장 뒤에 남은 ‘검증 공백
거래는 열렸지만 책임은 사라졌다…건기식 개인거래, 안전 관리 시험대
정가보다 싸다는 이유로 시작된 건강기능식품의 중고거래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일상으로 번지고 있다. 거래 규모가 이미 30만 건을 넘어섰지만 제품의 개봉 여부나 보관 상태, 유통 이력을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미개봉 제품’이라는 기준은 판매자 진술에 의존할 뿐이고, 플랫폼이 모든 거래를 사전에 검증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존 유통망에서라면 제조사부터 판매자까지 이어지는 책임 구조가 작동하지만, 개인 간 거래에서는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물을 곳이 없다. 소비자 편익을 앞세운 제도 실험이 관리 공백 속에서 새로운 건강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건강기능식품을 사고파는 ‘리셀’이 빠르게 일상화되고 있다. 과거 의류·전자제품 중심이었던 중고거래 시장이 이제는 건강 관련 제품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홍삼,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 등 품목도 다양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제품 소비 자체가 늘어난 것이 중고 시장 확대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래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명절 선물로 받은 고가 제품이 절반 가격에 올라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용량 제품을 구매한 뒤 일부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판매하는 방식도 흔히 나타난다. 일부 계정에서는 동일 제품을 반복적으로 판매하며 사실상 ‘소규모 유통’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개인 간 거래라는 외형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유통 채널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의원이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과 ‘번개장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5월부터 2025년 5월까지 두 플랫폼에서 거래된 건강기능식품 중고거래 판매액은 총 33억 58만 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판매자는 9만 3755명, 판매 게시물은 30만 122건에 달했다. 다만 해당 수치는 플랫폼 제출자료를 기반으로 집계된 것으로, 전체 시장 규모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책도 변화했다. 지난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거래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도입했다. 미개봉 제품에 한해 플랫폼 내 거래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정부는 개인 간 거래 허용이 단순 규제 완화 차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범사업 도입 당시 이미 온라인상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거래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해 관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개봉 제품만 허용하고 거래 횟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편익과 안전 관리를 동시에 고려했다는 것이다.
현재 건기식 개인 간 거래 기준은 ▲미개봉 제품 ▲실온·상온 보관 제품 ▲소비기한이 남아있는 제품 ▲연간 거래 횟수 제한(1인당 연 10회까지 거래 가능) ▲건강기능식품 마크가 표시된 제품 ▲1개 게시글에 2개 이상 물품 판매 금지 ▲제품 기능이나 효과 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거짓·과장 광고 금지 ▲해외 직구 제품 판매 금지 등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실제 시장 확대 속도가 정책 설계 당시 예상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래 규모가 급증하면서 당초 의도했던 ‘제한적 관리 모델’이 현실에서는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가 키운 시장, 통제는 더 어려워졌다
개인 간 거래 확산의 핵심 요인은 가격이다. 동일 제품이 기존 유통가 대비 상당폭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가격 구조는 공급 특성에서 비롯된다. 선물용으로 유통된 제품이나 대량 구매 이후 남은 물량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저가 공급이 형성된다. 판매자는 빠른 처분을 위해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구조다.
플랫폼 환경 역시 확산을 가속화한다. 모바일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은 검색·비교·거래가 모두 간편하게 이뤄진다. 소비자는 가격을 기준으로 빠르게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건강기능식품을 ‘건강관리제품’이 아닌 ‘가격 중심 소비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유명 브랜드 비타민이나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정가 대비 절반 이하 가격에 올라오는 사례도 쉽게 확인된다. 유통업계에서는 고물가와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서 건강기능식품 소비 역시 가성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은 일반 식품보다 가격대가 높은 경우가 많고,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수십만 원대에 형성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개인 간 거래를 통해 가격 부담을 줄이려는 수요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개인 간 거래 허용이 오히려 시장 확대를 가속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에는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거래가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면서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졌고, 결과적으로 거래 규모 자체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결국 개인 간 거래 시장은 정책보다 소비자가 먼저 키운 시장이라는 점에서 통제 난도가 높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수요가 유지되는 한 단순한 규제만으로 시장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형성된 소비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단순 금지보다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개인 간 거래를 전면 금지했던 과거에도 음성 거래는 사라지지 않았다. 수요가 존재하는 한 거래는 이뤄진다는 점에서, 규제의 초점을 금지보다 관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검증 공백이 만든 구조적 리스크
현재 개인 간 거래는 일정 기준을 충족할 경우 허용되지만, 실제 거래 환경에서는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만 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강제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가장 큰 문제는 품질과 안전성이다. 건강기능식품은 보관 환경에 따라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 온도와 습도, 보관 기간 등에 따라 성분 안정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개인 간 거래에서는 유통 이력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특히 ‘미개봉’ 기준은 사실상 판매자 진술에 의존한다. 소비자는 제품 상태를 사전에 완전히 확인하기 어렵고, 거래 이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
실제 거래 현장에서는 시범사업 가이드라인과 충돌하는 사례도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소비기한이 충분히 남지 않은 제품이 거래되거나, 낱개 분리 판매·개봉 여부가 불분명한 제품이 게시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부 계정에서는 동일 제품을 반복적으로 판매하며 사실상 영업 행위와 유사한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미개봉 제품 중심의 제한적 거래’라는 시범사업 취지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재 구조상 플랫폼이 모든 거래를 사전에 검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부작용 위험 역시 존재한다. 건강기능식품은 개인의 체질이나 기존 질환, 복용 중인 의약품에 따라 부작용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고, 특정 성분은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기존 유통망에서는 판매자 상담이나 제품 설명을 통해 일정 수준의 정보 전달이 이뤄지지만, 개인 간 거래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되기 쉽다. 소비자는 가격과 브랜드 중심으로 제품을 선택하고, 섭취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주의사항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불법 제품 유통 가능성도 문제다. 검증되지 않은 해외 직구 제품이나 국내 인증 여부가 불분명한 제품이 개인 거래를 통해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다른 영역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5년 5월 12일부터 30일까지 3주간 중고거래 플랫폼을 점검한 결과, 의약품 불법 판매 게시물 2829건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2648건은 플랫폼 자체 모니터링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은 규제 수준에 차이가 있지만, 개인 간 거래라는 유통 구조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이번 적발 사례는 관리 공백의 선행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구조의 가장 큰 문제로 추적 불가능성을 지목한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제조 문제인지, 보관 문제인지, 유통 과정 문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인 간 거래를 통해 구매한 제품에서 이상반응이 발생하더라도 유통 경로 정보가 없어 원인 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거래에서 별도로 집계된 피해 통계는 아직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 발생해도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구조”라는 우려를 제기하는 이유다.
책임 없는 유통…기존 시장과 충돌하는 ‘비대칭 구조’
개인 간 거래의 확산은 기존 유통 구조와의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책임 체계다. 기존 유통망에서는 제조사, 유통사, 판매자로 이어지는 책임 구조가 작동한다. 제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유통 경로를 추적할 수 있고, 일정한 보상 체계도 마련돼 있다. 반면 개인 간 거래에서는 이 같은 책임 구조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판매자는 일반 개인이며 거래는 일회성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묻기 어렵고, 환불이나 보상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 역시 중개자 역할에 머물러 있어 책임 범위가 제한적이다. 거래 당사자 간 분쟁이 발생하면 소비자가 직접 감당해야 하는 구조로, 결과적으로 위험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는 거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어, 피해 구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기존 판매자는 보관 기준, 표시 규정, 광고 제한 등 다양한 규제를 준수해야 하지만, 개인 거래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환경에 놓여 있다. 동일 제품이 서로 다른 규제 수준에서 거래되는 비대칭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이는 법을 준수하는 기존 사업자에게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정책은 현재 갈림길에 서 있다. 시장은 이미 형성됐고 수요도 존재한다. 단순 금지로 회귀할 경우 음성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현행 구조를 유지할 경우 관리 공백이 고착화될 수 있다. 어느 쪽도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 핵심은 허용 여부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다.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거래는 이미 일상 속 소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를 관리할 기준과 책임 체계는 여전히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장의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거래 이력 추적, 플랫폼 책임 강화, 정보 제공 의무 확대 등 구체적인 보완 장치 마련이 이제 정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출처 : https://www.next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