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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1쪽으로 정리]여자 여자 여자 ( 마28:8~10 )

작성자황의찬|작성시간11.02.20|조회수36 목록 댓글 0

첨부파일 2011-2-20온고을주일설교-황의찬목사.hwp

                                    여자 여자 여자

마28:8~10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로 작심하고, 음모를 꾸며 예수님을 체포하는 순간 3년

간 그를 따르던 열 두 제자들은 모두 줄행랑을 놓았다. 마태복음 26장에서다.

 

  이때 잡힌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관저에 가서 심문 끝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진다. 여기서 사

형이 확정되어 집행관 백부장 ‘롱기누스’에게 인계되어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둔다. 그리고 예수님

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는 내용이 기록된 마태복음 27장 내내 제자들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꼭 있어야 할 아들들이 모두 달아나고 없는 격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

을 섬기던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예수님께 다가설 수 있는 한 최 근접 거리까지 가서 슬퍼하고 통

곡했다.

 

  마태, 마가, 누가는 이렇게 여자들만 있었다고 기록하는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임종 직전 요한 자

신이 십자가 밑에 있었다고 기록한다(요19:25~27). 그때 예수님이 자기에게 모친 마리아를 부탁했다

고 말씀하셔서, 자기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다고 적고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요한은 기회를

 틈타서 다가갔다가 여차하면 몸을 피하곤 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어쨌든 남자들은 도망을 쳤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전말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며 어떤 은혜를 구할 수 있을까?

 

  거두절미하고 열 두 제자는 사내답지 못했고, 예수님 측근 여성들은 여장부들이었다고 결론짓는

 것은 섣부르다. 오히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특질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남녀가 어떻

게 쓰임 받는지를 살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읽을 수 있다.


  첫째,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양으로 다른 것 말고, 근본적이 차이가 있다. 많

은 사람들이 남녀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갈등을 빚는다. 오늘날 대부분 부부 문제도 여기에

 기인한다.

 

  십자가 사건은 열 두 제자들에게나 여자들에게나 충격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두렵고 떨리고, 자칫

자기도 죽게 될까봐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이후부터 남자와 여자의 길은 갈린다.

 

  남자는 명분을 중시하고, 여자는 눈앞에 벌어지는 정황에 올인 한다. 남자들은 예수님을 포기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명분을 택한다. 남자들의 장점인 논리력과 판단력에 근거하여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적응력과 놀라운 친화력이 장점이다. 여기에 섬기의 능력을 타고났다. “예수를 섬

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들~(마27:55)”이다.

 

  둘째,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장점을 활용하여 적재적소에 기용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

가 사건의 첫 번째 증으로 여자를 택하셨다. 또 부활의 첫 번째 증인도 여자로 세운다. 그리고 부활하

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영광도 여자들에게로 돌린다. 여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소식을 제자들

에게 알리는 역할도 여자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일을 추진해야 될 필요가 있을 때는 결단력이 있는 남자들을 기용한다. 예수

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지기를 거듭할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메도록 하고,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에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섰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이 땅 구석구석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해야 한다. 그 일은 추진력, 결단력을

 갖춘 남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여인들을 갈릴리에 보낸다. 여자들은 기뻐서 뛰어

나간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지혜가 있다면 우리의 가정은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셋째, 성경은 남녀 사이에 순서가 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하와를 지으셨

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머리

는 하나님(고전11:3)”이라고 푼다. 이는 어떤 우열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순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은 남자이고, 남자의 영광은 여자(고전11:7)”라고 기록했다. 하나님은 남자를

통해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하와를 배필로 주시면서 여자가 남자의 영

광을 드러내도록 섭리하신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남녀관계를 정리하자면, 첫째, 여자의 머리는 남

자이고, 둘째, 남자의 영광은 여자다.

 

  남녀는 불평등의 관계가 아니다. 다만 순서가 있다는 뜻이다. 남녀는 다 똑같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운동선수이다. 다만 그 팀의 주장을 맡은 사람이 남자라는 비유가 가능할 뿐이다. 주장은 선수에게

독려하는 자리가 아니라 감독이나 코치 앞에서 선수를 대변하고 대표하는 직임이다. 남자는 여자를

 세우고 빛나게 함으로써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또한 남자의 매력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첫 마디는 “평안하냐(9절)”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 “여자들이 나아가 그의 발을 붙잡고 경배(9절)”했다. 발을 잡고 경배하는 일은 당시 왕

이나 통치자에게 복종과 경의를 표하는 관행이다. 그런 관행으로 부활하신 주님께 경배하는 것이 오

늘날의 예배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예배 모습이다.

 

  그런데 만약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맞이하는 사람이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 제자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엎드려 경배하기 이전에, “주님이 맞습니까? 틀림없습니까?”하고 확인 먼저 하려 했을

 것이다. 실제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갔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도마가 뭐라 하는가? “나는 주님

의 옆구리 창 자국을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처음 만난 증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스타일 구기는 일이다. 왜

 여자들이 첫 번째 증인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된다. 여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여자가 있어야 한

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은 남자가 해야 되듯이 말이다.

 

  “평안하냐?”는 말씀에 그냥 엎디어 주님의 발을 잡고 경배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명장면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바로 이런 대접 받기를 원하신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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