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 6촌
김홍식
경주 최부자 처럼 6촌이 잘 산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러웠지만 밀려오는 풍파는 빈부의 격차가 없다. 어린시절 두 집안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신문물도 일찍 접하며 자란다. 라디오 소리를 처음 듣던 날 그속에 사람이 있는줄 알았다. 축음기 유성기판에서 흘러나오는 ‘강남달이 밝아서’라는 노래를 들으러 동네 사람이 모인다.
마을앞 아저씨네 땅엔 항상 일하는 일꾼이 많았다.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는 지 내막은 알수 없지만 어려운 사람들은 그 그늘에서 쉬어가기도하고 안정을 찾으며 다시 일어설수 있도록 많은 사람에게 베푼다.
겨울이 지나고 꽃샘 추위가 심술을 부릴 때 쯤이면 장독대 옆에 매화꽃이 먼저 피기 시작하고 집 주변으로 두릅 구기자 머위 이름모를 약재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두레박 우물이 있던 드넓은 밭에는 작약꽃이 만발하여 온동네가 훤하다. 하얀 옷을 입은 아저씨가 물꼬를 보러 들에 나타나는 날이면 신선같이 보인다. 학자이다 보니 글 공부를 하러오는 사람이 많다. 하얀 두루마기에 수염을 기르고 갓을 쓴 사람들이 사랑방으로 모여들고 시를 읊는 소리가 창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안에서는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사랑채에서 들리던 ‘청산리 벽계수야’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아저씨는 경주 석굴암을 다녀오고 얼마있다 소화가 안된다며 옻나무를 약으로 쓰기도하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일이 잦았다. 서울 병원에 가는 날은 온동네 사람이 나와 걱정한다. 아저씨의 병세는 악화되어 어린 5남매를 남겨두고 먼길을 떠났다. 마흔이 안된 아주머니에게 닥친 파도는 집 채보다 크고 평화로웠던 가정은 산산 조각이났다. 5남매의 서울 유학비를 마련하느라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귀가 고장이나고 먹통이 되었다. 땅도 팔고 빚도 지어가며 키운 아들 둘이 아주머니의 기도대로 은행원이 되었지만 돈 걱정 없을줄 알았던 기대는 빗나갔다. 장한 어머니 상을 받은 아주머니는 딸 부잣집 새째 딸이다. 체구는 작아도 마음이 넓고 풍요로워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며느리 들은 다르다.
외가의 6촌은 만석꾼 이라 한다. 아무리 부자라해도 만석은 감이 안오고 만석 을 어디에 다 쌓을까 싶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할아버지 이름이 송 만석 이라한다. 큰 농사를 짓는 집안이었지만 마당에 지푸라기하나 흐트러짐이 없고 안채의 뜨락은 어른키 만큼 높았다.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교육열이 높아 큰아들은 군수 둘째는 군 중령 손자들은 대기업 임원 사장 의사다. 음식은 정갈하고 어른상은 따로 차렸다. 냉장고가 없던시절 때가되면 냉장고문 열 듯이 벽장문을 열어 밥수저 위에 소고기 장조림을 얹어주는걸 보면서 부자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동갑내기 무순이가 건넌방 가마솥에 불을때고 나는 황토 부뚜막을 건너 다니며 놀다 한쪽다리가 빠지는 사고가났다. 놀란 어른들이 뛰어나와 소변 모아둔 통에 데인 다리를 집어넣었다. 짚불이라 약하게 데었지 만약 장작불이었으면 큰 화상을입고 미니스커트도 못입을 뻔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처를 보면 무순이 생각이나고 그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누고싶다. 아이들 끼리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부모님을 통해 소식을 들으며 자랐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저씨는 대학을 가지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서울대학 시험에 낙방했다. 그후 아저씨는 한 겨울에 냉천욕을 해가며 스스로 극기를 하더니 본인 뜻대로 해내어 건설사업을 하고 지금은 유명호텔 사장이다. 떡잎부터 달랐던 아저씨는 고향에 교회를 지어 헌납하고 동내입구에 아스팔트도 깔고 부모님 기념관을 짖는다고한다. 어린 시절 아저씨를 롤 모델로 삼고 크고 작은 파도를 넘으며 여기까지왔다. 인생은 거친 파도처럼 위기와 모험이 반복되어도 굴하지않고 앞으로 나아갈때 꿈과 목표를 이룰수있다는 교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