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기분 좋은 변화, ‘커먼즈필드’
강원 춘천시 공지로를 지나다 보면 유독 눈길을 끄는 하얀 건물이 있다. 과거 조달청과 도시공사가 자리했던 이 공간은 이제 시민들의 아이디어와 관계가 모이는 새로운 공공공간으로 변했다. 바로 커먼즈필드 춘천이다. 커먼즈필드 춘천은 그저 공간을 빌려주는 시설이 아니다. 이곳은 지역 주민과 활동가, 청년과 기업, 행정과 시민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실험하는 ‘사회혁신 플랫폼’이다.
커먼즈필드 춘천은 지난 2018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저성장과 인구감소, 기후위기, 양극화처럼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정만의 힘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운영을 맡고 있는 춘천사회혁신센터 관계자는 “지역 주민과 지자체,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논의하고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커먼즈필드 춘천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 공간은 행정안전부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의 지원을 통해 조성됐다. 현재는 협치형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되며, 주민 주도 실험, 시민 공론장, 리빙랩, 시민연구 등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하향식(top-down)’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상향식(bottom-up)’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가 인정한 공간… 시민들의 쉼터가 되다.
커먼즈필드 춘천의 가장 큰 특징은 ‘열린 공공공간’이라는 점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혁신가들의 일터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공간 곳곳에는 지역 공동체와 혁신 활동 사례들이 아카이브돼 있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변화와 사회혁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이러한 공간 디자인과 운영 철학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커먼즈필드 춘천은 세계 4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레드닷(Red Dot) 디자인 어워드와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공공건축상도 받았다. 관계자는 “혁신문화공간은 단지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서로 만나고 경험을 나누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다양한 시민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가·로컬벤처·청년들… 지역의 가능성이 모이는 곳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커먼즈필드 춘천에는 11개의 입주단체가 지역의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다. 입주 기준은 명확하다. 춘천에 기반을 두고 있거나, 사업 기반을 춘천으로 이전하려는 조직이어야 한다. 또 지역 문제를 해결하거나 춘천의 매력을 확산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아이디어와 실험 방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입주 기간은 최대 3년이며 경쟁률은 평균 2대 1 수준이다. 공간은 무료 임대가 아닌 유상으로 운영된다. 입주 단체들은 전용면적과 상주 인원 기준(4인·6인·7인 기준)에 따라 건물 2층과 3층에 위치한 독립된 사무실을 배정받으며, 면적별로 월 23만 원에서 최대 39만 원 상당의 임대사용료를 내고 이용한다.
이곳에 둥지를 튼 단체들을 살펴보면 지역을 바꾸는 아이디어가 빼곡하다. 농부와 도시 소비자를 잇는 커뮤니티 기반 커머스 기업 ‘주식회사 농사펀드’, 사진을 본질로 삼아 개인과 지역, 브랜드의 서사를 수집하고 엮어내는 기록 플랫폼 ‘프로젝트 들(DEUL)’, 춘천의 위치를 상징하는 소양강의 이름에서 착안해 도시를 문학적으로 읽어내고 창의적인 콘텐츠로 창작하는 도시 문학 실험실 ‘소양하다’ 등이 있다. 이들은 개별 기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커먼즈필드 춘천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람과 도시를 연결하는 다각적인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입주 단체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입주 기업들은 전용 사무실 외에도 센터 내 다양한 공유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공유주방과 공유오피스, 다목적 공간 등은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대화하고 작은 실험을 시작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지역의 연결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예쁜 건물에서, 정든 공간으로
커먼즈필드 춘천 역시 처음부터 시민들에게 익숙한 공간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커먼즈필드’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어 시민들 사이에서는 “예전 조달청 자리”, “강대 정문 앞 하얀 건물” 정도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시민들이 직접 공간을 사용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운영진은 “예전에는 단순히 예쁘게 꾸며진 공공시설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시민들의 손때가 묻고 정이 가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그 변화 자체가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지난 2023년 커먼즈필드 춘천 야외광장에서 열린 ‘춘천마임축제x춘천사회혁신센터 공동 기획 <모두의 봄은 커먼즈다>’ 행사를 꼽았다. 당시 행사 주제는 ‘예술과 커먼즈’였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광장에서 함께 춤을 추고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 공간이 정말 커먼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커먼즈라는 개념이 설명이 아니라 장면으로 다가왔던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2026년, 더 큰 도약을 준비하다.
커먼즈필드 춘천은 이제 단순한 공간 운영을 넘어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 주관 ‘2026년 다부처 협업 지역역량성장거점’ 조성 사업지역으로 공식 선정되면서, 춘천 전역의 생활권 문제를 해결하는 ‘도시 단위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공모 선정은 그동안 부처별·지자체별로 분절되어 운영되던 사업들을 생활권 단위로 연결하고, 주민 주도의 정책 실험 거점을 고도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춘천시는 ‘커먼즈필드 춘천’을 거점으로 삼아 ‘시민이 정책을 만드는 도시’라는 실험을 제안해 최종 선정됐다. 이에 따라 커먼즈필드 춘천은 행사장이나 공유공간의 역할을 넘어, 시민의 아이디어를 정책 실험으로 발전시키고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는 중심 허브 역할을 맡게 된다.
사업비로는 우선 국비 8억 원과 지방비 8억 원을 합쳐 총 1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향후 연차별 평가를 거치면 3년간 지방비를 포함해 최대 32억 원까지 지원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 예산 지원 외에도 행정안전부 전문가 자문단의 맞춤형 컨설팅과 성과공유회를 통한 확산 지원 등의 혜택도 함께 주어진다. 이번 사업을 통해 커먼즈필드 춘천은 하나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춘천 전역으로 실험을 확장한다. 약사명동, 근화동, 소양동, 사북면 등 춘천의 각 생활권 공간들을 거점과 연결하여 로컬 창업, 관광, 농촌 체험 등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한 다채로운 콘텐츠와 실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의 핵심인 ‘정책랩’은 공모 선정 주체인 춘천시를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실질적인 실행과 연결은 커먼즈필드 춘천의 운영 주체인 ‘춘천사회혁신센터’가 도맡는다. 센터가 그동안 축적해온 시민 참여 유도와 의제 발굴, 지역 실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위탁 형태로 실무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운영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커먼즈필드 춘천이 도시 단위의 혁신 플랫폼으로 역할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시민들이 지역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공간으로 운영해 나가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서 “공간은 결국 사람이 채워줄 때 가장 생기를 얻는다”며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