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4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나라 》
시 83:1~18
〈 1 나비효과와 지구촌 〉
우리 교회 목양실 앞에는 가끔 엄지손톱 크기의 날개를 가진 나비가 찾아옵니다.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다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얼른 날아오릅니다.
저는 나비를 보면서 ‘나비효과’를 연상합니다.
이 나비의 날개짓으로 일어난 바람이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는 토네이도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라는 개연성을 바탕을 ‘나비효과’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나비가 일으킨 바람이 지구를 한 바퀴 돈다니, 지구가 참 좁습니다.
그래서 지구촌이라고 하지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임으로써 한국에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통에 기름값이 뛰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읽으려면 ‘나비효과’와 ‘지구촌’이라는 틀을 통해야 합니다.
두 용어는 주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현상을 설명해 줍니다.
☞ 그러면, 시간은 어떻게 과거에서 현재로 영향을 미칠까요?
오늘 설교 제목을 보십시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나라 》
과거의 시간, 현재의 시간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과거,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지금은 매우 잘못하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시편 83편이 오늘 우리에게 웅변합니다.
시편 83편은 기원전(BC) 9세기 유다 왕국의 왕 ‘여호사밧’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8백여 년 전 쓰여진 시입니다.
유다 왕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편 83편이 오늘을 사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이 시는 ‘죽은 시’입니다.
시편을 비롯한 성경은 시대를 막론하고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책입니다.
그래서 흔히 말합니다. “성경은 살아있다!”
☞ 시편 83편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2 북조 이스라엘, 남조 유다 〉
2천 8백여 년 전, 이스라엘 민족은 남북으로 분열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두지파로 구성되는데, 열 지파가 북조 왕국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유다지파, 베냐민지파, 둘이 뭉쳐서 남조 왕국 유다가 되었습니다.
☞ 오늘날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열 된 상황과 흡사합니다.
남북이 휴전선을 마주하고 대치하듯, 그때 그들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한민족, 한 혈통이기 때문에 간혹 국제사회에서는 북한 남한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노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를 그냥 ‘코리아’로 보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역사에서 북조 이스라엘, 남조 유다는 그냥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시편 83편도 그런 관점으로 쓰였습니다.
늘 그렇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 간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열강들이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노립니다.
시편 83편을 보면, 이스라엘 주변 10개의 나라가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4절) “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아주 싹을 문질러 버리자는 것이지요!
어쩌면 현대의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과 많이 흡사해 보입니다.
1948년에 들어선 지금의 이스라엘은 중동의 아랍 국가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있습니다.
자칫하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풍전등화입니다.
현대의 이스라엘과 비견되는 고대의 유다 왕조 지도자는 ‘여호사밧 왕’입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심이 깊은, 몇 안 되는 왕입니다.
그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 나라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1절)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이때의 정황을 성경의 역사서 ‘역대하’ 20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83장을 이해하려면 역대하 20장을 보아야 합니다.
거기서 여호사밧 왕이 국가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나옵니다.
☞ 여호사밧은 열강의 침입을 어떻게 막아내고 나라를 지켰을까요?
〈 3 선지자 야하시엘 〉
위기에 처한 여호사밧 왕에게 하나님은 ‘야하시엘’이라는 선지자를 파송합니다.
선지자 야하시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합니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합니다. “내일 적진과 마주하게 될 터이니, ‘여루엘’ 들판에서 대면하라!”
여호사밧 왕은 자기 군대의 맨 앞에는 성가대를 세웠습니다.
그 성가대는 적진을 향하여 소리높여 찬송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대하 20:21)” 그러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하 20:22~23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하나님이 유다를 대적하는 연합군 내에 자중지란을 일으키셨습니다.
열 개의 나라 군사가 유다 하나 짓밟고자 뭉쳤는데, 뜻이 잘 합쳐질 리 없습니다.
갈등이 점점 깊어져서 유다 군대 맨 앞의 성가대 합창이 울려퍼질 때, 그들은 폭발했습니다.
‘자중지란’ 인류 역사상 전쟁의 패배 원인 중 첫손가락에 꼽힐 것입니다.
유다는 화살 하나 쏘지 않고, 창 하나 던지지 않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유다는 사흘 동안이나 전리품을 챙겼습니다(대하 20:25).
나흘째 되는 날, 그들은 그 골짜기를 ‘브라가(송축)’라 이름 붙였습니다(대하 20:26).
어떻습니까?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역사입니다.
역사는 때로 혹독하고, 잔인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시 83:4)”
서기 135년, 이스라엘 나라는 시편 83장 4절 말씀처럼,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1천 8백여 년을 버티어냈습니다.
6백만 학살의 ‘홀로코스트’를 견디고 그 땅에 다시 나라를 세우고 이스라엘이라 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 《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나라 》 이스라엘 이야기입니다.
〈 4 설교 제목의 의미 〉
《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나라 》
‘그때’는 2천 8백여 년 전, 여호사밧이 이끌던 이스라엘입니다.
그때가 진정한 ‘이스라엘’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그때의 그 이스라엘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유태인’ 혹은 ‘유대인’으로 부르는데요, 그들의 표면적 혈통은 같습니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었다가 홀로코스트 이후에 다시 그 자리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이름 ‘이스라엘’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사밧이 전쟁에 나아갈 때, 성가대를 앞세우던 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적군의 가공할만한 무기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던 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비파와 수금을 연주하며 찬양으로 대응했던, 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대하 20:21)”
주변 열 개의 동맹군의 위력 앞에서 찬양하던 그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나라 》입니다.
민족은 같은데, 혈통은 면면히 이어져 왔는데, 왜 이렇게 변질되었습니까?
“지금은 아닌 나라” 이스라엘은 지금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호전적 태도로 말미암아 어쩌면 세계 제3차 대전이 발발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들이 “지금은 아닌 나라”로 전락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 2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구약성경이 일관되게 가리키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됨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실 지난 2천여 년 동안 유대인이 유럽에서 핍박받은 이유 중 하나도 이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민족이다. 그러니 그들이 박해받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잘못된 판단이고,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나라를 잃게 된 것도, 2천여 년간 방황해야 했던 것도, 홀로코스트까지도!
그 원인은 한 곳을 향합니다.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역사적 사실로 모아집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건축물 성전의 해체를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에 보이는 나라로서 하나님의 나라는 의미가 없음을 선포하셨습니다.
☞ 유대인이 이것을 알았더라면 “지금은 아닌 나라” 이스라엘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5 진짜 이스라엘 〉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세상의 물줄기를 바꿔놓으셨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새롭게 구원받는 세상을 시작하셨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고, 표면적 할례가 아니라, 새로운 구원의 길을 활짝 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써 구원받는 새 세상을 열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매우 합당하게 선포했습니다.
롬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오늘날 유대인 중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기독교인이 1%쯤이라고 합니다.
99%는 아직도 표면적 유대인, 표면적 할례, 표면적 나라를 표방합니다.
그리고 병영국가가 되어 전쟁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들의 포탄에 의하여 학살되는 이들 중에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그들이 폭파하고 파괴하는 것 중에는 예수 십자가상이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혈통의 증서나, 여권에 찍힌 국적이, 몸에 새긴 할례가 이스라엘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이스라엘은 ‘이면적 유대인’ 마음에 할례를 받고 성령을 따라 사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자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예들, 십자가 피로 맺어진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스라엘입니다!
☞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고합니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닌 나라 》에 속지 마십시오!
표면적 이름에 속지 말고, 날마다 마음에 할례를 하십시오!
성령의 음성에 안테나를 뽑고, 순종하십시오!
여호사밧 왕이 자기 군대 앞에 성가대를 세웠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적대하는 세력은 하나님께서 자멸하도록 섭리하심을 굳게 믿으십시오!
날마다 ‘브라가(송촉) 골짜기’에서 승전가를 합창하십시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