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부부 이야기' 연극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어요.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할아버지의 푸념 섞인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말도 마세요. 보고 싶어 죽겄어요. 할머니 보고 싶으면 아침에 막걸리 하나 사서
하루를 보내요."
'늙은 부부 이야기'에서 할아버지가 운전면허 합격증을 들고 기뻐하며 할머니를 부르다가
할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그 쓸쓸함을 이기지 못해 술로 마음을 달래신다는 할아버지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첫사랑보다 아름다운 마지막 사랑..
아직은 첫사랑의 풋풋함에 가슴 떨리고 설렐 나이에 '늙은 부부 이야기'라는 제목을 왠지
모를 허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만난 두 노인이 동정과 연민으로 서로를
보듬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고 웃음이 나는 노부부와
작은 양말까지도 챙겨주는 따뜻함에 나도 모르게 '사랑' 을 떠올렸죠.
자식들은 다 떠나가고 할머니 홀로 남은 작은 집에 할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퍼질
때마다 살아 있는 기쁨을 느끼실 할머니..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을 잘 알면서도 할아버지에게
매정한 소리를 하실 때는 그만큼 더 큰 아픔을 느끼셨을 거예요.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아이 같이 좋아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할아버지의 쓸쓸한 얼굴에
할머니의 죽음이 더 가슴을 울렸습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같은 과 친구들이 한 연극공연을 한 번 보고 심하게 감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며 연극을 보는 것은 생각 보다 벅찬 감동이었어요.
소극장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번 연극을 보면서 제대로 느꼈다고나 할까.
뮤지컬에서처럼 화려한 무대장치보다 골목을 비추는 작은 전봇대 하나와 저녁이 될
무렵 붉게 물드는 노을 진 하늘 빛이 가슴에 더 와닿은 것은 앞으로 연극을 자주 보고
싶다는 내 다짐에도 한 몫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