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관람하기로 정한 바로 다음날에 시험이 있어서 이순재씨와 성병숙씨가
출현하신 금요일 공연을 보게 되었다. 정말이지 연극이란 것은
이런 숙제가 있어야만 시간을 내어 가게 되는 내 자신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대학생이 되면 문화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살것만 같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은게 현실인가보다. 물론 나의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이지만
이번 공연은 내가 연극이라는 장르에 좀 더 큰 발걸음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교수님께서 예고하셨듯이 소극장 축제라는
공간은 아무 작았다. 맨 뒤에서도 배우들의 표정이 다 보일 정도였으니까.
처음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조금은 답답할 정도로 붙어 앉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조명이 꺼지고 연극이 오르자 이것은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나의 온 정신은 무대 위의
두 배우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가부장적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노 부부들의 일상 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능청스런 박동만의 연기와 남편을 일찍 잃었다는 이유로 세상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게 두려워 어느새 욕쟁이 할머니로 변해 있었던 이점순은
대단히 현실적인 인물들로 우리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며 웃음짓게
했다. 흔히 연인들 사이의 '사랑'은 청춘에나 어울리는 단어로 여겼던
많은 사람들에게 잊고 지냈던 더욱 소중한 감정을 되살아나게 해준 이야기다.
함께 나이를 먹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보살펴주는 친구이자 배우자가
되는 것이 늙은 부부가 보여준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노부부의 재미있는 신혼 이야기때문에 웃다가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소중했기에 그 빈자리가 한없이
크게 느껴지는 사랑. 그 따뜻함이 관객 한사람 한 사람의 얼어붙은
마음을 서서히 녹여가고 있는듯 했다.
사실 작년에 '맹진사댁 경사'라는 연극을 보러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가 바로 또 다른 박동만을 연기하시는
이호성씨라는 분이다. 또한 그 날 우연히 관람을 오셨던 이순재 아저씨께서
이번엔 직접 무대에 오르신 역극이란 점에서 나에겐 매우 특별한 공연이었다.
그 작은 무대에서 조명의 밝기로만 시간의 경과를 표현하고 그 모든 감정들을
표현해낸 배우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좁은 공간 안에서 함께 웃고 눈물을 흘려서인지,
떠날 때에는 오히려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 느낌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