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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금남축제

극소수 몇몇 불순분자들에 의해서 야기되는혼란

작성자예기|작성시간19.05.20|조회수30 목록 댓글 0


     
    극소수 몇몇 불순분자들에 의해서 야기되는 혼란.그 불안정한 속에서 문화계가 받는 타격도 커서
    극계의 불황도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불안과 불황 속에서도 이왕에 예정된 공연은 분별없이 지속되고 잇고
    몇몇 의식있는 공연이 이 시대의 아픔을 함꼐하려는 자세를 보여 관객들의 의미심장한 감상을
    표출해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연극인들은 요즘 그 대다수가 「요즘은 연극을 하지 않는게 돈을 버는 길」이란 말을 하고 있다.
    지난 14, 15일 서울시내 학생 시위때 세실 극장에서 공연을 내걸었던 한 단체는
    「시위 때문에 관객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투덜투덜 불평만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의 유무나 사회적 불안 속에서도 어떠한 외부적 제재만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 준비된 공연을 지속해야 한다는게 연극단체들의 태도다.
        국립극장 소극장에 초청공연됐던  現代의 「종이연」이 자체사정으로 공연을 취소했고
    山河가 「페드라」의 공연중지를 검토하고 있을 뿐
    大河의 코미디 「봄봄봄, 밤밤밤」부터 春秋의 「드라큐라」등 흥행물이 계속
    재공연을 갖고 공간사랑의 신파극 시리즈도 현시국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공연준비에만 한창이다.

        하지만 이같은 연극계 일면에서도 우리의 아픔과 현실을 공감하며 느낄 수 있는
    알찬 공연도 더러 눈길을 끌어 의식까진 관객들의 예술을 통한 따가운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吳 泰錫씨가 살롱식 술집의 마담과 단골손님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소재로
    일상적 생활만을 묘사했던 「1980년 5월」은 뒤늦게
    그 제목이 너무도 걸맞은 것이었다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하듯
    역사를 함께 사는 국민으로 서 연극인들의 자세엔 일단의 내적회의가 용솟음치기도 한다.
        문예진흥원이 배려로 미국을 다녀온 李 昇圭씨가
    「미국연극이 그들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신의   현실적 고뇌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문제해결의 방향을 모색해보기 때문」이라고 했듯
    마땅한 창작극이 고연될 수 없는 우리의 실정으로선
    오늘을 사는 우리의 아픔을 바로 얘기해 볼 마땅한 번역극의 공연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마당극 형식으로 펼쳐지는 대학극보다 못한 공감대를 가진 기성연극무대의 문제는
    어찌 보면 이같은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연극을 강요한 지나친 현실의식과 강요형식의 참여주의는
    예술의 본질을 거역하는 과오일 수도 있다.
    「교단에서 할 수 없는 얘기를 무대 위에서 예술형식으로 표출해 보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던
    교사극단 「상황」의 작업이 그러한 예였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이 劇壇外的문제에 의해 소문도 없이  붕괴된 것은  
    이들 나름의 성장을 지켜보던 劇界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국대 金 興雨씨는 「이럴 때 일수록 연극은 더욱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무작정한 형식주의자의 허무한 공연지속 속에서도 관객들이 나름대로의 이미를 찾고
    눈시울을 뜨겁게 할 수 잇는 것은
    이같은 연극인들의 예술인다운 의식과 사명감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머 센터에서 공연 중인 「토선생전」, 살롱 秋에서 공연 중인 「빠알간 피터의 고백」,
    에저또가 준비한 사르트르의 「무덤없는 주검」같은 일련의 참신한 작품들이 불황 속에서도
    호응을 더해가는 것은 관객과 보다 밀접한 자세에서 그들이 얘기를
    예술로서 승화시켜 나가는 노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토선생전」은 문화계 각계각층의 젊은 두뇌가 올바른 연극,시
    대와 사회적 소명의식이 깃든 연극을 제작하겠다는 의도로 모인 마당」그룹에 의해서 이뤄졌다.
    오늘의 현실을 증언하기 위한 판소리와 탈놀이의 만남은 「나의 사전엔 불가능이 없다」
    「내가 법이다」고 주장하는 숲속을 지배하는 호랑이 앞에 조그만 토끼가 내뱉은 「
    폭력으로 흥한 자는 폭력으로 망한다」는 대사가 있고  
    여기에 관객의 벅찬 박수가 뒤따라 극장은 온통 환호로 가득하다.
        대머리에 여덟개 발을 가진 문어의 지나친 충성심 앞에 던져진 용왕의
    「문어, 너는 너무 과격해」하는 말과 이어 끓는 물에 데쳐져 죽어가는 그의 말로도 힘
    찬 박수를 받는 통쾌함이 속출한다.
        살롱떼아뜨르 秋에서 매일 하오 7시면 공연되는  빠알간 피터의 고백 또한
    이 시대의 아픔이 프란츠 카프카의 강한 자유의식을 빌어 전달되는 무대다.
    원초적인 동물적 모습을 숨기고 인간적인 자유를 찾은 한마리 원숭이의  숭고한 노력은
    출구라는 어휘로 귀결되는 빛을 찾는 갈망이다.
        「탈출의 가능성은 항상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보았자 얻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하는 피터의 대사같은 것은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보이듯
    난해와 추상이 표현형색을 벗고 보다 직설적으로 자유의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의 새로운 매력이다.
        자유의 고귀함과 그 추구방식, 완전한 자유에의 갈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승
    화된 예술로 표현해내는 「빠알간 피터…」의 무대는
    허튼 강요조의 논문보다 몇 배의 설득력을 은연중 안고 있다.
        사회참여로서 철학, 소설, 희곡, 비평, 정치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20세기지성의 대표적 위치에 섰던 사르트르의 세계 또한 오늘 우리에게 새롭게 인식되는 의식이다.
    (申暎澈기자)
    1980년5월26일 신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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