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스물 두살 먹은 어린 관객입니다.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이처럼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보다 능동적인 관객이 되고 싶습니다.
"평"이라하기에 많이 부족하고 연극을 보고 돌아온 날,
제 일기의 한 부분이라고 봐 주셨으면 좋겠네요 경희대학교 컨벤션경영학과 서정호 입니다.
늙은 부부의 젊은 사랑이야기라고 해야 할 까?
탤런트
그날따라 시간이 한가하다는 친한 동생과 오랜만에 대학로 구경도 할 겸 동행했는데 대부분 연인과 함께 오셔서 많이 불편했다. 그 녀석한테도 좀 미안했다.
앞서 언급한 배우의 연기처럼 극의 부분적인 것에서부터 전체적으로 흐르는 전개 양상 속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늙은 부부의 사랑이나 젊은 연인의 사랑이나 처음의 설렘은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동만에게 점점 마음을 열어가는 점순의 모습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남자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할머니가 아닌 한 여자를 볼 수 있었다. 동만이 점순에게 처음 접근하는 형태를 보면 자기 속을 다 보여주면서 당신에게 맘이 있다는 표현을 다 한다. 처음엔 바람둥이인양 말을 걸지만 서로 알아갈수록 진심이 보여지고,사랑을 하게 되는 상황들. 무엇보다 현실에서 내가 처한 상황이 이와 너무 똑같아서 공감이 두배 세배 되었다. “연애를 위해 다가간 것이 사랑이 되고 말았다.”는 어느 통속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첫 사랑보다 아름다운 마지막 사랑이 라는 것, 할 수 있다면 꼭 해보고 싶다. 그러나 새로운 상대가 아닌, 지금의 사랑과, 처음 지닌 감정을 그대로 마지막까지 이어가고 싶다면 욕심일까?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소묘라는 단어를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 이후로 처음 들어서인지 그 뜻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소묘"는 연필이나 목탄 같은 간단한 도구만을 이용해서 표현하지만 그 자체로 독립된 완성작품으로 인정받는 그림이 아니던가? 이 뜻을 생각해 보면서 사랑과 소묘의 관계를 연상해 보았다. 사랑에 관한 소묘... 간략하게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그 안에 깊이가 있는 작품이 공연되지 않을 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7시 반. 입장을 시작했고, 좌석을 찾아서 앉은 뒤 무대를 살펴 보았다. 침대가 중앙에 배치됐고, 화장실 처럼 보이는 공간, 방문, 화장대, TV 등 여관방의 모습이었다. 다섯개의 에피소드 모두 여관 방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각각의 사연이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였다.
다섯개의 에피소드 중 제일 먼저 무대에 오른 에피소드는 노처녀, 노총각의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동창인 둘은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다른 동창들과 함께 여관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결혼을 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일찍 집에 들어가고, 둘만 방에서 하룻밤을 묶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둘은 그 상황을 겉으로는 매우 불편해 하면서 결국은 같이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티격태격 벌어지는 말 다툼을 통해 정이 생기고, 결혼 못한 서로의 고민까지 털어 놓게 되면서 여운을 남기며 막이 내리게 된다. 두 배우의 약간 오버스러운 연기가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극이 진행될 수록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특히, 남자배우의 목소리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웃음의 맥을 잘 집는다고 해야하나, 목소리의 톤이 관객의 공감을 가지고 웃을 수 있는 시점에서 적절히 커졌다. 대사 전달도 잘 됐고...
두 번째 에피소드는 베트남으로 선을 보러 가게 된 시골 총각과 실연의 아픔을 못 견뎌 자살을 시도하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순박한 시골 총각의 모습이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했다. 특히, 개인기를 준비하며 "고향의 소리를 찾아서"를 흉내내던 장면에서 관객 모두 박장대소하였다. 자살을 시도하던 여인도 못지않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살하려 하지만 결국엔 "엄마야,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이런 식이다. 전문용어로는 모르겠는데 무대의 방문이 두 개라는 설정에서 두 배우가 입장해 서로 안 보이는 것처럼 가정하고 연기를 했다. 그러던 중 소품을 바꿔쓰는 등의 설정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전라도 남편과 전라도 아내의 이야기.
선원인 남편이 선장을 때리고 서울로 도망친 상황에서 아내가 남편을 만나러 상경한 상황이다. 아내는 너무나 현실과는 멀어보이는 계획만 떠벌리는 남편을 보며 구박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계속 큰 소리만 친다. 그렇지만 서로를 의지하는 삶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포옹한다.
구수한 호남 사투리가 재미를 더 했고, 첫째 에피소드에 나온 남자배우가 다시 등장했는데, 정말 잘했다. 곧 영화에서도 뵐 수 있을 날이 오지 않을런지...여배우도 젊은 나이일 텐데 아줌마의 자태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여주셨다. 특히, 두 다리가 절대 만나지 않는 걸음걸이와 무릎을 절대로 붙이지 않으시는 앉은자세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젊은 배우분이 분장을 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넷째 에피소드는 불치병을 가진 남편을 둔 부부이야기
가장 우울하고 보면서 제일 힘들었던 이야기이다. 젊었을 때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부부가 기약된 사별을 앞에 두고 자꾸만 충돌한다. 맘에도 없는 재혼얘기, 자살얘기를 하면서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만 하지만 그들의 진심은 너무나 분명하다. 뜨겁게 사랑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든 두 사람이다. 앞의 에피소드들과 비교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한 장면도 있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보는 도중 더 지쳤고, 주인공들과 같이 안타까웠다.
다섯번째 소묘는 두 노인의 이야기이다.
"늙은 부부 이야기" 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였다. 늙은 두 노인이 서로의 사랑을 알지만 현실의 상황에 부딪쳐 갈등한다. 자식들의 제안, 서로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른다는 염려. 또다시 혼자남게 되는 두려움이 두 노인의 사랑의 장애물이 된다. 아이러니하게 스물둘의 나에게 가장 많이 공감이 간 에피소드이다. 내 앞에 놓여진 현실과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감정을 자꾸만 절제해야만 한다는 정신적인 압박, 사랑이라고 확신하는데 예정된 몇 년간의 함께할 수 없는 시간들 때문에 더 다가갈 수 없는 딜레마. 마지막 이야기를 보면서 극이 의도하지 않는 카타르시스 같았지만 내 상황이 자꾸만 떠올라 혼자 울컥했다. 하지만 울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크게 울어버리고 싶어도 혼자 울 곳이 없어서 울지 못한다"는 아는 형님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룸메이트가 옆에 있다. 울지 못한다.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화장실을 찾아가야 하나? 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