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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와 직녀

작성자숲을지나서|작성시간16.07.09|조회수165 목록 댓글 0

http://tip.daum.net/question/3572251/5712366?q=%EA%B2%AC%EC%9A%B0+%EC%A7%81%EB%85%80+%EB%B3%84


전설과 유래 칠석의 유래 이 이야기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 한대(漢代)의 괴담(怪談)을 기록한 책인 《재해기(齋諧記)》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7월 7일 저녁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졌던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 는 자연적인 현상에서 성립되었다. 즉 천문학상의 명칭으로 견우성(牽牛星)은 독수리별자리鷲星 座의 알타이어(Altair)별이고, 직녀성(織女星)은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Wega)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원래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의 둑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별은 태양 황도상(黃 道上)의 운행 때문에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고, 봄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며 칠석 때면 천장 부근에서 보게 되므로 마치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최남선은《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1년에 한 번씩 마주치게 보이는 것은 일찍이 중국 주대(周代) 사람들이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天象)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耽奇的)인 요소가 붙어 한대(漢代)에 와서 칠석의 전설이 성립된 것이라고 하였다. 


ㅇ 참고로 한중로 견우와직녀 우리나라- 날 하늘나라의 옥황상제에게 직물을 잘하는 공주가 있었다. 너무나 옷감을 잘 짜기 때문에 직녀라 했다. 시위를 찾는 중에 소를 잘 먹이는 청년을 찾았다. 그는 소를 잘 먹이기 때문에 견우라 했다. 둘은 결혼을 했는데 옥황상제의 뜻을 거슬려 옥황상제는 견우를 동쪽에, 직녀를 서쪽으로 유배를 보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1년에 한번씩 만나도록 했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가 이를 어기자 옥황상제는 은하수 다리를 끊어버려 둘은 왕래하고 만날 수가 없어 사랑의 회포를 풀 길이 없어졌다. 견우와 직녀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까치와 까마귀는 해마다 7월 7일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주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견우와 직녀는 까치와 까마귀가 놓아준 다리를 건너 1년에 한번씩 만나 사랑의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의 회포도 풀기 전에 새벽에 닭이 울고 동쪽 하늘이 밝기 시작하면 두 사람은 다시 이별을 해 견우와 직녀는 또다시 1년을 기다리며 베를 짜고 소를 키우며 외롭게 기다려야만 했다. 7월 7일 즉 칠석 날엔 지상에 있는 모든 까치와 까마귀는 견우와 직녀를 돕고자 하늘로 올라가는데 어쩌다 남아있는 것은 병들어 하늘에 가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또 까치와 까마귀와 다리를 놓았기 때문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이 다리를 오작교라 불렀으며, 칠석 날 저녁에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견우와 직녀가 상봉해서 흘리는 기쁨에 눈물이라 말하고, 이튿날 새벽에 비가 오면 사람들은 이별의 눈물이라 했다. 


중국- 중국에서는 '우랑', 우리나라에서는 '견우'라고 부른다. 전반적으로 내용이 비슷한데 중국의 '우랑직녀'는 우리나라의 '견우직녀'와 '선녀와 나뭇꾼' 두가지 내용이 짬뽕되어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 고아인 견우가 자기의 소를 형제같이 끔찍히 잘 보살펴준다. 이 소가 늙어 죽게 되었는데, 그 때 사람의 말로 견우에게 얘기를 해 준다. 모월 모일 모시에 어느 장소에가면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으니 옷을 감추라고... 그리고 자기가 죽거든 가죽을 보관했다가 위급한 순간이 오면 펼쳐보라고하고는 죽는다. 견우가 그대로 따라해서 직녀와 같이 살게 된다. 그런데 인간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직녀를 괘씸하게 여겨 하늘에서 강제로 끌고 가 버린다. 그 때 견우가 소의 유언대로 보관하던 소가죽을 펼치니 소가죽이 견우를 태우고 저절로 날아서 하늘로 데리고 가 준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역사적으로 밀접한 교류가 있다보니 견우직녀외에도 비슷한 설화들이 많다. 이러한 설화가 중국에서 유래가 되었을 수도 있고, 중국 외에 다른 곳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흘러 들어 올 수도 있고, 고대에 시작되어 수많은 각색을 거쳐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수도 있다. 7월7일을 칠월칠석이라하여 기념(?)하는 것은 중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 같다. 


일본- 우리의 견우직녀신화를 축제화 한 '타나바타 마쓰리' 일본 쿄우토에는 매년 5월에 열리는 해바라기 마쓰리葵祭(아오이 마쓰리), 기원 마쓰리祗園祭(기온바쓰리), 시대마쓰리時代祭의 3대 마쓰리가 있고, 이에 필적할만한 마쓰리로 7월 칠석날 열리는 타나바타 마쓰리七夕祭가 있다. 타나바타 마쓰리는 우리의 칠석제처럼 음력 칠월칠석날 지내지 않고 양력으로 지낸다. 이 날 비가 오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은하수를 건너지 못하므로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이 전설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칠월칠석 전날 밤 사람들은 대나무로 특별한 장식물을 꾸민다. 거기에 자신의 희망이나 소망을 종이短冊에 써 대나무에 매달아 별에 기원한다. 칠석은 일본어 타나바타(棚機, 七月)라고 하는데, 특히 센타이仙台 지역의 칠석제가 특히 유명하다. 일본의 오절목五節目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축제는 나라奈良시대에 시작하였는데, 견우성과 직녀성의 만남을 축하해 집 마당에 대나무를 세워 오색 종이에 노래 말과 글을 써서 나무판枝葉으로 장식한다. 그리고 자기의 희망, 소망 등을 별에게 들어달라고 기원한다. 당초에는 일본 궁중에서만 지내던 축제였는데, 근세에 와서 차츰 민간에 보급되면서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어 성대한 축제가 되었다. 그러나 근세에는 이 축제가 별에 기원한다는 의미가 퇴색하고 칠성을 장식하는 취향쪽으로 기울어졌다. 즉 롱籠이나 단책 띄우기 등으로 장식의 규모가 화려해지고 대규모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소망 등을 기원하는 축제에서 꾸미기 장식 축제로 둔갑한 감을 준다. 그렇다고 해도 이 축제처럼 전국 각지에서 성대하게 열리는 축제도 없다. 쇼와昭和 54년 브라지의 쌍파울로시에 이 축제가 소개된 이래 그곳 축제로 정착하고 제 7회 때부터 '센다이 축제'로 그 명칭까지 붙이고 있다. 그리고 쌍파울로주의 연간 예산까지 활당 받으며 등록되어 있다. 이를 일본 사람들은 일본의 문화나 축제가 외국에 소개되는 예는 흔하지만 일본의 고유한 축제 즉 마쓰리가 외국 대도시의 축제로 전래된 예는 역사상 없는 일로 자신들도 놀라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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