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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글

율법과 교회 그리고 믿음

작성자조에|작성시간19.01.24|조회수17 목록 댓글 0

율법과 교회 그리고 믿음

그리스도 당시에
유대인들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안식일로 보여진다.
안식일을 범하는 예수가
자신을 정당화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조상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었으며
자신들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을 허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포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식을 예표한 것으로서
안식일의 실체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자기 일을 쉬는 것이다.

곧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를 소유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안에 들어가
안식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키고 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을
가장 중시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그처럼 중시하고 있으며
그 정점은 주일 대예배에 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의미보다
주일 예배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일 예배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안식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주일은 오히려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바쁘고 힘든 날이다.

주일성수라는 개념은
예수가 말씀하신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한 의미와도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주일 예배를 신앙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그처럼
중시했던 것처럼 말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허물고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한
예수를 죽일 자로 아는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주일 예배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들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공격할 것이다.
그만큼 주일 예배를 중시한다.

교회가 주일 예배를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면 말씀을 전할 길이나
믿음에 대해 알지 못한 이들의
믿음을 세울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다. 하나님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은
주일 예배보다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한
과정으로서 율법적 삶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 사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서는 것은
예배 의식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말씀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이다.
물론 그외 찬송이나 기도, 간증 등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율법적 삶의 시작이다.
진정한 믿음을 배우기 위해서는
율법적인 삶을 시작해야 한다.
참되고 옳은 가치를 제시 받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삶이
율법적 삶이다.

율법적 삶 안에는 구약의 율법,
신약의 율법,
교회가 제시하는 율법,
직분에 따르는 율법이 있으며
그 안에서 살 때에 자기만의
삶의 방식으로서의 율법도 생겨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한
여러가지 삶의 기준이 곧 율법이다.
그같은 율법 안에 둘러싸여
그런 삶을 만족시키고 살려하는 것이
율법적 삶이다.

그러나 그런 율법적 삶을
다 살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삶은 사람의 본성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투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도구로서
기도가 있어야 할 것이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곧 율법적 삶의 전형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삶을 위해
그리스도를 의존하여
살려하는 것이 율법적 삶이다.

율법이 믿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말씀을 알 것이다.
그런 율법적 삶을 살다가
자기 내면의 욕심이나 탐욕, 정욕,
이기심이나 시기와 질투 등이
나타나 결코 율법 안에서 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끝내는 그 안에서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때가 있다.

물론, 참된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여러 곳의 문을 두드리며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찾고 찾다가
자기를 잃고 그리스도로 살아야 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을 듣게 될 때
그 말씀을 붙들게 되면
그 때가 곧 율법이 믿음으로 인도하는
초보적인 선생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곧 율법적 삶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이 드러나
결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알고
믿음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비록 성경에서 말하는
그 교회는 아니지만
오늘날의 교회의 역할은 있다.
그것은 믿음의 삶에 대한 백지 상태의
사람들을 전도하여
먼저 율법적 삶을 살게 하는 일이다.
물론 그들은 믿음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는 율법적 삶의 시작이다.

물론,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만
율법적 삶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선과 악을 분별하며
어떻게 살 것을 결정하는
율법적 삶을 살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굳이 교회의 율법적 삶이 아니라도
이미 율법적 삶을 살게 된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얻기까지
열심내어 행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교회의 율법적 삶은
그런 그들의 율법적 성향을
더욱 드러나게 하고 열심을 품게 하여
자신이 처한 죄인의 현실을 깨닫게 하여
진정한 믿음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거룩한 삶을 향한 목표는
결코 사람이 스스로는 살아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교의 율법주의적 삶과
같은 역할을 오늘날의 교회(?)가
담당하고 하나님은 거기서
자기 백성을 불러내어 참다운 교회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율법적 삶(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에클레시아)자들이
곧 교회인 것이다.

십자가 복음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교회(?)들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처음부터 복음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서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기존 교회에서 그런 율법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거룩이라는 목표에 이르지 못함을 깨닫고
다른 삶의 방식, 곧 그리스도를 위한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 의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곧 믿음의 삶이다.

기존 교회에서 주일 예배의
역할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유대교에서의 회당의 모임이나
성전에서의 제사도 그러하다.
특히 유대교의 안식일 교리는
더욱 철저하다.
그러나 믿음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들을 귀만 있다면
그런 기존 교회들을 통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존 교회들을 통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과
영적 삶에 대한 경험등은
더 없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의 삶으로의
전환도 쉽지 않다.

기존 교회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나 복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시대에 유대교회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했다.
유대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들이 참된 믿음을
전하는 자들을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바울은 복음을 가리켜
자유케 하는 복음(갈5:1)이라고 했다.
어떤 종교적 의식도 믿는 자들을
구속할 수 없다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받아야
하는 할례조차도 거부했던 것이다.
만일 단 한 가지의 율법이라도
받아들이게 되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지게 되고
그것은 저주 아래
있게 되는 것(갈3:10)이라고 말했다.

바울이 기록한 갈라디아서 말씀을
이해한다면
오늘날의 예배 중심의 교회를
교회라고 부르지 않게 될 것이다.
율법적 삶에 매여 있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회는 거기서 나와
오직 믿음만을 추구하는 자들일 것이다.

율법적 삶을 모두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바랄 때에야
오직 예수라는 의미가 성립되는 것이다.
아직 기존 교회에서의 율법적 삶이 좋고
그것을 내려놓을 경우에
불안감이 느끼는 자들은
믿음을 받아들일 때가 아니겠지만,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옳다라고 여긴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잃는
믿음의 길로 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을 향한 길이며
그리스도의 오랜 사랑의 인도하심의
결과임을 알기를 바란다.

#인조에선교회 #김윤창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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