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안의 PC에서 거실까지...게임 폼팩터가 바뀐다
핸드헬드 PC 성장, 스팀 머신 재등장...게임 하드웨어 재편 조짐
게이밍 핸드헬드 PC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스팀 머신의 출시 예고가 발표되면서 2020년대 게임 하드웨어는 본격적인 폼팩터 경쟁 구도에 접어들고 있다. PC·콘솔·모바일로 나뉘던 게임 생태계가 새로운 구도로 재편될 조짐이다.
핸드헬드 PC의 부활...게임으로 눈을 돌리다
핸드헬드 PC는 노트북보다는 작지만 스마트폰보다는 큰 크기의 개인용 컴퓨터를 말한다. UMPC(Ultra-Mobile Personal Computer)라고 불리기도 하며, 과거 2000년대부터 많은 기업이 시장에 뛰어들어 판매했지만, 활용도를 찾기가 어려워 도태됐던 기기다.
하지만 2020년대, 핸드헬드 PC는 게임으로 눈을 돌려 게이밍 기기로서 재탄생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게임 플랫폼인 ‘스팀’의 운영사 밸브는 2022년 스팀 덱(Steam Deck)을 출시했다. 영국의 시장 조사 업체인 Omdia에 따르면 스팀 덱은 출시 해인 2022년에만 162만 대를 팔았다.
스팀 덱의 흥행으로 인해 핸드헬드 PC의 시장이 커지면서 2023년부터는 대만의 하드웨어 제조사 ASUS의 ‘ASUS ROG Ally’, 다국적 IT 기업인 Lenovo의 ‘Lenovo Legion Go’ 등 새로운 게이밍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2020년대 들어 스팀 덱을 시작으로 새로운 핸드헬드 PC가 등장하며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시장 조사 기관인 IDC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핸드헬드 PC의 누적 판매량이 600만 대에 근접했다. 또, Omdia는 올해 8월 핸드헬드 PC가 2025년 세계적으로 230만 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며 2029년까지 연간 470만 대의 기기가 팔릴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게이밍 핸드헬드 PC의 예상 성장률. 핸드헬드 PC는 연평균 2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처 = Market Report Analytics)
서울 용산구에서 게임 팩과 중고 게임 기기를 판매하는 이모(44) 씨는 주로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 Xbox를 취급하며 핸드헬드 PC는 일부 브랜드만 소량 들여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스팀덱이 있는지 묻는 손님이 꾸준히 있고, 다른 핸드헬드 PC를 찾는 문의도 종종 들어온다”며 “어디서든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데다, 새로운 형태의 PC 게임기라 궁금해서 한 번쯤 찾아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핸드헬드 PC는 또 다른 휴대용 콘솔 게임 기기인 닌텐도 스위치 등과 비교하면 아직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PC 게임을 언제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핸드헬드 PC는 분명히 PC 게임의 폼팩터 경쟁을 불러일으키며 성장 중인 모습이다.
PC·콘솔의 경계를 허문다...‘스팀 머신’의 출격
핸드헬드 PC가 성장세를 보이며 기존의 게임 기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을 때, 미국의 게임사 밸브에선 또 다른 PC 폼팩터 경쟁, 즉 데스크톱·노트북·콘솔·핸드헬드처럼 ‘PC를 어떤 형태의 기기로 구현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을 예고했다. 밸브는 올해 11월, 스팀 덱에 이은 신규 하드웨어인 ‘스팀 머신’을 2026년 초 출시할 예정이라 발표했다.
스팀 머신은 기본적으로 콘솔(플레이스테이션·XBOX처럼 TV에 연결해 쓰는 전용 게임기)처럼 TV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 기기다. TV 아래에 두고 컨트롤러로 조작하며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기존 콘솔 게임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콘솔 기기들과는 달리, 스팀 머신은 PC를 표방한다. 사용자는 필요할 때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해 데스크톱처럼 쓸 수 있고, 밸브의 전용 운영체제인 스팀OS를 적용시켜 게임 구동을 최적화했다. 이는 PC의 개방성과 콘솔의 간편함을 동시에 가져오는 기기로서, 기존 PC와 콘솔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로 보인다.
이외에도 밸브는 공용 게임패드인 ‘스팀 컨트롤러’와 무선 VR 헤드셋 ‘스팀 프레임’의 출시도 함께 예고했다. 두 기기는 새로 공개된 스팀 머신은 물론 기존 스팀 덱과도 연동되며, 하나의 스팀 계정으로 사용자가 보유한 게임 목록을 공유한다. 밸브는 이 네 가지 기기를 축으로 집 안 어디서나 스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드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며, PC 게임을 소비하는 폼팩터를 넓히려는 전략을 드러내고 있다.
플랫폼 경쟁을 넘어, 어디서 어떻게 즐길 것인가의 경쟁으로
비단 스팀만이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PC 제조사 ASUS가 내놓은 ‘ROG Ally’, 레노버의 게이밍 핸드헬드 ‘Legion Go’, MSI의 ‘Claw’ 같은 윈도우 기반 핸드헬드 PC들이 이미 시장에 포진해 스팀 덱을 견제하며 경쟁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핸드헬드 PC로 게임을 즐기는 서모(32)씨는 “가볍게 게임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럴 때마다 PC를 켜기엔 귀찮다고 느낄 때가 많아 소파에 기대서도 할 수 있는 핸드헬드 PC를 애용한다”며 “스팀 덱은 스팀 게임에만 최적화되어있어 범용성이 높고 다른 콘텐츠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윈도우 체제의 핸드헬드 PC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핸드헬드 PC로 편하게 게임을 즐기는 모습.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또한 폼팩터 경쟁은 핸드헬드 PC에만 그치지 않고 콘솔 업체들까지 확산되고 있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Xbox 콘솔 게임기의 뒤를 이을 차세대 Xbox 게임기를 기존처럼 TV 앞에서만 쓰는 콘솔이 아니라, 윈도우와 결합해 어디서든 사용 가능한 하이브리드 PC 형태로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팀 머신과 함께 PC 기반 거실 기기를 둘러싼 새로운 게임 하드웨어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결국 이용자 입장에선 이제 ‘어떤 플랫폼에 속한 게임을 즐길 것인가’가 아닌 ‘어디서 어떤 기기로 게임을 할 것인지’를 고르는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이런 선택지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며, 그만큼 플랫폼과 하드웨어 기업들의 폼팩터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