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배나무 흔들기
어거스틴의 고백록에는 그의 사춘기 시절, 장난꾸러기 친구들과 함께 배나무를 흔들어 배를 떨어뜨린,
이른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과일 ‘서리’의 경험이 나온다. 그가 열여섯 살 때인 어느 날의 일이었는데,
그날의 배 ‘서리’는 배가 고파서 한 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어거스틴과 친구들은 떨어진 배를 주워서
돼지에게 던져주었다.
‘나는 충분히 그리고 훨씬 더 좋은 것을 갖고 있었지만 배를 훔쳤다. 내가 바란 것은 도둑질을 해서 얻
게 될 무엇이 아니라, 단지 도둑질이나 잘못된 일을 할 때 얻는 짜릿한 흥분을 즐기는 것이었다.’
성인이 된 후 그는 이렇게 자문했다. ‘허용되지 않았다는 이유 외에는 아무 다른 이유 없이 불법적인 일
을 즐기는 것이 과연 가능했을까?’
교통 신호판에 ‘정지’ 혹은 ‘속도를 줄이시오’라는 메시지가 뜨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왜 그래야
해?’라고 반발한다. 출입문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 금지된 문을 밀치
고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반발이나 충동으로 금지된 규정을 어겼을 때, 죄는 누구에게 있을
까? 진범은 누구일까? 금지의 푯말일까?
사람들은 에덴동산의 선악과 금지를 선포한 하나님을 원망한다.
“애초에 그 율법이 없었다면 죄도 없을 것 아닙니까?”
그 원망이 과연 타당할까?
율법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죄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는 사실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