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랩 시선] 스포츠 카메라의 ‘아시안 패싱’
중계권 시장 ‘VIP’, 시상식선 '유령'… 유럽 축구계에 밴 '신인종주의’
유럽과 서구 중심의 현대 축구 산업에서 아시아 시장은 해외 중개권료 등 수입을 거두는 ‘큰 시장’이다. 각종 언론 보도 자료에 따르면 EPL 연간 해외 중계권 총액은 3조 8천억 원 규모로 추산되며, 아시아 전체가 내는 중계권료는 7천700억원대에 달한다. 아시아는 프리시즌 투어의 유니폼을 매진시키며, 구단의 재정을 떠받치는 막강한 ‘VIP 소비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극적이고 영광스러운 순간, 미디어의 카메라는 아시아 선수를 화면에서 지워버리는 ‘아시안 패싱’을 반복하고 있다.
스포츠 중계 시장에서 구매력의 우위를 점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배제’되는 모순은 과거의 거친 언어적 폭력이나 인종차별적 야유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정교하고 교묘하게 작동하는 ‘신인종주의(Neo-racism)’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스포츠 산업의 차별적 문화를 확인하기 위해 호주 NPL NSW의 SD 레이더스FC(SD Raiders FC)에서 활약 중인 현직 해외파 함동화(20)선수를 취재하고, 국내외 축구 매니아들의 여론도 살펴봤다.
영광의 트로피 들어 올리자, 갑자기 카메라 돌려
'헐시티' 소속의 '히라카아 유' 선수가 2025-26시즌 잉글랜드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려는 순간의 모습(왼쪽 사진)과 드는 순간 갑자기 바뀐 화면(오른쪽 사진)이다.
최근 몇 년간 유럽 축구계에서는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들이 잇따라 포착됐다. 대표적으로, 2025-26시즌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플레이오프 결승전 직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 헐시티의 일본인 공격수 히라카와 유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주관 방송사의 중계 카메라가 돌연 관중석을 비추며 화면을 전환한 것이다. 아시아 선수가 우승컵을 드는 영광스러운 순간, 전 세계 아시아 팬들이 고대하던 장면을 방송사가 임의 편집해버린 결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리그1의 소속인 '이강인'의 2024-2025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 메달 수여를 받기 전 갑자기 카메라 전환됐으며,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압둘코디르 후사노프'의 2025-2026시즌 '카라바오컵' 우승 후 트로피를 건네받기 직전에 화면이 전환돼 원경을 비추고, 이후 '엘링 홀란드'에게 트로피를 전달되자마자 카메라가 홀란드를 비추는 패싱을 당했다. 이것이 축구 팬들 사이에서 ‘노골적인 아시안 패싱’이라는 분노가 터져 나온 이유다.
맨시티 소속의 '압둘코디르 후사노프' 선수가 지난 26년 3월 22 카라바오컵에서 우승한 뒤트로피를 받기 전 모습과 건네 받은 후 사진이다. 트로피 들고 있는 선수는 '존 스톤스' 선수인데(왼쪽 사진) 후사노프 선수가 트로피를 건네 받는 순간에 화면이 전환됐다. <사진=쿠팡플레이 중계 장면 캡쳐>
‘성실한 일꾼’ 프레임과 미디어의 ‘용병’ 프레임
유럽 미디어나 현지 지도자들은 아시아 선수를 평가할 때 주로 '성실함', '이타적인 헌신'을 칭찬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아시아 선수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며, 팀을 주도하는 리더가 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기도 하다. 함동화 선수는 현장에서 느끼는 보다 근본적인 장벽으로 '피지컬'과 '언어'를 꼽았다. 함 선수는 "아시아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경우가 많고, 현지 언어가 유창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되어 팀원들과 소통할 기회가 적어진다"며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팀원들은 '저 선수는 원래 말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존재감이 더욱 약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서구 축구계에서 아시아 선수는 늘 “용병”이라는 차가운 수식어와 마주해야 한다. 철저하게 압도적인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면 주류 사회에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함 선수는 미디어가 규정하는 이 '평범함'의 장벽이 생각보다 무섭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이 문제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디어 입장에서 아시아 선수는 특별한 스타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함 선수는 “실제로 우리 팀 영상을 보면 경기 시작 전 '베스트 11' 단체 사진에만 제가 잠깐 나올 뿐, 슈팅이나 훈련 장면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지 미디어가 자국 선수나 서구권 스타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는 사이, 아시아 선수는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함 선수는 “이번에 논란이 된 해외 리그의 사례만 보더라도 '히라카와 유' 선수는 팀의 우승을 이끈 1등 공신”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아시안 패싱은 차별적으로 느껴지며, 아시아 선수들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돈이 필요할 때는 VIP, 주인공일 때는 패싱
국내 축구와 해외 축구 매니아인 김동완(23)씨는 “이번 아시안 패싱 논란에 분노하는 이유는 유럽 축구 산업의 자본주의적 위선 때문”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김씨는 “돈이 필요할 때는 아시아 시장을 VIP로 대접하면서, 전 세계에 구단의 위상을 과시하는 '우승'과 '시상식'의 순간에는 아시아 선수를 철저히 배제한다”고 해외 미디어의 모순을 비판했다. 즉, 아시아는 '돈을 지불하는 소비층'이나 '팀을 돕는 일꾼'으로만 존재할 뿐, 대륙의 주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서구 중심적 선민의식이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각국 협회는 '인종차별 반대(No Room for Racism)' 캠페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대적인 규제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규정들은 경기장 내 미디어나 구단 내부에서 교묘하게 일어나는 '시각적 패싱'이나 '은밀한 소외' 앞에서는 무력했다.
함 선수는 "무엇을 촬영하고 누구를 비중 있게 보여줄지는 결국 미디어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적 패싱까지 제도가 완전히 걸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함 선수는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이전에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문제”라며 “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스스로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규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문화적 관행'이나 '방송 권한'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차별들은 '신인종주의'라는 말까지 탄생시켰다. 실력이 비슷함에도 연봉 협상이나 대우에서 은근한 불이익을 받거나, 중요한 경기에서 엔트리 제외를 당했을 때 선수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축구를 더 잘해서 증명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현실이다.
“미디어 입장에서 아시아 선수는 그저 '평범한 용병 중 한 명'일 뿐이다.”
유럽 현지에서 뛰고 있는 축구 선수의 말이 한창 진행중인 월드컵 경기의 함성 속에서도 기자의 귀를 맴돌고 있다.
우재하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