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다 / 강성옥
1.
숲을 걷다가 호수를 만났다 바람은 물 위에만 머물고 나무는 물가에서 자기 그림자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 건너편에는 작은 집 한 채 지붕은 오후의 햇빛을 천천히 식히고 마당 한가운데 나무 아래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저곳에 살고 싶다
2.
나는 수영을 할 줄 안다 그런데 이 호수 앞에서는 자꾸 신발 끈을 다시 묶는다 강은 등을 밀어주지만 호수는 사방이 건너편이다 물속에 가라앉은 달이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아서 무릎까지 들어갔다 나오고 허리까지 들어갔다 나오고 물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들어갔던 자리는 이미 다시 잠잠하다 나는 호수에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3.
밤이 되면 나는 호수를 건넌 사람이다 젖은 발자국이 마당을 가로지르고 나무 아래 의자에는 내가 벗어놓은 신발이 가지런히 아주 가지런히 놓여있다 잎사귀들은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하늘은 밤새 낮은 곳으로 내려와 내 눈꺼풀 위에 별자리를 새긴다 아무도 무엇이 되라고 묻지 않은 밤 나는 윤곽이 흐려지고 손가락 끝부터 바람에 녹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어둠 속에서 어둠이 되어 넓어진다
4.
오늘도 나는 호수 가장자리를 걷는다 물속에는 햇빛이 부서져 수천 마리 은빛 물고기가 흔들리고 어디선가 익사한 오후들이 바닥에 쌓여 있다 그래도 푸른빛이 나를 부른다 발이 바닥을 놓는 순간 물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의 문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빛 부스러기들이 나에게 붙어 헤엄친다 건너편 집은 여전히 저기 있고 의자도 나무도 바람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호수가 조금씩 나를 건너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