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는, 제가 본 두번째 연극입니다. 물론 그 첫번째는 늙은 부부이야기이구요.극장에 들어섰을 때의 첫느낌은 좌석도 지난 번 보다는 나름대로 편안하고, 무대도 지난 번 보다는 큼지막하고 좋아보였습니다. 지난 번 연극을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던 터였기 때문에,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기대도 컸습니다.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는, 여관방에서 일어나는 다섯개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연극이었습니다. 간단히 다섯개의 에피소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다른 친구들의 계략(?)에 빠져, 여관방에 함께 있게 된
초등학교 동창인듯한 남녀의 이야기.
두번째, 베트남으로 짝을 찾으러 떠나는 농촌총각과, 실연의 아픔에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
세번째, 폭행사건을 일으키고 도주중인 뱃일을 하는 남편과 남편을 찾아온 아내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네번째, 병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
다섯번째, 어린 시절 같은 마을에 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 할머니는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이민을 떠나려 하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만류하며, 프로포즈를 한다.
늙은 부부이야기가 처음 본 연극이었고, 본 지 얼마 되서 , 제 나름대로 연극은 늙은 부부이야기 다워야 한다는 편견을 가졌기 때문인지, 이번 연극은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뭐랄까요, 뭔가 애틋하다거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요소가 제가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는면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대중성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관객들 처럼 많이 웃지는 않았지만, 약간은 해학적인 재미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 단순하고 가벼운 웃음보다는 뭔가 무게있는 것을 기대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약간은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같은 경우는 반전의 재미를 주는 경우도 있지
만, 일반적인 경우에 영화나 드라마는 뻔히 보이는 스토리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품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러 이러하게 될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하고, 그 예상이 적중되게 함으로써
관객에게 또 하나의 재미를 주는... 이런 요소가 없다는 것도 제게는 약간 별로라고 느껴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사랑에 관한 단상이라기 보다는 그냥, 크게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우리네들 삶의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겐 어떤 감동을 받을만한 충격은 없었습니다.
감상문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래, 사랑이라는 게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닐꺼야.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우리 삶에 녹아 들어가 있는 일부일뿐이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면 연출자도 이런 의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개중에 그나마 슬퍼야할 네번째 에피소드 조차, 연극자체에 동화되기는 힘들었습니다. 배우들의 왠지 낯선 분위기 탓도 있는 듯 하고, 극중에 자주 튀어나오는 욕 때문인 듯도 하고, 뒷좌석에 앉은 매너 없는 관객때문에 집중력이 흐려져 버린 탓도 있는 듯 합니다.
극중에 나오는 종종 튀어나오는 욕설은, 일반적으로 욕쟁이 할머니를 떠올릴 때의 구수함이 느껴지기보다는 거부감이 컸습니다. 너무 리얼했기 때문인지...
뒤에서 너무나 거슬리게 큰소리로 꺼이 꺼이 웃어대던 매너없는 관객 두명은, 나중에는 극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쿵쾅거리며, 자리를 몇 번이나 옮겨다니던 군요. 처음에는 무슨 효과음인 줄 알았는데,저를 발로 차는 바람에 자리 옮기는 건 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느낀 단점들에 대해서 나열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두 등장인물이 무대안에 등장하는 사물들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등을 마주 대기 전까지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설정은 코메디의 그것처럼 색다른 맛이 있어서
참신했습니다. 그리고 일일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부분도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장 웃겻던 건, 아무래도 시조를 읖조리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친구처럼 지내다가..." 이부분 진짜 웃겼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극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