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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태양신(미트라)에 흡수되는 기독교 (사진첨부)

작성자모래시계|작성시간08.12.22|조회수739 목록 댓글 0

그리스도교의 발달과정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라는 것이 항상 조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사(正史)와 다른 이야기의 역사에도 귀를 기울여 이치를 따질 필요가 있고 사실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Constantine I

다른 주장을 하는 역사가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의 내용을 조작·변형시켜 본래의 그리스도교를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염두에 두어야 할 역사적으로 중요한 한 사건은 8세기인 740∼750년경 프랑스에서 왕위문제로 파벌간 반목이 한창 심할 때 당시 교황이 관여하여 정당한 왕이 될 사람을 천거한 일이다.
이때 교황의 절대적 권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소위 콘스탄티누스의 기증(Donation of Constantine) 이라는 책으로 된 문서를 발견하였다고 내놓은 일이 있었다.
지금은 이 문서가 조작된 것이 증명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 문서를 진짜로 모두 믿고 있어 그 위력을 당당히 과시하며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사실 지금도 이를 기본으로 이루어진 관례를 주류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따르고 있다.
이 문서의 내용은 콘스탄티누스가 크리스천이 된 연유부터 그리스도교와 관계되는 콘스탄티누스의 모든 업적을 기록한 책이었다. 이 책에는 콘스탄티누스가 교황의 상징과 휘장을 만들어 증정했으며, 콘스탄티누스가 로마(市) 교역(敎域)의 교왕을 그리스도의 대리인(Vicar of Christ)이라고 불러 하나님에게서 특별한 임무를 받고 지상을 다스리는 황제의 신분으로 다른 모든 제왕들을 다스릴 수 있는 정당성을 수여했다는 것이다.
결국 서부 유럽에서 교황이 마음대로 왕을 만들 수도 있고 왕자리를 뺏을 수도 있는 권한을 갖게 된 원인이 주로 이 책에 근거하여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조작인지 몹시 혼동되어 여러 종류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현실이다.
이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란 책에 의하면, 콘스탄티누스는 항상 크리스천에 동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결국 크리스천의 신앙을 허가하여 자유로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자기 신조였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를 공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리스도교라는 이상한 신앙을 근절하기 위해 오랫동안 박해를 계속했지만, 기대하던 성과는 고사하고 그리스도교가 계속 번져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그 수가 엄청나게 되었다.

 

 

Battle between Constantine and Maxentius
그래서 왕위를 다투기 위해 싸우던 그의 정적인 막센티우스(Maxentius)를 이기는 한 방편으로 크리스천들을 자기편에 흡수하면 막대한 득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그리스도교 신앙을 허가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있다.
312년 밀비안 다리의 결전(Battle of Milvian Bridge) 이란 전투에서 막센티우스와 대결하기 직전에 그는 예언자와 같은 말을 했다 한다.

즉, 꿈에 하늘을 쳐다보니 빛을 발하는 십자가가 있었고 십자가에 X 자 형태로 In Hoc Signo Vinces(이 상징으로 그대 정복하리니) 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하고 나서 자기 군사에게 모두 방패에 페인트로 하늘에서 내려 준 일종의 부적이라 할 표식을 그리도록 명령하였다.

 

 
 Labarum - A symbol of Christianity adopted by the Emperor Constantine I  

현대에서는 이 모노그램을 라바룸(Labarum) 이라고 읽지만 이것은 영어로 P 자와 X 자를 겹친 형태이고, 실제로는 희랍어 치(X) 와 로(P) 자를 겹친 것이다. 그래서 이 상징을 치-로(Chi-Rho) 라고 부르며 희랍어 크리스토스(Christos) 의 첫 두 글자를 택한 것이다.
여하튼 그 결과 콘스탄티누스는 대승리를 하게 되었고, 이것을 크리스천이 사교(邪敎)를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하튼 이 일은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큰 계기를 만들게 되었으며, 콘스탄티누스가 크리스천을 이용하는 위력을 실감하게 되어 그의 신념을 굳히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유독 그리스도교라는 신앙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어떤 신앙이나 믿음으로 군인들이 정신적으로 무장되면 그것이 그리스도교이건 불교이건 심지어 공산주의나 왕에 관계없이 전투에서 막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 인기를 얻은 그리스도교를 얼마 후 국교로 아주 바꿔 버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On the reverse of this coin struck under Vetriano, the emperor is holding two labara, the ensigns introduced by his ancestor Constantine I (emperor).

 

Coin with Chi-Rho
Coin of Constantine's successor Magnetius, with Chi-Rho and Alpha and Omega. Image: Forum Ancient Coins.

 


잠깐 위에서 말한 라바룸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크리스천에게 인기 있는 라바룸을 처음 인용하여 기대 이상의 큰 효과를 본 콘스탄티누스는 이를 더욱 크게 활용하였다.
그는 주홍빛 사각 깃발을 만들고, 그 안에 X 자를 금으로 수놓고, 희랍어로 TOUTO NIKA 라는 글을 넣었으며, 가장자리는 금빛 술을 달아 창을 깃대 삼아 기를 매달고 행진을 했다.
지금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우승기는 바로 이것을 본뜬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씌어 있는 Touto Nika 라는 글은 이 표식으로 정복한다 는 뜻이고, 후에는 라틴어로 In hoc signo vinces 라 하였다. 그리고 X 자도 역시 정복이라는 뜻이고, 이 때부터 기병대들이 이런 식의 깃발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 전까지 계속되었으며, 아직도 여러 나라의 국기에 X 자 형이 들어 있는 것은 바로 여기서 유래가 된 것이다.
또 라바룸을 팍스 그리스도(Pax Christo) 라고 부르는 경우도 흔히 있다. 팍스라는 말은 여기에 키스하라 는 뜻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여기 라바룸에 키스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장한 꿈에서 보았다는 라바룸의 이야기는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보좌로 항상 옆에 있던 한 증인의 말을 인용하면, 그때 콘스탄티누스는 지금의 프랑스 아우툰(Autun) 부근에 있는 무적의 태양신 솔 인빅투스(Sol Invictus)를 섬기는 한 절에서 입교식을 하였고, 솔 인빅투스를 꿈에서 보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솔 인빅투스라는 것은 미트라 신을 말하는 표식이다.

태양신을 세긴 동전
Coin of Emperor Constantine the Great depicting Sol Invictus with the legend SOLI INVICTO COMITI, circa 315 AD.  

다시 말해서 라바룸이라고 부르기 전에 미트라 종교에서는 이를 솔 인빅투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밀비안 다리의 전투 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 의회(Senate)에서는 로마 시의 콜로세움에 아치(arch)를 세우고 신의 뜻을 받들었기에 라는 구절을 새겼다 하며, 여기서 말하는 신은 예수가 아니라 태양신인 미트라를 뜻했다는 것이다.
또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집권 당시의 로마 국교는 태양신을 믿는 종교였으며, 평생 동안 자기 자신이 직접 그 태양신 종교의 최고 승려직을 갖고 실행했기 때문에 그가 황제로서 집정한 기간을 태양의 황정(皇政) 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집정기간 동안 사용한 황실의 깃발과 엽전에 솔 인빅투스 상징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이 임종하기 바로 전이 된 것이지 예수처럼 요단 강에서 세례받기 위해 뒤로 미루다가 할 수 없이 죽기 전에 받은 것이 아니다. 그가 황제로서 요단 강에 가서 세례받으려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다 죽게 되어 거동하기 어려울 때 임종자리에서 받을 이유가 없었다.
이 사실은 그 때서야 비로소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거나, 근력이 없어 주위의 강압으로 할 수 없이 세례를 받았을 확률도 있다.
참고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그가 한참 그리스도교를 통합하려는 노력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그의 아들을 살해하고 부인을 끓는 물에 산 채로 집어넣어 죽인 일이 있어, 이는 크리스천이 된 사람의 행동이라 짐작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한다.

그리고 위에 말한 치-로 의 모노그램도 그가 창안한 것이 아니고, 그보다 250년 전의 폼페이 고분에 그려져 있듯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Mithra and the Bull: fresco from Dura Europos late 2nd–early 3rd century

 황소를 죽이는 미트라 여신

 
 

미트라 여신 조각 

 

Actually, that reminds me of Mithra.

 
 

 

솔 인빅투스 라는 종교는 원래 시리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콘스탄티누스 시대보다 100여 년 전에 이미 로마 황제들이 믿고 있던 종교라 한다.

솔 인빅투스 , 즉 미트라(Mithras) 신을 섬기는 이 종교의 특이한 점은 태양신 미트라 가 다른 모든 신들이 자발적으로 합세하여 모시기 때문에 으뜸신으로 추앙되는 신이라는 점이다.
이 원리를 제왕들에 비하면 혹시 한두 명의 왕이 반란을 해도 다른 제왕들이 힘을 합하여 평정을 하기 때문에 항상 화평이 있게 된다는 것이며, 종교적으로 보아도 원래 로마에 자리잡고 있던 미트라(Mithras) 라는 태양신 종교와 그 외 점령지의 토속종교와 크리스천 등 모든 종교를 자연스럽고 평화스럽게 융화시키는 종교로서 이들이 자발적으로 섬겨 주는 종주 종교이기 때문에 로마 황제들이 선호하였을 것이며, 이미 로마제국 전체에 깊이 보급되어 있던 종교였다 한다.
따라서 로마제국을 통치하는 황제로서는 이보다 더 이상적인 종교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가 많아진 크리스천들을 박해하여 반대세력을 기르는 것보다 흡수하여 미트라 종교 테두리 안에 넣어 두는 것이 황제로서는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콘스탄티누스는 오래 전에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정교회파의 교리는 미트라 의 교리와 공통되는 점이 여럿 있었다. 미트라 는 단일신 종교였고 정교회측도 단일신을 지향했었기 때문에 미트라 산하에 묶어 두기 쉬웠을 것이므로, 그는 정교회를 지지하여 동일본질을 논하는 파를 누르고 번성했을 것이다.
그가 312년 종교의 자유를 공표했을 때 그 동안 크리스천들이 1월 6일을 예수의 생일이라고 잔치하던 풍습이 있었는데, 그는 태양신 종교에서 태양이 다시 태어난다는 12월 25일로 예수의 생일도 바꾸도록 지시했으며, 유대인들이나 크리스천들이 휴식의 날로 여기던 토요일을 태양신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일곱 번째 날에 쉬었다는 일요일로 바꾸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일요일을 태양의 날인 Sun-day"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태양신 종교인들이나 그리스도 종교인들이 같은 날 휴식을 하여 결국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관념을 암암리에 강조하기 위해 취한 조치였을 것이다. 또 미트라 나 솔 인빅투스 에 영혼의 영원불사 교리, 미래에 다가올 최후의 심판과 심판날에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교리는 이미 존재해 있는 터였고, 성모 마리아 대신 어머니 여신 시벨(Cybele) 을, 태양신 아버지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미트라 자신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과 인간 세계에 내려온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하나님 예수의 이론과 대등한 내용이었다.
 Cybele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기존 종교 미트라(Mithras) 와 비슷한 태양신 종교와 선대 황제들이 백여 년 전에 이미 채택한 솔 빅투스(태양신;Sol Invictus) 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상치되는 점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미트라 가 신으로서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신격화를 조장했을 것이라 한다.

이런 이론을 따라가면 콘스탄티누스라는 사람은 신앙인이라기보다 정치인으로서 종교를 정치화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Coin of Emperor Probus, circa 280 AD, with Sol Invictus riding a quadriga, with legend SOLI INVICTO 

 

 


솔인빅투스(태양신)이 세겨진 바티칸 성베드로성당

Christ, represented as Sol Invictus. 3rd/4th c. AD. Vatican necropolis under St. Peter's Basilica, Mausoleum M.

M

 

Sol Invictus

태양신 Sol Invictus 솔 인빅투스(미트라 종교)

 

 

 

The official recognition of sun worship in the Roman Empire began during the time of Aurelian when he instituted the cult of "Sol invictus". 

 

출처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원문보기 글쓴이 : 은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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