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름다운 사람들(갈5:22-2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앙의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가 기록된 역사적 배경과 바울이 강조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우리에게 어떠한 열매를 맺게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갈라디아서의 역사적 배경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기록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갈라디아 지방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습을 보며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달랐지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복음이 전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안디옥으로 돌아온 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그가 전한 복음을 왜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바울을 가리켜 "스스로 사도라고 하며 다니는 사람"으로 "바울은 가짜 사도"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서두에서 자신이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에 의해 세움을 받은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분명하게 변증합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이 모든 서신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변증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데 유대인들에게 속아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부인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서신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나 바울은"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 그리고 빌레몬서에는 이러한 변증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미 바울을 주님의 사도로 인정하고 그의 가르침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듀대인들의 유혹이 있었어도 복음 위에 굳게 서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참된 목회자는 복음을 바르게 전해야 하고, 성도들은 말씀 위에서 목회자를 신뢰하며 함께 동역해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둘째로, 갈라디아서가 강조하는 것은
갈라디아서의 핵심은 "오직 복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고 복음 안에 굳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를 특별한 은사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기도만 해서 갑자기 생겨나는 능력이 아닙니다.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맺게 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시고, 깨달은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1) 사랑은
사랑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참된 사랑은 말에 머물지 않습니다.
희생과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2) 희락은
희락은 환경을 초월한 기쁨입니다.
형편이 좋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내면의 기쁨입니다.
3) 화평은
화평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 사람들과도 화목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4) 오래 참음은
오래 참음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삶입니다.
5) 자비는
자비는 연약한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친절을 베푸는 삶입니다.
6) 양선은
양선은 선한 일을 즐거이 행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바로 양선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7) 충성은
충성은 맡겨진 일을 끝까지 성실하게 감당하는 삶입니다.
당시 많은 성도들은 종의 신분으로 살았기 때문에 충성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했습니다.
충성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관계와 책임에 끝까지 신실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8) 온유는
온유는 약함이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부드럽게 대처하는 힘입니다.
9) 절제는
절제는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 욕망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스리는 삶입니다.
절제를 배우지 못하면 신앙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셋째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능력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자신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됩니다.
○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삶을 보았습니다.
○ 그들은 귀신 들린 여인을 고쳐 온전한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했습니다.
○ 감옥 문이 열렸지만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도망가면 간수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남아 있으면 앞으로 어떤 일을 만나게 될 것인지를 모르면서 그들은 한 사람의 목숨을 건지려고 감옥에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신들의 안위보다 간수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의 삶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그는 단순히 황금보석 으로 꾸며진 천국에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실라처럼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그의 가족까지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바울과 실라와 같은 삶을 살아가라"고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복음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너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이이루며 살아가야 할 신앙의 삶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성령의 열매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 속에 풍성히 맺혀서, 우리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아름다운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