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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관극평

닭집에 갔었다-행복이라는 허구의 아이러니! - [아츠] 김민관 님

작성자정대진|작성시간06.06.17|조회수63 목록 댓글 2

닭집에 갔었다


1.      시장판 - 삶의 공동체

 이곳이 공연장 맞는지, 맞게 들어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에 여기는 시장 잡판이 즐비한 완벽한 실제시장! 그 편안한 분위기가 긴장된 마음을 놓게 만들었다.

 이 연극을 규정짓는 시장이라는 배경은 이 연극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며 그것으로 인해 신선한 시도와 무대의 탄생이 가능했고, 동시에 주제 그 자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시장은 붙박이 상점의 집단이며, 끊을 수 없는 하나의 공동체이며, 삶이 진행되는 현장이며, 순간의 집합이다. 삶의 현장의 포착은 실존의 재현에 다름 아니다.

 동시에 시장은 그렇게 쭉 진행되고 인생을 충실하게 소모하는 현실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처음과 끝이 없는 오로지 현실 그 자체가 된다. 즉 연극의 특성상 처음과 끝이 분명해야겠지만 이 곳은 늘 그랬듯 붙박이 같은 그리고 질긴 삶의 고리와 악착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래서 무대는 처음과 끝이 없는 계속되는 시간의 굴레라는 배경을 구현하며 그 자체로 독특한 형식이 되며 한편으로 무대는 늘 익숙한 모습의 고향과도 같은 친숙한 존재이며 계속 유기적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각 소규모의 상점은 옆에서 옆의 옆에서 같은 공기를 공유하며, 자립된 존재로 삶을 영위하지만 화장실이나 잠시 일을 처리하며 자리를 비울 때 그곳을 맡기고 수용하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 속에 존재한다.

 

2.      현실의 진정성

 무대 전체가 한 눈에 잡히는 점은 이 공연장 특성에서 기인하겠지만 상점의 배경에 더하여 마치 소시민의 일상을 보여주며 한편으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

 시장이라는 복잡한 소품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시장이라는 특성만큼 고정되어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점에 시장 전체는 굳이 조명 등을 이용한 공간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고, 그대로를 내보일 뿐이다. 단지 낮과 밤, 시간의 추이를 조명으로 표현할 뿐..

 그래서 단지 몇 개의 시퀀스로 공연은 이뤄질 뿐이며, 그 안에서 모두 제 각기의 층위를 이루고 삶은 계속 진행된다. 단지 중요한 대사는 온전히 그 목소리를 다하고, 다른 층위의 삶은 조용하게 진행될 뿐이다.

 그리고 그 삶이 인위적 조작이 거의 가해지지 않는 너무나 사실적이라서(물론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대사만을 온전한 대사로 인정할 수만은 없으나 우리는 그것 자체만을 듣는 것으로 공연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대사는 곧 맥락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공연에 대한 비판보다는 현실 그 자체를 느끼며 체험하며 보게 된다. 즉 그냥 시장판에 우리는 왔고, 시장판에 깔린 심층 기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공연 속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연극이 그만큼 어렵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고 진지하게 진행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적 만족을 거의 얻을 수 없음에도,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현실 그 자체와 너무나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닭집을 하는 제천댁을 보며 우리네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 가치와 의미를 쉽게 매도하고 벗어날 수는 없다.


3.      제천댁의 삶에 이해-‘생존과 돈’

 연극을 보며 개인적으로 눈물이 몇 번 맺혔고, 제천댁을 보며 가슴이 많이 아팠으며, 그녀에게 사기치는 상길의 행동에 악다구니가 생겨난다. 이것들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며 한편으로 드라마적이다.

 제천댁에는 어떤 인물상이 투영되어 있을까? 우리네 어머니상과 소시민상이 동시에 찾아낼 수 있다. 그래. 잘 모르지만 우리 어머님도 우리를 저렇게 걱정하고, 힘들게 서럽고 힘든 것들 다 참아내고 키워내셨겠지라는 생각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감정일 것이다.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가 아닌 친정어머니가 되는 아이러니는 결혼에 대해서 여성의 상대적인 억압과 수동성을 나타낼 것이며, 모든 것을 다 참아내고, 가장 낮은 곳에 스스럼없이 위치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를 보호하고 감싸는 점에서 결코 그 진정한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을 것이며, 단지 이 연극을 통해 그 순간에 역지사지의 측면에서 그들의 속내를 보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처참함과 고통에 경악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 자체의 고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큰 슬픔이 있다.

 한편으로 시장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녀 역시 소시민의 삶을 구현한다. 돈이 다인 사람. 그것은 돈이 곧 삶을 좌우하고 삶의 희망이 되기 때문이며, 삶을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죄를 짓지, 돈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많을수록 좋을 뿐이다.

 하지만 돈이 삶 그 자체가 되는 나아가 생존과도 직결되는 그들에게서 특히 제천댁과 임신한 순미를 보면 그들의 삶이 지닌 진정성은 곧 돈이 밥이고 밥은 곧 생존 그 자체를 보여주는 도구임을 확인케 한다. 사실 자본주의 구조에서 소시민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빼앗긴 희생물이면서 누구보다 삶의 진정성을 구현하는 존재이다. 역설적으로 그들에게서 밥은 신성한 것이며, 그들은 진정으로 그 신성한 가치를 향유할 자격을 지닌다.


 독하게 돈을 모으며, 다른 여타의 상인들과도 고립된 제천댁은 전적으로 그렇다기보다 그녀 스스로 그렇게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녀와 대비되는 주마담과 일종의 경비아저씨는 그 소시민적 삶 그 자체를 현실로써 살아가는 타입이라면 그녀는 처절한 삶을 그야말로 독하게 반응하며 삶을 인내하고 감당하는 것이다. 그녀는 여러모로 그녀의 삶을 강력하게 압박하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서 그녀를 감싸기에 가장 극적이고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며 역설적으로 그 고통에 대응하기 위해 더 큰 고통의 쓴맛을 보며 살아가야 한다. 마치 단 맛으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쓴 커피의 의미마냥 그녀의 삶은 독으로 점철되고 그 속에 한이 담겨 있다.


4.      삶의 행복

 그녀의 삶은 이미 어머니가 되며 그 위치로 인해 자신의 삶을 거세당했고 그녀의 행복과 꿈은 아들 종구에게 맞춰지고 현실적으로 돈, 그리고 그것을 위한 매일의 삶은 일종의 위안이며 그 자체로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 곧 시장판의 삶은 거의 하루를 소모하고 또 보내며 그 궤적의 총합으로 구성되며, 하루는 영위되는 것이 아닌 단지 이겨내고 수용해야할 뿐인 것이다. 

 이런 그녀의 삶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사치이고, 닿을 수 없는 다른 층위의 단어일 뿐이며, 차라리 '낙'이라는 단어가 더 적당한 듯 하다.

 그런데 보통 삶에 낙이 없다는 말처럼 그것은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의 힘겨운 삶을 의미하고 그녀에게도 역시 해당한다.

 그런 그녀에게서 시장판의 다른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또 그만큼의 문을 걸어 닫고 사는 그녀의 더 깊은 고통을 우리는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녀가 주마담과 싸우며 칼까지 드는 것에 대해 현실의 층위 즉 극에서는 정신상태가 미친 것으로밖에 볼 수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어둠이 깔리고 그녀에게 조명이 가해지고 그녀의 심연까지 우리는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삶의 행복은 아니 연극으로 인해 얻는 행복은 관객에게 충분히 해당된다. 주마담의 거침없고 상대방이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현실 그 자체를 뱉어버리는 언담, 극 속뿐만 아니라, 무대 안에서도 중개자이자 중계자 역할을 하는 시장관리소장 아저씨의 마당발의 특성을 보여주며,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뽑아내는 것에서 우리는 실컷 웃게 된다. (실제 많은 관객들이 정말 많이 웃었다.)

 또한 시장판이라는 특성은 그 바깥의 현실과의 단절을 이루는 동시에 그것으로 끝없는 수용(사람과 손님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에 시장 안에 온전히 자리하는 역할들의 사람들은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주인의식과 개방된 활로를 열어준다. 반면에 그곳을 드나드는 특정한 지위. 계층. 소속의 인물임에도 불특정한 다수로 존재하며, 실제 똑같은 배우가 여러 명의 역할을 수행함을 자연스럽게 한다. 동시에 그들은 등장으로 인해 시장의 의미를 되새겨주며 곧 퇴장함으로써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즉 그들은 들어가는 것이 자유롭고 들어감으로써 시장안의 상황과는 유리되며 또는 사라져버리며 책임을 회피하지만 그 순간은 텍스트의 중요한 흐름에는 가닿지 못함으로써 가벼움과 엉뚱한 듯한 웃음코드로써 다가온다.

 제천댁의 아픔의 현존과 목격, 그리고 그녀 스스로 해소할 수밖에 없음을 그녀와 우리 스스로의 처참함을 느껴야 했던 것에 비해, 웃을 수 있는 시장 안에서 그것은 일시적으로 묻히지만 여전히 그녀의 삶을 붙들어 맬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유쾌했던 이 연극 속에 잠시나마 우리 스스로 세상을 살며 어느 누군가에게 기대는 만큼 그 사람을 직접적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면, 그러려고 노력한다면, 그 유토피아적 세상을 기약없이 희망하며 그 연극의 푸근함과 사람 냄세. 유쾌함에 잠시나마 희망을 찾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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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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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경미bebe | 작성시간 06.06.19 우와~~~~!!!
  • 작성자Mr.pang | 작성시간 06.06.25 음 너무 어렵다. 어려운건 어려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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