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tip.daum.net/openknow/3701098?q=시헌력
달력과 사주팔자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의 4가지 시간단위는 사람의 운명을 받쳐주는 ‘기둥’이라고 해서 사주(四柱)라 부른다. 그리고 사주의 각각에 부여된 여덟 글자의 간지를 팔자(八字)라고 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이 여덟 글자의 상호관계를 일정한 법식으로 풀어내 길흉화복을 점친다. 예를 들어 1999년 3월 27일 12시에 태어난 사람은 기묘년(己卯), 정묘월(丁卯), 무인일(戊寅), 무오시(戊午)에 태어났다. 여기에서 연월일시를 사주라 하고, 기묘, 정묘, 무인, 무오의 여덟 글자를 팔자라고 한다. 또한 이 여덟 글자를 사이의 관계를 따져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원리를 기초로 정립된 합(合), 형(刑), 충(冲), 파(破), 해(害) 등의 관계들이 어떻게 배치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서 그 운명의 길흉을 얻는다. 예를 들어 간지가 신자진(辛子辰), 사유축(巳酉丑) 등으로 배치된 것을 합이라고 하는데, 이는 길한 경우이다. 인-사(寅-巳), 자-오(子-午), 오-묘(午-卯), 묘-신(卯-辛) 등의 관계는 흉한 것으로 친다.
운명학에서 논의하는 사주팔자에서 잘 볼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운명을 결정하는 기둥은 자연의 시간이다. 다만 이 시간을 단위에 따라 간지라는 일정한 규칙을 부여한 것일 뿐이다. 또한 간지는 역법이 규정하는 달과 날짜의 변화 규칙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니 사주의 기초에는 역법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음력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날짜와 달, 일년의 변화를 규정한다. 반면 태양력이라 하면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날짜, 달, 일년의 변화를 규정한다.
우리나라에서 운명학은 모두 음력을 따르므로 운명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양력이 운명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음력은 사람의 운명을 정확히 반영하고 양력은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운명학은 사람이 태어난 시간에 그를 둘러싼 모든 자연환경이 특정한 상태에 있고 그 환경이 태어나는 사람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데, 음력과 양력의 차이는 바로 운명학의 비과학성을 보여주는 첫 번째 근거가 된다.
음력이 양력보다 운명을 더 잘 반영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지지될 수 있을까? 음력과 양력의 가장 큰 차이는 달에서 볼 수 있는데, 음력은 달의 삭망주기 29.5일을 기준으로 하므로 29일과 30일이 번갈아 들어 1년을 354일에 맞춘다. 그러나 양력은 30일과 31일이 번갈아 들어 12달을 365일에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양력과 음력의 차이에 해당하는 11일이 매년 쌓여 3년에 한번씩 윤달을 두어야 음력과 양력이 같아진다. 순수태음력을 사용하여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 이슬람권이나 집안의 제사일을 음력으로 챙기는 동아시아에서는 아직도 음력이 강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은 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달빛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자연에서 달보다는 태양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달력은 태어나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완전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지만, 계절에 따라 낮 시간과 밤 시간이 다르고, 음력의 달은 윤달을 넣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계절에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운명학이 기초로 하는 간지, 시간, 천체의 배치 등은 너무나 부정확하게 자연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간지를 규정하는 역법은 역사적으로 수백 수천의 서로 다른 역법이 쓰이다 바뀌었으며, 중국에서 국가적으로 역법을 바꾼 것만 해도 수십 차례를 넘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과연 운명학이란 그 토대가 얼마나 부실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법의 역사에서 참으로 희한한 일이 조선 현종 때에 벌어졌는데, 여기에서도 사주팔자의 비과학성을 잘 볼 수 있다. 흔히 조선후기에는 약 250여 년간 계속해서 時憲曆을 사용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학을 들여와 청나라에서 그것을 토대로 시헌력을 적용해 쓰자 이에 대해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많은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왜 전통적이 역법을 버리고 서양의 역법을 쓰냐는 것이었다. 청나라에서는 1645년부터 시헌력을 사용해왔지만, 하도 불만이 비등하여 1667년부터는 예전에 명나라에서 쓰던 대통력을 다시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달력을 바꾸게 되면 달력을 만드는 규칙이 변하므로 사주팔자에서 규정하는 시간의 의미도 달라져 버린다는 점이다. 시헌력에서 대통력으로 달력을 바꾸어 쓰자 윤달의 위치가 달라지고 큰달(30일), 작은달(29일)의 순서도 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청나라에서 1667년부터 시헌력을 대통력으로 바꾼 이상 조선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조선에서 지금까지 시헌력으로 조상의 제사를 지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달력이 바뀌었으니 바뀐 달력으로 다시 계산하여 조상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조선에서는 시헌력이 사용된 1654년부터 1666년까지 지금까지 시헌력으로 지내던 날짜를 대통력으로 다시 계산하여 각종의 기념일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극적인 것이 나중에 숙종이 될 왕세자의 생일까지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時憲曆으로 1661년 8월 15일(음력)이던 왕세자의 생일이, 대통력으로 달력을 바꾸자 윤달의 위치가 달라져, 이제는 1661년 9월 15일(음력)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운명학적으로 볼 때 숙종의 운명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청나라에서 1670년(강희 9년)부터 다시 시헌력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니 조선에서는 1667년, 1668년, 1669년의 3년 동안은 시헌력이 아닌 대통력을 사용하고 국가의 모든 기념일은 대통력에 따라 환산하여 사용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다시 시헌력으로 돌아가 1670년부터는 시헌력으로 모든 기념일을 되돌려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사주팔자라는 것이 근거 없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극명하게 증명해주는 일화다. 대통력에 따라 계산한 사주가 시헌력에 따라 계산한 사주와 다르다면 달력이 바뀔 때마다 한 사람의 사주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다면 사주명리학은 어떤 역법을 근거로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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