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소묘
올해 35살이고 한달만 지나면 36살이 되는 노총각 노처녀가 등장한다. 이 둘은 초등학생때부터 친구로 지내왔다. 초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동창들이 모였기 때문에 밤새 놀기 위해 모텔방을 잡았지만, 모두들 가정일 꾸리고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어 방에 노총각과 노처녀만이 남게된다. 이 두사람은 집에서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는 점에 동감하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사건건 시비가 붙어 티격태격한다. 그러던 중 여자의 제안으로 둘은 진실게임을 하게된다.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초등학생때의 비밀을 말하기도 하고, 헤어진 연인과의 이야기를 하면서 둘은 밤을 보낸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어 머리를 기대는 여자를 보면서 '그래도 자고 있으니까 예쁘다'라고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리라 짐작이 되었다.
두번째 소묘
베트남에 가서 신부를 구하려는 농촌의 노총각과 헤어진 연인에게서 청첩장을 받은 여자가 등장한다. 이 둘은 같은 방에 묶은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같은 물건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의 세계에 빠져있다. 남자는 베트남 아가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베트남어를 연습한다. 반면에 여자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못해서 자살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여자는 '정말 죽을 뻔 했네'라고 말하며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이 일이 있은 후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누구세요?'라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사랑을 찾는 남자와 사랑을 잃은 여자가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작과 끝은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세오?'라는 말을 통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세번째 소묘
전라도에서 어부로 살고 있는 부부가 등장한다. 남편은 나이어린 선장과 싸움후 서울로 피신해 있는 상황이고, 아내는 피해자와 합의한 각서를 들고 찾아온다. 남편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성격으로 남의 배를 타는 것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한다. 아내와 심하게 다투지만 아내에게 선물한 스카프와 아들이 쓴 편지로 부부는 화해한다. 실감나는 전라도 사투리가 귀에 착착 감겼고, 배우들은 실제 부부처럼 느껴졌다. 매일 다투면서 왜 같이 사는지 모르는 것이 부부같지만, 부부는 그 이름으로 끈끈하게 묶여 있는 것 같았다. 목표로 내려가면, 아내는 적금을 깨서 남편에게 작은 통통배를 사 주고, 남편은 전보다 열심히 고기잡이를 할 것 같다고 느껴졌다.
네번째 소묘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편은 병원에서 나와 모텔방에 숨어있다. 그는 읽어보지도 않았던 성경책을 읽고, 아내에게 돈을 만들어 오라고 소리치며 살고자 한다. 그러나 아내는 돈이 없다면서 담담하고 냉정하게 병원으로 다시 가자고 말한다. 이런 아내의 태도에 남편은 '민수'라는 남자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난폭한 모습을 보인다. 시종일관 냉정해보이던 아내는 남편에게 같이 죽자며 서로의 목을 조르자고 한다. 유약해진 남편이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시켜주고, 바로 민수와 재혼하라고 하자 냉정해 보이던 아내가 흔들린다. 딱딱한 표정으로 감추어 왔지만, 그녀는 아직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찍 떠날것이 면서 왜 나랑 결혼했니?'라고 묻는 여자의 모습이 바로 진심이었다. 사랑했고 그렇기에 결혼했지만 떠나보내는 것이 또한 사랑의 이면이었다.
다섯번째 소묘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 살면서 사랑을 키워왔지만, 결국 헤어져 살아오다가 다시 만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몇십년전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직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할머니는 몇 개월 후 캐나다로 이민가는 것이 계획된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간절하게 떠나지 말것을 애원하며, 함께 살자고 집을 구입한다. 창피하다며 속마음을 감추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잣니의 아들을 만나 설득해달라며 조용히 속마음을 드러내신다.
'사랑'이라는 것은 성별과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입니다. 이 감정으로 사람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사랑을 만나고, 깨닫고, 헤어지고, 다시 시작하는 순환의 과정에서 인생이 진행된다고 느껴졌습니다. 다섯가지 사랑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고 있고, 내 가까운 사람들이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어떤 모습의 소묘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소묘는 만드는 이에 따라 다른 모양을 갖습니다. '사랑'이라는 본질은 변함없겠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나의 소묘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