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보다 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행16:11-40)
오늘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가 간수장의 가족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한 것이 무엇이며, 바른 전도의 길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요새 저는 어느 한분을 전도하고 싶어 꾸준히 기도하며 그 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교회로 발길을 옮기지 않는 이유를 알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저보다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라면 저는 예수를 안 믿겠습니다.”
“나는 그 교회를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교회를 다니는 누구 때문에 교회 전도문이 굳게 닫혀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천국 문이 굳게 닫혀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것은 "너 자신이 먼저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바른 삶을 살고, 그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로 그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할 때에 천국 문이 활짝 열려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라고 교훈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한알의 밀알이 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에 사도들이 먼저 죽어지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목회자 때문에, 때로는 성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나의 후배들이여!
우리는 늘 성경을 읽을 때에 문자적으로 보이는 것을 해석해 주고, 그 문자적 의미로 감동을 주려고 하기에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간수장의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된 것에서도 우리는 그런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짧게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우리에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눈을 다시 새롭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성경을 밝히 알아가고, 삶으로 살아가는 신앙을 가져오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방에서 귀신 들린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해 줌으로 발생한 사건입니다.
귀신 들린 여자가 한 일은 귀신의 능력으로 점치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그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함으로> 그 여인을 소유하여 수익을 얻던 사람들이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관리들에게 고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매를 많이 친 후에 깊은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 밤에 깊은 감옥에서 기도하며 찬송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사건은 시작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고 바울과 실라가 깊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들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와 찬송을 들으시고 감옥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 감옥에서 나가시라고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옥문을 열어주시고 그곳을 탈출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행 5:17-21)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바울과 실라가 선을 행하다가 부당하게 감옥에 갇혔기에 하나님께서 그곳을 탈출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과 실라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선한 모습을 보여주게 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도망가면 간수장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것을 알았기에 감옥을 탈출하지 않고, 자결하려는 간수장에게 “우리가 여기 있으니 네 몸을 상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그 때 간수장의 고백이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입니다.
간수장은 바울과 실라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았습니다.
그런 바울과 실라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간수장은 그들에게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간수장이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었기에 구원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바울의 인격과 삶을 보았기에 어떻게 그들과 같은 구원의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의 질문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선생들이여, 어떻게 하면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다른 사람들 같이 감옥 문이 열렸을 때에 도망을 가지 않고, 간수장의 생명을 염려해 주었기에 간수장은 놀랐던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부당하게 감옥에 갇혔고, 바울과 실라가 기도와 찬송을 하자 하나님께서 감옥 문을 열어 주셨는데도 바울과 실라가 감옥을 탈출하지 않은 것은 간수장 자신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 바울과 실라의 행위가 간수장과 그의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설득을 잘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전도를 유창하게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자신들의 안위를 구하려고 도망가지 않고, 간수장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감동의 시간이 오게 된 것입니다.
전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참된 신앙의 삶을 바로 보여주면 자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빌립보교회는 바울과 실라의 배려하는 신앙에서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한 빌립보교회는 바울과 실라를 본 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울의 목회선교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예루살렘교회와 다른 지역의 교회들을 돕는 삶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우리는 본문에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주의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바울과 실라의 진정한 그르스도인의 삶과 인격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간수장과 그의 가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말로 된 것도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능력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한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부흥의 비결도 성도들의 진정한 신앙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여러분은 위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말씀은 복음의 말씀이 시도들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열심히 전해지게 되었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보여 짐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삶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확실하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후배 여러분!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자신보다 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사는 것임을 잊지 말고, 우리의 삶속에 이러한 신앙의 모습이 풍성하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