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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3) 전쟁의 원인

작성자가야전원교회|작성시간26.06.10|조회수30 목록 댓글 0

성경관통주제 전쟁 3

전쟁의 원인!

욥기 1:6~12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모순을 설명하다]

 

신학 과목 중에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고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이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설명이 신정론입니다. 성경 관통 주제인 ‘전쟁’에 대한 설교도 어쩌면 ‘신정론’에 속할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 세 가지를 동시에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이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실제로 존재한다.” 맞습니까? 그렇다면 모순 아닙니까?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선하시다면 악의 근원인 사탄을 없애 버려서 이 세상에 불행과 고통을 제거해 주셔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모순입니다.

 

신자들이야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이 세상에 악과 고통을 모두 제거하신다는 성경의 결론을 알기에,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지만,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있어도 극심한 불행과 고통을 당하면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대부분은 내가 잘못해서 내가 잘못 선택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의하고 싶어도 세게 항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과 전혀 상관없이 닥치는 불행과 고통이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욥이 당하는 불행과 고통이 그런 경우입니다. 욥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 또 현재에도 자신의 잘못과 전혀 상관없이 불행과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살다 간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정도로 살고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욥기는 자기 잘못과는 전혀 상관없이 닥치는 불행과 고통에 대해 사람이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런 문제, 자기 잘못과 선택과는 상관없이 닥치는 불행과 고통에 대해 성경은 진작부터 설명하고 있고, 성경을 진리로 믿는 신학자들도 오래전부터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354년생으로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로마의 수도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신학자이자 교부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선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천사들에게 자유를 주셨고, 사람에게도 자유를 주셨다. 그 결과 사탄이 타락하여 악이 생겨났고,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미혹을 받아들이므로 이 세상에도 악이 들어 왔다. 따라서 악은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선이 결핍된 상태다!”라고 악의 기원에 대해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어둠은 따로 창조하지 않아도 빛의 결핍으로 생겨납니다. 추위는 열의 결핍으로 생겨납니다. 이 논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사람이 하나님과 그분의 도를 멀리하면 할수록 어둠과 악이 그림자처럼 그 사람을 덮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라는 시편의 고백은 진리입니다. 어둠에 다니지 않으려면 예수님을 가까이하여 따르셔야 합니다.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일서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즉시 악을 제거해 주시지 않는가?”라는 의문입니다. 정통 신정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나 천사에게 주신 자유를 존중하신다. 사람이 악한 선택을 할 때마다 하나님이 즉시 개입하신다면 실질적인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다. 타락한 천사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나님은 악이 활동하는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신다!”

 

대표적인 예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무죄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며 악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창세기의 기록과 로마서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으로 더 좋은 일을 이루십니다. 성경에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본문의 욥은 까닭도 모른 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이 당한 고통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둘째는 욥의 영성을 업그레이드되게 하시고, 셋째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 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진리를 만민에게 알게 해 주셨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은 고통당한 욥을 충분히 보상해 주십니다. 욥은 이 땅에서 보상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보상받게 됩니다.

 

 

[욥이 고통을 당한 원인]

 

설교의 주제가 ‘영적 전쟁’이므로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욥이 겪은 고통의 원인은? 하나님 잘못입니까? 사탄의 잘못입니까? “하나님이 괜히 사탄에게 욥을 자랑해서”라고 생각하시면, 성경을 고민하면서 읽지 않아서입니다. 성경을 고민하면서 읽으면 본문 7절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괜히 또는 사탄이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몰라서 질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기록에 죄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해서 숲속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질문하심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질문한 것이 아님과 같습니다. 또 창세기 4장 기록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여 시체를 감추어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 몰라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신 것이 아님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행적과 생각을 이미 다 아시기에 사탄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즉, 8절 기록에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하심은 사탄이 욥을 아나? 모르나?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이미 욥을 주의하여 보았습니다. 왜 주의하여 보았겠습니까? 9절, 10절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나? 하나님이 잘해 주시니 잘 섬기는 것이지? 저놈도 고통을 당하거나 불행해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할걸” 생각한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원리]

 

욥기에서 배울 수 있는 영적 전쟁의 원리는 첫째, 사탄의 악의에서 시작됩니다. 본문에서 사탄은 이미 욥을 공격하고 싶어서 욥을 주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의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하신 말씀을 직역하면 “네가 너의 마음에 나의 종 욥을 두었는가?”가 됩니다. 그러면 사탄이 왜 욥을 자기 마음에 두었겠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너무 잘 섬기니까 심사가 뒤틀려서 어떻게 하든지 욥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게 만들어 보고 싶어서 주목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전쟁은 사탄의 악의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에게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둘째,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11절 기록을 보면 사탄은 하나님께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탄에게 한계를 정하고 “그래 보라”고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왜 사탄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욥이 사탄의 시험을 이길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이 당한 고통을 선으로 바꾸실 계획을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예수님도 사탄이 성도를 공격하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사탄을 통제하고 계심을 말씀하시는 듯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말씀을 보면 사탄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공격하여 넘어지게 하려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시몬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드로는 시험에 들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고 후에 다시 주님의 충실한 제자가 됩니다.

 

셋째, 영적 전쟁의 승패는 내게 고난이 있고 없고, 내가 행복하고 불행하고, 나의 재산이 불어나고 줄어들고, 심지어 죽고 살고 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고통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끝까지 인정하고,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할 때 승리하는 것입니다. 욥기는 그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영적 전쟁에 대한 다른 관점]

 

하지만, 영적 전쟁을 다르게 설명하는 신학자들도 물론 있습니다.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 중에 God at War (전쟁의 신)이라는 책을 쓴 Gregory A. Boyd (그레고리 A. 보이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악과 고통이 동시에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 세상은 하나님이 완전히 통제하는 무대가 아니라, 하나님과 악한 세력이 실제로 싸우고 있는 전쟁터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히브리서 2: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보이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불행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섭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저항과 반역의 결과라고 합니다. 보이드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이 세상에는 반역한 천사들과 악한 세력들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역사한다고 합니다.

 

보이드는 “하나님이 모든 사건을 미리 계획하고 통제한다.”라는 『청사진 세계관』을 반대합니다. 즉,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주장을 반대합니다. 보이드는 『전쟁 세계관』을 주장하는데 전쟁 세계관이란?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사탄의 세력이 충돌하는 전쟁터인데 악은 하나님의 직접적 의지가 아니라 반역한 영적 존재들과 인간의 자유로운 반역에서 나온다”라고 주장합니다.

 

보이드는 예수님의 사역도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보이드는 복음서의 핵심은 죄 사함뿐만 아니라, 악한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진격에 대한 기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리고, 사탄이 임금 노릇하는 이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오셨는데 그 자체가 영적 전쟁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보이드의 주장에서 제가 깨달은 바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영적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하셨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교회는 전투해야 한다]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이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신정론이 맞는지? 현대의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이 맞는지? 에 상관없이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는 사탄과 악한 세력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결정적 승리를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승리를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교회도 주님의 능력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1:19~22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우리가 할 일은 마귀의 최고 무기는 미혹이므로 마귀의 미혹, 다른 말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마귀에게 공격할 빌미를 주지 않는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적 전쟁은 기도와 중보 기도로 합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여러 성도를 위해 중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6:10~12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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