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보다 '내돈내산'을 믿는다…소비자가 정보를 선택하는 새로운 방식
대학생 박모 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한 모공 앰플 영상을 보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유명 인플루언서가 사용 전후 사진을 비교하며 "모공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강조하는 영상이었다. 그러나 화면 아래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문구가 보이는 순간 박 씨는 곧바로 앱을 닫았다. 대신 네이버에 '모공 앰플 내돈내산'이라고 입력해 커뮤니티 후기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광고는 다 좋다는 말만 하잖아요. 저는 진짜 산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가 더 믿음이 가요." 박 씨는 제품 상세페이지보다 "각질 뜸 있음", "유분 많음", "재구매는 고민" 같은 실사용 후기의 단점 정보를 더 오래 들여다봤다.
최근 소비자들은 기업의 광고나 인플루언서의 협찬 리뷰보다, '직접 산 사람이 남긴 후기'를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뒷광고 논란' 이후 사람들은 광고성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며, 광고·협찬 여부 자체가 제품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소비자 신뢰의 무게 중심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 신뢰가 급격히 이동한 계기는 2020년 8월, 유튜버 참PD가 생방송에서 여러 유명 유튜버들이 유료 광고임을 밝히지 않은 채 제품을 소개해 왔다고 폭로하면서 '뒷광고 논란'이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구독자 수가 수십만에서 백만 명에 이르는 여러 인기 크리에이터가 광고 표기를 하지 않고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것)’인 것처럼 꾸민 사례가 알려지면서 시청자 기만 논란이 커졌고, 영상 삭제와 활동 중단이 이어졌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같은 해 추천·보증광고 심사지침을 개정해 영상 제목·본문·마무리 등에서 광고 고지를 명확히 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이 사건 이후 소비자들은 콘텐츠를 볼 때 광고 여부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됐고, 제품을 구매할 때 영상·후기·커뮤니티를 교차 검토하는 '복합 검색' 방식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고 있다.
대학생 김모 씨 역시 화장품을 살 때 인스타그램 영상은 참고만 할 뿐, 실제 구매 여부는 소비자의 실제 후기를 보고 결정한다. 김 씨는 "영상이 아무리 예뻐도 '제품 제공'이라는 표시가 뜨면 일단 의심부터 든다"며 "무조건 '내돈내산' 후기를 찾아보고 리뷰어의 피부 타입, 사용 기간 등을 비교해 본 뒤 장바구니에 담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SNS에서는 광고로 떠오른 제품을 소비자가 직접 구매해 테스트하는 '검증형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뷰티 리뷰 채널은 협찬 없이 직접 구입한 쿠션 파운데이션 10종의 발색과 지속력을 비교 실험했고, 또 다른 채널은 화제의 광고 제품을 검증해 추천 여부를 명쾌하게 정해주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영상 댓글에는 “솔직 리뷰 최고다’’ “지갑 닫았다” 등 솔직 검증 콘텐츠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실제로 협찬 배제 원칙을 내세우는 '오라잇 스튜디오'(구독자 33만 명)나 실사용 기반의 IT 기기 검증 채널 'IT's Okay'(구독자 13만 명) 등은 소비자들이 광고 대신 참고하는 대안적 정보원으로 자리 잡았다.
'내돈내산'의 영향력은 플랫폼의 시스템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 쇼핑은 지난 2023년부터 실제 결제 내역이 확인된 작성자에게만 '내돈내산 인증' 표시를 자동으로 부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플랫폼이 직접 후기의 신뢰성을 기술적으로 보증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정보의 불균형을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해소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한다. 정선희 수원여자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2025년 논문에 따르면,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플루언서가 제공하는 정보가 소비자의 구매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광고가 진정성을 잃는 순간 마케팅 효과는 급격히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루언서의 파급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수치적인 영향력보다 '신뢰성'과 '진정성'이 최우선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모든 '내돈내산' 리뷰를 무조건 맹신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마케팅 대행업체들이 일반 소비자의 계정을 대여해 교묘하게 내돈내산 후기인 것처럼 꾸며 커뮤니티 평판을 조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신뢰도가 높아질수록 이를 역이용해 소비자를 기만하려는 시장의 시도 역시 정교해지고 있다. 결국 소비자는 다양한 플랫폼을 교차 검증하며 스스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야 하는 또 다른 피로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정보 생태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일방적인 기업의 광고 메시지보다, 평범한 이웃 소비자의 날것 그대로의 경험이 사실을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되고 있다. 이제 '내돈내산'이라는 네 글자는 단순한 구매 인증을 넘어,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정보를 필터링하고 대안적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