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저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켈아트홀은 연극이 시작되기 한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중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단체관람을 왔는지
과연 아이들답게 직장인들보단 훨씬 활기찬 분위기로 중앙홀을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내가 그 시절에는 알 도리가 없었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대학생때와는 다른
그 단순함, 순수함,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라면 두려울게 없는 그 배짱을 보고
속으로 웃으며 ..한편으로는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이 또한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켈아트홀 2관은 무대와 관객석 구조가 소극장축제와 비슷했고 규모만 조금
더 큰 정도였다. 역시 무대위에 꾸며진 모텔방이라는 장소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되었으며 배우들도 1인 2역을 맡기도 하여 총 6명이 출연하였다.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는 흔히 TV드라마에서 다루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압축시켜서 연극만이 줄 수 있는 흡입력, 생동감으로 맛을 내어
완성된 작품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쾌했던 첫번째 소묘는 노처녀, 노총각의 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이는 코미디를 연상케할 정도로 그들이 싸울때 꺼내드는 유치한
핑계와 유사한 처지때문에 결국 천생연분이 될 수 밖에 없는 과정을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소묘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편과 그 아내의
사랑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욕을 퍼붓고 손지검도 서슴지 않는
거의 정신병자처럼 느껴졌던 남자를 차츰 이해하게 되고 동정하게 되었다.
특히 둘이서 목을 조르며 같이 죽자던 장면은 이 소묘의 클라이막스를 이룬다고
할 수 있는데, 매일 죽음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기분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여기서 깨닫게 된 것은 영화나 다른 매체에 비해 연극이 줄 수 있는
즉각적이고 생생한 현실감각이었다. 조연의 필요도 없고 전후상황을
줄줄이 나열하거나 그 환경이 바뀔 필요도 없다. 두 사람의 배우에 의해서
모든 것이 설명되고, 감정이 표현되며 관객에게 옮겨져 감동으로 나타난다.
앞서 관람한 늙은부부이야기의 잔잔한 감동과는 다른,
좀 더 일상적이고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소재를 풀어낸 이 연극은
마치 한번에 여러 종류의 감동을 선사하는 종합선물세트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