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 밖의 세상
정진명(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명궁이 될 무렵에 폐궁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다쳐서 그렇습니다. 팔을 다치고, 어깨를 다치고, 마침내 목 디스크가 오다가 허리 디스크로 가서 끝내 활을 쏠 수가 없습니다.
저와 절친한 친구(장호원 출신) 하나가 목디스크 때문에 4단에서 폐궁하고 지금은 등산을 다니고 있습니다.
활쏘기학교 출신 어느 분 말씀이 오랜만에 만난 자정의 선배 명궁도 폐궁을 했다고 합니다. 어깨와 팔의 통증 때문에 활을 쏠 수가 없어서 구경만 한답니다.
오늘날 활터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것이 어쩌면 '내 사법이 잘못 돼서 그런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은 남탓할 것도 없습니다. 저도 활을 배울 무렵에 어깨가 아프면 약국에 가서 약을 사먹고 일주일 쯤 쉰 후에 다시 활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어깨가 아프면 똑같은 처방을 하며, 활을 쏘다 보면 당연히 오는 순서라고 후배들에게 말을 해주곤 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이것을 깨닫는 데 10여년도 더 걸렸습니다. 최근 들어서야 이런 현상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냐? 활쏘기를 보는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활쏘기를 하면서 사법이든 사풍이든 내가 올바르게 활쏘기를 즐기는가 하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십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내가 올바른 길을 가는가 지금 틀린 길로 접어들었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 명궁들을 기준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활쏘기의 기준은 과녁 맞추는 것이다." 명궁이란 과녁을 잘 맞추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닌가요? 그럴 겁니다. 오늘날 명궁 제도에서 검토하는 것은 몇 발에 몇 발 맞추느냐 하는 능력입니다. 그것 외에 명궁 심사에서 하는 게 뭐 있습니까? 그러면 활을 보는 기준도 저절로 정해집니다. 과녁 잘 맞추는 것이 활쏘기의 기준입니다.
바로 이 기준이 문제입니다. 과녁만 잘 맞으면 자빠져 쏘든 꼽추처럼 쏘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기준 때문에 여러분이 갖가지 활병을 앓으면서도 그것이 병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활쏘기를 하고, 마침내는 온 몸에 병이 들어서 폐궁에 이르고 맙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분들이 대부분 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서 활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활을 많이 쏠수록 열정이 깊을수록 폐궁에 빨리 이릅니다. 이것이 오늘날 활터에서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활을 잘 쏜다고 할 때 과녁 잘 맞추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 사람 활 참 잘 쏜다'고 하는 말은, 궁체가 멋있게 갖추어졌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분들이 말한 그 궁체라는 밑그림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밑그림이었을까요? 당연히 『조선의 궁술』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궁술』에서 그리는 궁체란 어떤 궁체일까요? 오늘날 그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온깍지궁사회 활동을 한 몇 분들만이 그것을 압니다. 어떻게? 우리가 한 10년 남짓 해방 전에 활쏜 분들을 찾아다녔거든요. 그리고 15분 정도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말하는 궁체의 공통점을 뽑아냈습니다. 그렇게 뽑아낸 궁체는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사법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우리가 온깍지궁사회 활동을 하며 해방 전에 활을 쏜 분들을 만나보면 그 분들은 『조선의 궁술』을 모릅니다. 그런데 쏘는 걸 살펴보면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대로 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선의 궁술』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아는 체하는 자들을 보면 『조선의 궁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법을 구사합니다. 그래서 이런 역설이 성립합니다.
『조선의 궁술』대로 쏘는 사람은 『조선의 궁술』을 모르고, 『조선의 궁술』을 말하는 자는 『조선의 궁술』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이제 서서히 나타나는 중입니다. 주변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조선의 궁술』을 들고 와서 아는 체한다면 사기꾼이 분명합니다. 그런 사기꾼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런 사기꾼에게 당하면 보이스피싱보다 더한 아픔이 기다릴 것입니다. 『조선의 궁술』에 묘사된 세계는 책 읽고 주먹구구식으로 헤아려서 습득할 수 있을 만큼 결코 얄팍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궁술』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오늘날 활터의 무엇이 잘 되고 잘 못 되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과 행위에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라는 것이 사회에서는 법이고, 활터에서는 사풍과 사법입니다. 활터의 법은 이미 1929년에 『조선의 궁술』로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활터 모습 중에서 『조선의 궁술』과 다른 것은 다 가짜입니다. 현대판 신사참배인 정간 같은 게 그런 것이죠. 각 정에서 『조선의 궁술』 없이 가르치는 주먹구구식 사법도 마찬가지 운명입니다. 그런 가짜들을 걷어내지 않으면 활터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미 선배들이 갖추어준 기준을 내팽개친 결과가 바로 폐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활터를 살리고 활터 사람들을 살리는 길은, 『조선의 궁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의 궁술』로 돌아가자는 것이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의 궁술』로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습니다. 『조선의 궁술』에 그려진 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세월이 하 수상하여 그것을 온전히 알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노력을 안 해서 문제지……. 이런 것을 알고서 우리 선배들은 『조선의 궁술』을 만들어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녁 맞추기 열풍이 활쏘기를 망가뜨립니다. 현재 많이 망가졌습니다. 그러므로 활터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과녁부터 버려야 합니다. 활쏘기가 과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녁 밖에도 활쏘기가 있습니다. 과녁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과녁 밖의 세상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활터는 계속 망조가 들 것이고, 사람들은 몸을 다쳐서 폐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짧은 지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잠시 어지럽혔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어지럽히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 글의 목적은 『조선의 궁술』만이 오늘날의 활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편한 표현과 모자란 부분은 저의 탓으로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주신 안양정 사두님과, 이런 모임의 계기를 만들어준 김상일 접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온깍지궁사회 사계 모임 때 안양정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2013.6.15.)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서초동향나무 작성시간 13.09.21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반구제기 마음으로 활을 내다......동감합니다.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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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형완 작성시간 13.10.14 가슴에 와 닫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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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현산 작성시간 15.04.26 감사합니다.
가르침 고맙습니다 -
작성자선묵 작성시간 16.09.19 고맙슴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것 같슴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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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쑥대머리 짱 작성시간 20.08.12 몇일전에 가입하여 많은 공부합니다. 활쏘기 문제점에 날카로운 지적과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말씀에 감동을 받아 스크랩까지 하며 틈나는 대로 이 카페에 들어와 봅니다. 과녁을 버리라는 말씀 너무나 절실히 느껴집니다. 일년에 무슨 승단대회가 그렇게 많은지~~~~~
아무쪼록 좋은 말씀 앞으로도 부탁드리며, 다만 말씀중에 좀 적절하지 않는 듯 한게 보여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궁체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 '자빠져 쏘든 꼽추처럼 쏘든'의 표현은 혹여나 장애인 비하로 보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을테고 글 쓰신 2013년도면 이런 문제에 사회적관심이 부족할 때죠. 참고로 주제넘은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