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해우소
강 명 숙
세상 뒷간 중에 제일 운치 있다는 선암사 해우소 어느 시인*의 귀띔에 나도 그 곳에 가서 마음 속 응어리 시원하게 배설하고 오리라 마음먹고 이리저리 가는 길을 찾다 보니 선암사 해우소를 무료 배송해 준다는 신기한 업체가 나타났다 세상에나 그 좋은 걸 나 혼자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배송되면 어디에 놓고 쓸까 어쩌면 선암매와 와룡송은 사은품으로 주지 않을까 구름위에 두둥실 떠오른 마음에 조급함이 달음질을 친다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서두르니 몸에 날개가 돋는 듯하다
생각이 많아지니 여름 날 새벽 죽순처럼 근심 하나가 자라난다 혹여나 울창한 숲속 찌르레기 뻐꾸기 소리만 듣고 천년 고찰 범종소리 목탁소리에 길들여진 맑은 귀에 우리 집 탁한 기운 어지러운 소리로 제 기운을 잃어버리면 어쩌나내 좁쌀 같은 근심거리는 시답잖다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에 안 들면 30일 안에는 반품도 된다고 하니 주문부터 해 볼까 망설이다가 아서라 욕심이 과하여 행여 지신이 노하실라 제 자리에 모셔놓고 찾아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묵은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고 오기로 마음을 바꿨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찾아가는 여정이 기대로 새순처럼 자라난다
우거진 연둣빛 반짝이는 나무들 사이로 승선교 너머 보이는 반갑고 푸근한 모습 낡아서 더 마음 놓이는 그 곳에 찾아가서 눈물이 나면 그 시인처럼 설움 섞어 등 굽은 소나무에 눈물이라도 뿌리고 오리라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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