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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글

영의 품격

작성자잔느|작성시간18.04.30|조회수11 목록 댓글 0

---영의 품격---

오늘날 우리는 영적인 감각이 있는지 없는지를 주의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영의 품격(Sterling quality of spirit)이 어떠한지 주의해야 한다. 누가복음9장51절부터 56절가까지의 한 단락의 말씀은 영의 품격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주님은 두 제자가 가진 것이 어떠한 영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르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고 꾸짖으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무슨 영으로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느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늘 예루살렘을 향하여 호감을 느끼지 않았고 늘 유대인을 적대시해 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간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영접하지 않았으며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다. 주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주님이 복음을 위하고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대한 일이었다.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주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간 다음 땅 끝까지 그분의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마리아 첫번째 지점에서 뜻밖에도 그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우리 주님은 너무나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분이시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자 주님은 즉시 머물러 있지 않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이 성경을 근거하여 성경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그들은 엘리야가 열왕기 하에서 역사한 것(1:1~12)을 따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불태우기를 원했다. 그들은 "여기에 엘리야 보다 더 큰 사람이 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치 않다니! 참으로 이럴 수가 있는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께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그분이 하나님이 세운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기를 구했다. 그들이 이렇게 열심을 내는 것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몸을 돌려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주님은 여기서 그들이 성경을 근거하고 열심을 낸 것을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이 옳지 않음을 꾸짖으셨다. 사람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고 성경에 부합되게 행 할 수 있으며 그들의 열심이 구약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따른 것일 수 있고 선지자의 방법대로 행한 것일 수 있지만 그 영은 옳지 않을 수 있다. 여고보와 요한은 주님을 사랑하고 열심을 내는 데는 틀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영은 틀렸으며 주님으로 꾸짖지 않으실 수 없게 했다. 그들은 열심이 있었고 주님을 사랑했지만 그들의 영은 옳지 않았다.

여기서 주님의 말씀이 주는 계시는, 사람의 영이 틀릴 때 틀렸는지의 여부를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모를 가능성이 아주 많다. 여고보와 요한은 지나치게 자신을 믿었으며 엘리야가 한 일을 근거하여 주님이 다시 한 번 하시도록 기도하고자 했다. 그들은 완전히 자신의 영이 이미 틀렸음을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의 영이 틀린 것은 기이하지 않다. 그러나 영이 틀려도 자신은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기이한 일이다. 사람의 행위가 틀리면 쉽게 회복할 수 있지만, 영이 틀리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를 범하고도 자신이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잘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영이 틀리면서도 자신은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잘못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시와 빛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당신이 말을 할 때 당신의 영의 어떠함을 알지 못하고 당신의 영이 틀렸는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말을 듣는 사람은 즉시 당신의 영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이 공과를 배운 사람이 있다면 한번 들어보면 알 수 있으며 또한 즉시 알게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표준이 단지 성경에 부합되고 도덕적으로 좋으며 행위가 옳은 데 있지 않고, 더욱 옳은 영에 근거하여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우기 원한다.

(워치만 니 전집/제3집 제16권/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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