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오늘관극평

글씨가 너무 작아서 옮겼어여...

작성자경미bebe|작성시간05.12.11|조회수23 목록 댓글 0

4학년...힘들게 성적을 얻었던 과거 나의 이력을 생각하며,

마지막 학기인 이번에는 수업을 절대 빠져서는 안되리라 다짐하던,

새 학기의 굳은 결의는 어디로 내 뺀 것일까. 무거운 발걸음은 어느새 대학로를 향한 버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약속시간 7:15분. 대학로 인켈아트홀 앞.

.

저녁수업과 연극관람...이 둘 사이에서 너무나 많은 갈등의 결과는 곧 지각이란 이름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운 좋게도 공연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찜찜한 기분은 어찌할 수 없는

속 좁은 내 선천적 감정의 인자 탓이리라.

서둘러 표를 끊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 갔을 땐 이미 많은 학생들과 일반 관람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두리번 거린 끝에 맨 앞 자리가 눈에 띄었고, 내 갈등의 마침표를 찍게 도와준 원택이와 서둘러 앞자리로 향했다.

사랑에 관한 일곱개의 소묘...

사랑에 관한 일곱개의 소묘라...

<사실 공연이 끝날 때 까지 난 일곱개의 사랑 이야기가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으레 사람들이 칠. 일곱.이란 숫자를 좋아한다는 내 유아적 발상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관심있게 티켓을 보지 않은 연유도 있겠고...아마도 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저녁수업을 걱정하는 정신적 산만함이였을께다. 그때까지 나의 관심사는 '어떤 소재로 공연을 하는가?'보다는 '배우는 어떻게 자신을 철저히 외면한 채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가?'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퍼가 무대 앞으로 나와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문제를 낸다.

자, 그럼 문제를 내겠습니다. 티켓에 정답이 있으니까 잘 보세요. 어려운 건 아니예요.

......

공연을 하는 극단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바로 앞에 있던 한 여학생이 스피드 게임에 나온 듯 숨쉴 틈 없이 말을 받는다.

오늘이요!

.....싱겁게 끝이 났다.

짜고 치는 고스톱을 몇 번 해보았지만 이것보단 덜 시시했다.

사실 공연 티켓을 거머쥐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위로의 감정이었겠지.

아마도 극단의 신입배우일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 일반 공공장소에서 흔히 들어보는 에티켓 정도를 이야기 하는 그녀의 부연 설명이 맞물리며 그렇게 공연은 시작됐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틀림없는 여관방이다. 정수기 한 대 없으니 싸구려는 당연지사다. 예전 밤을 지새우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의 쓸모없는 진가가 처음으로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한 여자가 흰 원피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방정맞은 모습으로 들어온다. 그 뒤로 표정이 일그러진 한 남자가 들어온다. 부부인 줄 알았건만 그들의 오가는 대화를 통해 나의 추리는 무색해져 버린다.

여관방에서 모이기로 한 초등학교 동창들은 작당이라도 한 듯 노총각.노처녀 그 둘만을 남겨둔다.

사실 노(老)라는 불명예의 딱지를 붙인 처녀 총각이 단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여긴 여관방이다. 이쯤되면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가 나와 사랑의 화살을 쏴 주고, 남자배우는 "오! 문자~~"하며 살포시 그녀의 허리를 감싸주며 사랑을 갈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연극은 아니라고 한다. 나 역시 큐피드는 노(老)자를 단 처녀총각에게는 화살을 쏘지 않을 것이라며 자위한다.

둘은, 제삼자 입장에선 코미디로 보일 정도로 서로에게 히스테리를 나타내지만, 동병상련의 아픔이랄까 결국 그것을 승화시켜 이내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풀어놓은 웃음보따리도 잠시 짐짓 무게가 달라 보이는 두 배우가 다시 무대로 들어온다.

베트남으로 신부를 맞이하러 가는 시골 총각과 보라색 원피스로 인해 더욱 무게가 실린 한 실연한 여인이 그 두번째 단막의 주인공이다. 나의 눈에 보이는 하나의 공간에서 그것을 초월하는 두개의 공간이 흐른다. 눈은 점점 더 바빠진다. 둘은 각자의 이유로 서로 다른 여관방을 찾았지만, 그렇다고 이 둘의 공간은 양분된 것도 아니다. 남자의 넥타이가 실연한 여인의 자살시도를 위한 도구로, 여자의 유서는 남자의 베트남어를 도우는 종이로 바뀌면서 어릴적 갖고 놀던 만화경 같은 구조를 만든다.

남자의 순진무구함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시련의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려는 절제된 여인의 부산한 모습에서 표출되는 생존본능 역시 웃음의 발산을 돕는다.

망연자실한 한 여인과 기쁨과 설레임에 부푼 한 남자. 허무와 기쁨의 두 등이 맞부딪히며 그 둘은 서로를 감지하며 끝난다.

지하이기 때문인지 불이 꺼지면 아무것도 눈에 잡히는 게 없다. 군대에서 배운 '적응시'를 사용하여 연극을 끝내고 허둥지둥 들어가는 배우들의 모습을 포착하려 했으나 보이질 않는다. 이건 무슨 제스추어일까.스스로에게 묻는다. 그건 배우의 완벽함 속에서 헛점을 찾어내어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그래서 재능의 부족함을 보상받으려는 하나의 시도가 아닐까. 이내 심리치료사가 되어 자문자답한다. 그리곤 이러한 부분도 전체적인 관객 집중도와 관련된 흐름이란 생각을 잠시 해 본다.

갑작스레 불이 켜지고 어느새 침대에는 한 중년의 남자가 누워있다.

처음 노총각으로 나왔던 남자다. 곧이어 헐레벌떡 들어오는 여자. 오고가는 대화가 너무나 자연스런 전라도사투리다. 노총각과 노처녀. 중년부부. 둘 중 어느 여자가 이 남자에게 잘 어울리는지 쓸데없는 저울질을 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너무 잘 어울린다. 남자의 흡인력에 새삼 놀란다. 그 흡인력을 받쳐 주는 여자 또한 그렇다. 공연이 끝나고 조사해 본 결과 전라도아줌마는 80년 생이다. 잘못 입력된 정보라고 애써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그렇지 않으면 '나'란 존재가 너무 허망해 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아마 칠을 팔로 잘못 적었겠지.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구절이 문뜩 스쳐지나간다. 내 짧은 경험과 지식 탓이려니 한다. 남편의 성격적 결함을 아내의 사랑이 아니면 누가 받아줄까. 독신주의자 답지 않게 그런 중년부부의 애정에 벽이 무너짐을 느낀다. 일시적인 감정일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구겨진 검정 비닐 봉지에서 꺼내든 스카프를 목에 둘러 보고 기뻐하는, 그리고 남편의 귀 안을 손질해 주는, 다소곳함이라곤 전혀 없고 투박하기까지한 여인의 모습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다시 나의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랑에 대해서는 다시 연구해 보기로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부부는 이불속에서도 사랑을 나누고, 거침없는 말에서도 사랑을 느끼고, 사소한 것에서도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사랑...사랑...

손가락 세 개를 말아 쥐며 세번째 무대도 막이 내렸다.

무대는 그대로였다. 바뀐 건 사랑에 대한 내 정리되지 않은 개념뿐이었다.

또다시 무대의 조명이 침묵을 뚫고 올라온다. 앗! 김성수다.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이 사람이 가수 쿨 있죠? 그 쿨에 김성수씨 있잖아요? 그 사람 동생이예요.라고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말해도 믿을 만큼 내 눈의 장애로 몰아가기엔 너무나 닮아있는 남자였다. 아무튼 그 남자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뒤늦게 대화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어떤 불치병에 걸린 환자였다. 두번재 극에서 실연당한 여인으로 나온 인물이 이 환자의 아내로 나왔다.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두 편 모두 비극이란 모티브를 갖고 연기를 한다는 것은...이 여인의 삶 자체가 그런 것일까?하는 궁상도 해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연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불치병에 걸려 남편을 곧 떠나보내야 하는 한 여인.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한 남자의 심정. 말로 할 수 없는 비극의 카타르시스...남자배우가 울 땐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여자의 절제된 연기속에서 또 눈물은 흐른다. 그것은 아마도 극 중 여인의 섬뜩하리만치 절제된 모습과 끝내 못이겨 흐르는 여인의 눈물....그리고 배역을 소화하는 실제 그 여인의 얼굴선이 교차되며 떠오른 옛 나의 사랑이 눈물을 자극하는 촉매작용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에게 음정박자 맞지 않는 노래를 불러주고, 그것이 그렇게 우스운지 키득키득 웃는 관객들 속에서도 눈은 글썽글썽 농도 짙은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남자의 여자를 향한 욕에서, 증오하고 의심하는 눈에서도 사랑을 느꼈다면 거짓일까. 외모와는 다른 남자의 연기가 어쩌면 이 사랑의 소묘를 그리는데 빛을 더욱 발하게 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이 죽일놈의 사랑이라고 했던가. 이 단막극에 나만의 소제를 조심스레 붙여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혜원씨 팬이 되었다는 것이다. 절제된 연기...그리고 그 뒤의 웃음.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싸인 한 장 못 받고 돌아온 것이 못내 아쉽다.

감정이 극의 정점에 달하고 호흡이 거칠어 질 무렵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무대 위로 등장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화해도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놀이터를 보면 놀고 싶고, 첫눈이 오면 마음이 괜히 기쁘고, 사랑을 만나면 설레인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감추고 산다. 나이가 무슨 감투인냥 마음은 그러해도 겉으로는 양반인 체 해야한다. 흔히 나이값을 한다고 하지. 할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어리광스러운 모습에서 사변적 사고에 머물렀던 나의 확신을 맛본다.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고 했다. 점점 내 가슴 불모지에 새싹이 돋아남을 느낀다. 영원히 얼어붙어 깨지기 힘들 것 같은 그 가슴 속 깊은 땅에서 새싹이 밀려온다.

웃음을 머금은 채로 불이 꺼진다. 울다가 웃으면 어디어디에 털이 난다는 말이 생각나 혼자 큭큭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다음 사랑의 소묘를 기다린다. 이미 손가락은 다섯개가 모두 접혔다. 이제 반대로 손가락을 펴 나갈 차례다.

다시 조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출연했던 모든 배우들이 서 있었다.

난 그때까지 그들이 왜 모두 나와 일렬로 서 있는지 의아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박수소리가 내 궁금에 대한 해답을 대신해 주었다. 그제서야 주머니 속에 있던 입장권을 꺼내 바라본다.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지극히 당연한 것을 나는 알면서도 몰랐던 것이다.

영원한 사랑소묘를 원한 것일까. 끊이지 않는? 

난 다섯 편의 사랑소묘를 보았다. 공연 내내 나의 눈은 웃음 때론 눈물 섞인 사랑으로, 배우들과 호흡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사랑을 호흡한 것이었다.

그럼 극단 '오늘'은 이 연극의 제목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사랑에 관한 여섯개의 소묘로..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소묘는 내 안의 먼 그대를 위해 남겨둘 것이다.

내 안의 먼 그대를 만나는 날 이 공연을 다시 보러오자.

그땐 정말 사랑에 관한 일곱 개의 소묘가 되겠지...

.

.

.

극단 '오늘'덕분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겨울입니다.

저처럼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들에게 사랑을 불어 넣어 주시는 연극치료사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