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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군중, 십자가 군중 (요 18:38~40)

작성자황의찬|작성시간22.10.30|조회수71 목록 댓글 0

2022년 10월 30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호산나 군중, 십자가 군중

요 18:38~40

 

<밴드웨건 효과~군중심리>

 

엊그제 오후 근영여고 뒷산에 올랐다가 화산체육관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데 화산체육관에 커다란 스피커 소리가 “쾅쾅” 울렸습니다.

분명히 유명 가수는 아닌데 트로트를 불렀습니다. 꽤 잘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이렇게 앰프 소리가 쾅쾅 울리면 가보고 싶은 마음이 발동합니다.

저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얼른 가 봐야지, 혹시 끝날지도 모르니까~’

여러분도 그렇지요? 구경거리가 있으면 누구나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1848년 미국에서 12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공화당 후보로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가 출마했습니다.

재커리 테일러는 상대 후보에게 밀렸습니다. 유세 군중 숫자가 상대진영보다 적었어요!

이러다가는 떨어질 게 뻔합니다. 재커리 테일러는 머리를 썼습니다.

어떻게 해야 대통령에 당선이 될 수 있을까?

‘상대 후보보다 더 많은 유권자를 유세장으로 모아야 된다.’ 결론은 뻔했습니다.

재커리 테일러는 꾀가 많았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서커스가 유행했습니다. 서커스 극장마다 관객이 넘쳤습니다.

‘옳다. 서커스 행렬의 선두에서 드럼과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는 팀을 고용하자’

서커스 행렬의 선두에서 행진하는 팀을 ‘밴드웨건’이라고 합니다.

재커리 테일러 후보는 밴드웨건을 유세에 동원했습니다.

밴드웨건의 요란한 풍악소리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재커리 테일러가 사자후를 토해냈습니다.

재커리 테일러가 당선되었을까요, 떨어졌을까요? ~ 판세를 역전시키고 당선되었습니다.

미국의 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당선의 일등공신이 누굽니까?

“밴드웨건” 서커스단 홍보 밴드! 그때부터 “밴드웨건효과”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밴드웨건효과는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전략입니다.

어떤 후보가 미국을 더 잘 이끌 것이냐? 이것보다, 어떤 후보가 군중을 더 많이 끌어모으냐?

재커리 테일러는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 오늘 본문에 ‘군중심리’가 나옵니다. 잘 들으시고 은혜 받으셔야 합니다.

 

<유월절 특사>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 중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한 말을 문제삼았습니다.

“네가 어찌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냐? 이건 신성모독이다!”

유대인들은 로마 군인들의 힘을 빌려 예수님을 잡아들입니다.

날이 밝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기소했습니다.

☞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해 보니 아무리 찾아도 죄가 없습니다.

 

(38b)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이렇게 말해도 유대인들이 꿈쩍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죄가 없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막무가내입니다.

빌라도는 한 가지 대책을 냈습니다.

다음날이 마침 유대인의 최대 명절 유월절입니다.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다스리면서 유화책으로 식민지의 명절이면 특별사면을 단행합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월절 특별사면으로 풀어주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 한국의 특별사면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의 특별사면은 이와 달랐습니다.

빌라도는 죄수 중에서 두 명을 추천하고 그 중 한 명을 유대인이 선택하도록 해야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또 한 명의 죄수를 천거하면 유대인이 예수를 선택하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죄수 중에서 가장 흉악범으로 소문이 난 바라바를 불러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바나바! 이 둘을 단상에 세우고 “누구를 특사로 풀어주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유대 군중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고, 강도 바라바는 놓아주라!”

본디오 빌라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자기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습니까? ~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라는 것입니다.

 

<호산나 군중 십자가 군중>

 

유대 군중은 당대 최고의 흉악범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군중심리~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힙니다. 요한복음 12장으로 거슬러 가볼까요?

지금이 요한복음 18장이니까 시간을 과거로 돌려 12장으로 가봅니다.

요한복음 18장은 금요일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은 지난 주일입니다. 불과 5일 전입니다.

그날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까지 나귀를 타고 입성합니다.

그때 유대 군중이 어떻게 했습니까?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유대인으로서 30세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올리는 제사에 참석을 합니다.

이스라엘 밖에 나가서 사는 사람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 무렵 예루살렘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습니다.

그때 소문이 들렸습니다. 예수라는 청년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는 스가랴서에서 예언한대로 나귀의 어린 새끼를 타고 오신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목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외쳤습니다.

 

12:12~14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이때 모인 군중은 “호산나 군중”입니다.

그러나 금요일, 오늘 모인 군중은 “십자가 군중”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나왔습니다. “호산나 군중, 십자가 군중”

 

얼른 생각하기에 “호산나 군중”은 진리의 군중이고, “십자가 군중”은 죄악의 군중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기서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호산나 군중과 십자가 군중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호산나 군중일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십자가 군중일 때는 사탄의 백성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호산나 군중일 때나 십자가 군중일 때나 죄인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설교 시작할 때 군중심리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군중심리>

 

만일 호산나 군중이 진리의 군중이었다면, 불과 닷새 만에 이렇게 돌변할 수 없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인 줄 알았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심으로 믿고 주님을 영접했다면,

닷새만에 태도가 이렇게 돌변했을 리가 없습니다.

호산나 군중일 때 그 사람들 대부분은 긴가민가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외치니까 거기에 그냥 따라갔습니다.

처음에는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점차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왜 모이는지, 알아보기 전에 일단 따라가봅니다.

왜요? 많은 사람이 가는 곳에 끼지 못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오늘날 유행, 이것이 그렇습니다.

요즘 바지통은 비교적 좁아요, 몇 년 전에는 바지통이 풍덩했습니다.

그런데 유행이 바뀌었어요. 좁게 입어요. 그러니 너나없이 다같이 좁게 입어요!

아마 내년 쯤에는 다시 넓어질 걸요? 이것이 군중의 심리입니다.

 

☞ 역사에서 ‘군중심리’라는 말이 언제부터 나왔을까요?

우리 생각에서는 최소한 예수님 당시부터 나왔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에도 군중심리가 있었으니까요! “호산나 군중” “십자가 군중” 있었잖아요!

 

인터넷에서 ‘군중심리’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군중심리가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입니다. “참 빠르기도 합니다. 그렇지요?”

예수님 당시 이미 군중심리가 있었는데,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기 시작한 때가 19세기!

그때로부터 물경 1,800년이나 지나서입니다.

 

1895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이

《군중심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했습니다. 귀스타브는 이 책에서 밝힙니다.

“개인의 이성적 사고력은 군중 속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군중 속에 있게 되면 집단화된 군중심리가 개개인을 지배하게 된다.”

“이성을 가진 개인과 달리 군중은 감정이 앞서며 비이성적이 된다.”

군중심리가 선이라는 뜻인가요, 악이라는 뜻인가요? ~ 선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군중심리를 연구한 학자들은 “인간은 이렇게 모순된 존재다!” 이것을 밝혀냅니다.

 

<다수결 원칙의 함정>

 

사람들은 왜 군중 속에 들어가면 이성을 잃어버릴까요?

“군중심리의 가장 큰 이유는 다수를 따르는 편이 이익이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것은 적은 수가 선택하는 것보다 이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가장 탁월한 정치 제도가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을 채택합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최상의 정치체제입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것, 그것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설교 시작하면서 “밴드웨건 효과” 말씀드렸습니다.

밴드 소리에 귀가 솔깃해서 갔다가 그 후보를 찍었습니다.

“이것이 선이다” “이것이 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밴드웨건 효과를 지금 한국의 각종 선거에서 써 먹고 있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번화가에 무용팀이 등장합니다. 댄스팀이 등장합니다.

음악을 크게 틀고, 피킷을 들고 흔들면서 유권자를 유혹합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다는 것을 우리 예수 믿는 성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인간이 아무리 지혜를 짜 낸다한들,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의가 나오지 않습니다.

☞ 선은 어디서 나오고, 의는 어디서 나옵니까?

☞ 오직 하나님만이 선과 의를 내십니다.

☞ 그래서 “오직 주님” “오직 주님”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기사는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대단했습니다. 자기 옷을 벗어서 예수님이 타신 나귀 발아래 깔아주었습니다.

저마다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흔들어댔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가 무슨 뜻입니까? “주여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따지고 보면 “호산나”라고 외친 것부터 문제입니다.

“주여 지금 ‘당장’ ‘당장’ 우리를 구원하소서!”

 

예수님은 분명히 구세주이십니다.

물론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구원 섭리는 이루어졌습니다.

이 진실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습니다.

이스라엘 군중이 “호산나, 호산나” 외쳤습니다.

유대 군중이 바라는 구원은 지금 당장, 로마의 압제에서 풀려나는 것,

그리고 모두가 잘 살게 되는 것,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구원으로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야냐보다는 지금 당장 구원을 더 바랍니다.

 

☞ 사람들이 이렇게 성급합니다.

사람들의 이 성급함이 ‘군중심리’를 만들어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차분하고 이성적인데,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흉악한 범죄자 바라바는 풀려났습니다.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흉이 누구입니까?

 

밴드웨건이 재커리를 미국 12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듯이

군중심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호산나 무리의 군중심리, 십자가 무리의 군중심리,

그 군중심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군중심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2천 년 전 군중심리가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호산나 군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십자가 군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것은 바로,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 갑니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341장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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