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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에서의 느부갓네살의 꿈.... 신상!

작성자모래시계|작성시간09.08.11|조회수1,057 목록 댓글 0


 
성경은 사실이다(8)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장차 세상에 어떠한 나라가 임할 것인가를 말씀하시고 그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도 수천년전부터 예언하시고 예언대로 오셨다가 예언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하나님은 장차 그가 하실 일을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먼저 보이셨다.

      


 
세상에 올 나라와 그 이름을 밝힌 하나님

성경의 무대는 이미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 사사시대를 지나 왕정시대를 지나며 하나님을 잊고 왕과 그 백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 앞에 악하므로 하나님은 이방민족과그의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을 징계하였다.

그 징계의 시작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성의 파괴이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성과 성전이 파괴되었으며솔로몬성전 안의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기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졌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노예로 지났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노예생활을 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꿈에 나타나 이스라엘 땅 넓게는 당시중동지역에 장래 어떠한 나라들이 올 것인가를 보여 주셨다. 구약성경 1234쪽, 다니엘 2장에 나오는느부갓네살의 꿈 이야기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그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왕은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을 불러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 맞추어달라고 명하였다. 왕은 점쟁이들에게 그 꿈을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말한다. 당시 다니엘 선지자 또한 바벨론에서 종살이를 할 때이다.

다니엘이 이 말을 듣고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 가서 술사들을 멸하지 말고 왕에게 인도하면 왕의 꿈과 그 꿈을 해석해 주겠다고 말한다.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왕에게 꿈을 알려주며 그 꿈을 해석해 주었다. 다니엘 2장 31-35절이 다니엘이 왕이 이러한 꿈을 꾸지 않았느냐고 말한 내용이다.

왕이여 왕이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왕이 꿈에 크고 번쩍번쩍 빛나는 심히 두려운 모양을 한 신상을 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상의 머리는 금으로 되어있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으로 되어 있는데 종아리는 얼마는 철이고 얼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는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한것은 아니고 뜨인 돌이 날아와 신상의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을 쳐서 부숴 버렸는데 우상을 친 돌은온 세상에 가득하였지만 부숴진 신상은 바람에 불려 날아가 어디로 간지 알 수 없지 않았느냐는것이다.

 그리고는 그 꿈을 더 자세히 해석한 내용이 다니엘 2장39-43절이다.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네째 나라는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다음 그림은 느부갓네살의 꿈에 나타난 우상을 다니엘의 진술을 바탕으로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38절 후반에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듣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곧 금으로 된 머리에 해당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각각의 내용이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므로 금머리는 느브갓네살의 바벨론 제국을 말한다.

그런데 39절에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라고 말한다. 가슴과 두 팔이 은으로 되어있는 나라는 바벨론보다 못한 나라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한다.

 네째 나라는 철과 같이 강한 나라인데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고 얼마는 철인것과 같이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라 한다.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으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철이고 얼마는 진흙인 것과 같이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철과 진흙이 섞인 것과 같이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않은 것은 철과 진흙이합하지 않음과 같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 이 말이 다니엘이 말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않된다. 다니엘의 입을 빌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바벨론 다음 바벨론보다 못한 나라가 오며 그 다음에는 놋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한다.

마지막으로 철같은 강력한 나라가 일어나서수많은 나라를 쳐서 무너뜨리고 이길 것이지만 다리가 두 개로 나누인 것과 같이 두 개로 나누일것이다. 그러나 뜨인 돌이 쳐서 부서뜨린 부분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고 얼마는 진흙인 것과 같이 서로 합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섞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다니엘은 다니엘서 3장에서 8장에 이르기까지 느부갓네살이 본 신상에 대한 해석을 계속하며 다니엘서 8장 20-21절에서 바벨론 다음에 올 나라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한다.

네가 본 바 두 뿔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이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네 뿔이 났은즉 그 나라 가운데서 네 나라가일어나되 그 권세만 못하리라

 여기서는 두 뿔가진 수양은 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다니엘 7장의 설명을 자세히 보면 세상에 나타날 네 나라들을 4마리의 동물로 비유하여  일어날 나라들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라고 표현한 나라의 특징을 두 뿔 가진 수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양팔을 두 뿔로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가슴과 두 팔 가진 은 같은 나라를 메대와 바사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놋같은 나라는 수염소로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놋같은 나라 이름을 헬라라고 지칭하고 있다.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단7:15)

 다니엘이 이 예언을 할 당시는 바벨론 왕 시대이다. BC 560년경의 일이다. 그러면 실제로 세계사에서 어떤 나라들이 왔는가를 살펴보자 바벨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BC 600년경)전에 세운왕국이다. 첫째 짐승이라 불리는 나라로서 지금의 이라크이다.

느부갓네살 왕이 통치하던 시대의 바벨론의 힘은 막강했다. 중동 전역과 유럽 일대, 북아프리카 일대, 심지어 인도까지 다 점령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왕 통치 때 바벨론 성을 쌓았는데 그 넓이가 마차 네 대가 나란히 갈 정도로 넓었다. 다니엘의 꿈에 나타나는 바벨론은 사자모양을 한 짐승이었다. 바벨론성 발굴에서 수많은 사자모양의 신상이 나타난다.

 

      

그 후 BC 500년에(2500년전) 두 번째 짐승으로 표현되는 은 같은 나라에 해당되는 폐르시아, 현재의 이란이 등장했다. 그때는 바사라고 불리웠다. 고레스 왕이 일어나서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중동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다. 고레스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자기 땅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한 왕이다.

 다음 BC 313년(약 2,300년전)에 세 번째 짐승 털이 많은 수염소로 표현되는 헬라(그리스)가 출현했다. 헬라왕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으로 유럽 역사상 최대의 왕국을 건설했다. 놋같은 나라가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이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오랜 동안 폐르시아와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승리를 거두면서 이 세계가 그의 지배권으로 들어갔다. 그는 전쟁에서 패한적이 없는 불패의 군인이었다.

 

바빌로니아 제국

고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의 왕국이 들어선 것은 기원전 1830년경에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들이 바빌론 시를 중심으로 바빌로니아 제1왕조를 열면서부터였다. ‘고(古) 바빌로니아’로 불리는 이 왕국은 기원전 1600년경까지 남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 전체와 북으로 앗시리아를 포함하면서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장악했다.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일대의 정치, 상업의 중심지가 된다.

고 바빌로니아는 제6대 함무라비 왕(B.C.1792∼B.C.1750) 때 전성기를 맞는다. 함무라비 왕은 엘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지역을 평정하여 메소포타미아 세계를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아카드어를 국어로 삼았고, 역법(曆法)을 통일시키는 한편 ‘함무라비 법전’이라고 불리는 282조로 구성된 법전을 정비하여 바빌론을 명실상부한 오리엔트의 중심도시로 발전시켰다. 그는 또한 수도 바빌론에 성벽을 쌓고 바빌론의 수호신이었던 마르두크(Marduk) 신을 주신으로 하고 이슈타르(Ishtar) 여신과 탐무즈(Tammus)신을 섬기는 종교를 확립했으며 각지에 이들의 신전을 세워 중앙집권제도를 확립하였다. 이때부터 마르두크는 수메르 신들 중에 주신(主神)의 자리를 획득하여 ‘벨(바알) 마르두크’라 불리는 국가적인 숭배 대상이 되었다.

함무라비 왕이 죽은 후 고 바빌로니아는 쇠퇴하여 기원전 1531년경 히타이트의 침입으로 멸망한다. 이후 바빌로니아의 지배권은 동북부 산악지대를 차지한 카사이트족에게 넘어간다. 400여 년간의 카사이트 지배 후 도시국가 가운데 아시리아가 점점 세력을 얻는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1220년경, 바빌론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점점 판도를 확장해갔다. 강성하고도 잔학하기로 유명했던 아시리아는 군사력을 길러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가 자립하여 제국으로 발전했다. 강대한 아시리아는 니네베(Nineveh)를 수도로 하여 북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장악하고 한때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까지 함락시켰다. 당시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에서 임명한 부왕(副王)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신 바빌로니아

기원전 626년, 아시리아에 반란을 일으킨 아람계 칼데아 부족의 나보폴라사르가 바빌론에 입성하여 바빌로니아 왕조를 열었다. 역사에서는 이 왕조를 고 바빌로니아와 구분하여 신 바빌로니아라고 하며, 칼데아 부족이 세웠으므로 칼데아 왕조라고도 한다. 나보폴라사르는 메디아와 연합하여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철저히 파괴해 버린다. 나보폴라사르의 후계자 네부카드네자르 2세(재위 B.C.605∼562, 개역성서의 ‘느부갓네살’)의 치세는 바빌로니아의 황금시대였다. 그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으며 유대인들을 바빌론에 유폐시켰다. 고대 함무라비 왕 이래 몰락했던 바빌론은 다시 부흥하여 명실공히 세계 상업의 중심도시로서 성장, 유래 없는 번영을 누린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 성을 중건하였다. 왕은 수도 바빌론에 주신(主神) 마르두크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의 신전과 제단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당시 문서와 바빌론 성 발굴 결과를 종합해 보면 바빌론 안에는 주신 마르두크 신전 55개를 포함하여 일천 개가 넘는 신전이 있었고, 이슈타르 여신을 위한 제단만도 180개가 있었다. 마르두크 신전을 지을 때 그에 딸린 거대한 지구라트도 함께 만들어졌다. 바빌론 시의 중심부에 있는 마르두크 신의 성역 안에 화려한 청색 벽돌을 구워 탑을 쌓아올렸는데, 고대 전설 속의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이 ‘바벨탑’은 수세기 전 아시리아인들이 파손한 것을 신 바빌로니아 왕조를 개창한 나보폴라사르 왕이 기초를 쌓고, 그 아들인 네부카드네자르가 완성하여 재건한 것이다. 탑은 약 90미터의 높이로 장려하게 건립되었지만 현재 지상에 그 토대의 윤곽만 남아 있다. 또한 네부카드네자르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일컫는 ‘공중정원’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번영을 구가하던 바빌로니아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사후 급속도로 몰락한다. 이후 3대째까지 왕들은 짧은 치세 후 암살되고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바빌론 성을 함락시킨다. 신 바빌로니아의 1세기도 채 되지 못한 짧은 기간의 번영은 이로써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페르시아 제국 초기만 하더라도 바빌론은 세계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로서 번영을 이었으나 기원전 482년, 바빌론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성채와 신전들이 파괴되었다. 기원전 331년, 바빌론을 점령한 알렉산더 대왕은 바빌론을 복구하고 대제국의 수도로 만들 계획을 진행했으나 8년 후, 알렉산더 대왕이 네부카드네자르의 궁에서 사망함으로써 계획은 무산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바빌론은 1896년 로베르트 콜데바이 등 독일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기까지 흙더미 속에 파묻히게 된다.

                

  

이란 고원의 두 민족 - 메디아와 페르시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동쪽에는 이란 고원이라고 불리는 고원지대가 있었다. 이란 고원 옆의 저지대에서는 기원전 2700년경부터 엘람인들의 고대 왕국이 수사를 중심으로 번영하였으나 이 엘람인들은 고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에 의해 정복당하고 거듭 초토화되었다.

이란 고원에는 기원전 9세기경부터 메디아와 페르시아로 불리는 두 민족이 역사 속에 등장하는데, 이들 민족은 모두 말을 잘 타는 민족으로 관습과 언어가 비슷한 같은 계통의 민족이었으며 예로부터 위급할 때에는 공동으로 적에게 대항하는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었다.

두 이란족 가운데 초기에 더 강성했던 쪽은 메디아였다. 기원전 7세기,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한 아시리아 제국이 오리엔트 최초의 통일왕국을 이루면서 피지배민족들을 가혹하게 통치했다. 이 무렵 메디아는 수도 엑바타나를 중심으로 차츰 세력을 길러 데이오케스왕 때 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다음, 아시리아에 항거하여 폭정에서 벗어났다. 그의 아들 프라오르테스왕은 페르시아를 속국으로 만들어 이란계 두 민족이 합쳐진 강력한 힘으로 아시리아의 도시들을 차례로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제3대 캭사레스왕은 당시 새로이 일어나던 신 바빌로니아와 손을 잡고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공격하여 함락시켜 이로써 아시리아는 멸망하게 된다.

이후 신 바빌로니아가 대제국으로서 오리엔트 세계를 한 세기 가량 호령하던 즈음, 이란 고원에서는 세력의 변화가 일어난다. 메디아 왕국의 제4대 아스티아게스왕이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대왕. 재위 B.C. 559∼530년)에게 왕위를 빼앗긴 것이다(전설에 따르면 아스티아게스는 키루스의 외조부였다. 그는 딸이 낳은 아들, 즉 그의 외손자가 소아시아 일대를 지배할 왕이 될 것을 암시하는 꿈을 꾸고서 딸을 메디아인이 아닌 당시 세력이 약한 페르시아 왕가에 시집보냈다고 한다). 이로써 메디아 왕조는 멸망하고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관계는 역전되었으나 키루스 대왕은 융화정책을 통해 메디아인들을 계속 높은 관직에 등용하였으며 메디아인들을 페르시아인들과 결합시켜 두 민족으로 구성된 이원적 왕국체제를 이루었다. 이런 정책은 왕의 페르시아 제국에서 대대로 계승되어 고대 역사가들은 역사를 기술할 때 흔히 메디아와 페르시아를 구별 없이 쓰기도 했다.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

  

기원전 549년, 메디아를 병합한 키루스(구약성서에 ‘고레스’로 기록됨) 대왕은 ‘아케메네스 왕조’로 불리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키루스 대왕은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가장 존경하여 자신들의 ‘아버지’라 칭송하였던 인격적인 군주였다.

군사적으로도 키루스 대왕의 전과는 혁혁한 것이었다. 그는 메디아를 침략한 리디아에 대해 메디아 왕의 후계자로서 응전하여 기원전 546년경, 리디아를 멸망시켰다. 또한 그는 소아시아 일대(에게해 동쪽)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속국으로 만들었고, 기원전 539년경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알려져 있었으며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리던 바빌론성을 함락시켰다. 그는 바빌론 정복 이후 바빌론에 억류되어 있던 유대 민족을 본토로 귀환시켰으며 유대인들에게 바빌로니아가 파괴했던 예루살렘 성전도 복구하도록 명령을 내려 성전 재건축 역사를 지원했다. 키루스(고레스)는 구약성서에도 유대 민족의 ‘목자’(해방자)로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용맹한 정복자이면서도 관대하고 포용성 강한 군주였으므로 페르시아뿐 아니라 그리스인들에게까지 두루 존경을 받았다.

바빌로니아를 정복함으로써 키루스는 바빌로니아가 정복하였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지역도 지배하게 되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히 동방으로 원정을 감행하던 그는 결국 어느 유목민 부족과 전투 중에 전사한다.

키루스의 사후 아들 캄비세스 2세에 의해 이집트도 페르시아 제국에 복속되었다. 페르시아는 리디아, 바빌로니아, 이집트라는 주변의 강대국을 모두 정복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다리우스 1세(B.C. 521∼B.C. 486) 때에는 적극적으로 정복사업을 벌여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를 정복하기도 했다.

이런 페르시아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든 것은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부터다. 일명 ‘페르시아 전쟁’으로 불리는 대(對) 그리스 전쟁은 동·서양이 맞붙은 최초의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중앙집권을 강화하면서 제국의 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는 페르시아를 번영시킨 훌륭한 군주였으나, 국내 체제가 정비되자 밖으로 눈을 돌려 그리스 정벌에 나섰다. 그의 첫 출정은 이오니아 지방에서 일어난 그리스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회복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으나 이오니아의 반란을 원조한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응징하고자 다시 2차 원정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페르시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은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퇴하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때 그리스 병사 한 명이 전령 역할을 자청하여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4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쉴새없이 달려가 전투의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우리가 이겼다”는 한 마디를 전하고 숨이 끊어졌는데, 그 병사를 기념하기 위해 마라톤 경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리우스 1세는 퇴각한 후에 그리스 재침공을 준비하다가 사망하였으나 그 무렵 페르시아는 최대의 판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시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향했다. 그러나 살라미스 해전에서 해군이 그리스 연합군에게 다시금 크게 격파당하여 크세르크세스 1세는 본국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는 남아 있는 페르시아의 육·해군을 그리스 영토에서 몰아내어 페르시아 전쟁을 마무리했으며 페르시아는 내분까지 겹쳐 점차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역사가들은 이 페르시아 전쟁을 오리엔트식(페르시아)의 전제군주제와 서양(그리스)의 자유민주정이 대립하여 자유가 승리를 얻은 ‘자유의 전쟁’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이로써 페르시아의 세력이 약화되고 그리스 국가들이 세력을 얻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후 그리스 세계의 주도권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거쳐 마케도니아로 넘어가게 된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세계를 통일하고 세계 대제국의 건설을 목표로 원정에 나서 다시 페르시아와 부닥친다.

기원전 334년, 다리우스 3세가 다스리던 페르시아는 그리스 세계를 통일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공격에 무너진다. 다리우스 3세가 알렉산더에게 거듭 패하고 도피하다가 신하에게 암살당함으로써 페르시아 제국은 역사 속에서 막을 내리고,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주요 도시인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 등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전체 영역과 그리스 본토를 포함한 대제국을 건설한다.

페르시아 제국 멸망 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 제국의 일부가 된 페르시아는 기원전 323년, 대왕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바빌론에서 요절하자 대왕의 휘하 장수들에 의해 분열된다. 이란 고원 일대를 포함한 동부지역은 셀레우커스가 장악하지만 인도 변방의 반란으로 인더스 강 유역의 땅은 마우리아 왕조의 찬드라굽타에게 넘어갔다.

그후 이란 지역에서는 이란계 여러 민족들이 세력을 다투며 셀레우코스 왕조에 반기를 들었다. 기원전 247년에는 이란계 유목 부족인 파르니족이 파르티아라는 독립된 나라를 세워 옛 페르시아 영역의 상당 부분을 회복하여 번영을 누렸다. 파르티아는 한무제(漢武帝. B.C.140∼B.C.87) 때 중국과 교류하여 ‘안식국(安息國)’으로 중국에 소개되었다. 파르티아는 로마 제국과의 싸움으로 점차 세력이 약해지고 영토가 축소되다가 서기 224년 사산 가문의 아르다시스가 일으킨 반란으로 멸망한다.

7세기 이후 동로마제국과 소모적인 전쟁이 계속되면서 사산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아랍인들의 침입으로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도 막을 내린다.                           <출처 : 동아싸이언스>에서 인용

마지막 네 번 째 철 같은 나라가 바로 BC 197년(약 2,200년전)에 건국한 로마이다. 줄리어스 시저가 그리스를 물리치고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역사상 로마와 같이 강한 나라가 없었으며 유럽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나라이다. 로마는 그후 상당 기간 번영을 구가하다가 교황이 로마 제국을 대신해서 통치하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예수님이 탄생한 시대가 바로 가이사 아구스도(시저)가 로마를 다스리던 시대이다. 누가복음 2장, 가이사 아구스도(시저)가 로마 치하 사람들에게 호적을 명하여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호적허러 가서 예수를 낳는 바로 그 시기이다. 역사는 성경의예언대로 이루어졌다. 바벨론이 멸망한 다음 그리스 헬라가 세계를 다스렸으며 로마가 이었다.

  예수 탄생과 죽으심에 대한 에언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일은 대단한 사건이다. 인류 최대의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을 심판하시기 전 이 땅에 먼저 오셔서 죄인들인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구원받을만한 때이다.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철장을 가지고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엄청난 사건을 성경이 침묵하지 않는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4000년 전 아브라함에게 그가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하였으며 800년 전 이사야를 통하여 또 한번 주님이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구약성경 974쪽, 이사야 7장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하리라 고 기록하고 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말씀대로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서기 1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33년동안 이 땅에 사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유대인들에 의해 로마에 넘겨져 십자가에 처형되셨다. 그리고 3일 후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다. 성경은 이렇게 중요한 사건인 주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실 것을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약성경 72쪽, 마가복음 10장33-34을 보면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스도(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구약 성경을 통해 약속하셨고,이스라엘은 그 메시아가 오시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에오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로마인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이보다 더 큰 모순과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말씀대로 예수님은 로마 병정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재판하였으나 예로부터 아무런 죄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빌라도는 예수를 방면하고자 했으나 이스라엘 군중들이 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고민하였다.

   

빌라도는 이스라엘의 정치 및 치안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평수 수많은 군중이 이끌고 다니는 예수에 대해 여러 각도로 뒷조사를 했을 것은 자명하다. 이미 충분한 조사를 통해 빌라도는 예수님이 도덕적으로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죽여 달라"며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을 끌고 온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그에게는 죄가 없다"며 놓아주려고 여러 모로 노력하였다. 빌라도는 예수가죄 없음을 알고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모두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대답하였다.

 신약성경 50쪽, 마태복음 27장 24-25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자료실 빌라도 보고서 참고                                

 
성경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요한 1:11)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 쫓겨나 2000년간 전 세계에 흩어져, 가는 곳마다 비참하게 박해와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피값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지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빌라도가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다 했을 때 그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소서 라고 한 부르짓음은 이 일이 있기 800년 전에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그들이 한 말로 얼마나 혹독한 고난을 당했는지 역사가증명한다.

 구약성경 1183쪽, 에스겔 22장 4-5절은 이스라엘이 흐린 피로 죄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유대인의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무리의 소원대로 유대인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기 위해 가장 죄 많은 살인 강도 바라바와 예수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놓아주겠으니 누구를 놓아주길 원하느냐고 묻게 된다. 빌라도의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죄수요 살인자인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그러면 예수님을 석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빌라도의 생각은 빗나갔다.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빌라도는 유대 민족의 종교적 감정을 거스렸다가는 민란이 일어나고 또한 총독으로서의 자기 입장만 난처하게 되겠으므로, 유대인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죄 없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피 값을)당하라"고 했다. 이에 유대인들이 다 대답하기를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므로,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 주고 말았다.(마27:15- 26).

 유대인들은 크게 소리질러 바나바로소이다 라고 외치며 예수를 처형하기를 바랐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받들었다. 네가 흘린 피로 인하여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왔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거리가되게 하였노라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

 성경은 네 날이 가까웠고 연한이 찼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이방에서 능욕을 당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혹독한 벌을 내리시겠다는 경고를 내리셨다. 구약성경 1156쪽, 에스겔 5장 8-10절은 주 여호와께서 내가 너를 치겠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이방인의 목전에서 벌을 내린다고 하신다. 이방인으로 너를 치게 하여 벌을내린다는 말이다. 전무후무하게 벌을 내린다고 하였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만큼 호된 벌을내리겠다는 말씀이다. 그리한즉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셨는가.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아비를 먹을 만큼 혹독한 배고픔이 있고 그리고도 전쟁에서 남은 자는사방에 흩어버리시겠다는 말씀이다. 에스겔 말씀을 보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희 중에 벌을 내리되 네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그리한즉 너희 중에서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그 후 그들이 지내온 역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리스도를 죽인 피값은 그들 말대로 그들과 그들 자손에게 2000년 동안이나 돌아갔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태 12:36)는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를 배척한 죄와 그로 인해 그들이 받아야 할 대가가 어떠한 것임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경솔하고 망령된 말을 그렇게 담대히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약 율법에 무죄한 자를 죽이면 죽인 자의 피가 아니면 갚을 수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무죄한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들의 피가 약 2000년 동안 흘려져야 했다.

  이스라엘 최후의 날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께 어떤 형벌을 받게 될 것인지, 결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오시기 1500년 전에도 이미 이러한 내용이 예언되어 있다. 

 "너희가....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위기 26:27,28,3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형벌 하실 때 그들을 전 세계에 분산시킬 것과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항상 칼이 따름 같이 생명의 위협을 당할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 -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 이 황무지가 될 것을 예언하셨다.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그 열국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을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신명기 28:64-7)

 주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도 같은 말씀을 직접 하셨다. 주님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바로 그 때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라고 하셨다. 그것을 보거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안에도 들어가지 말고 빨리 도망치라고 말씀하셨다. 또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셨다. 주님이 살아 계실 때 하신 이 말씀은 주님이 돌아 가신지 40년이 못되어 서기 70년에 실제로 일어났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빌라도가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보다 더 혹독하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총독이 부임하면서 이스라엘과 로마간에 갈등이 심하였다. 이스라엘은 예수님 사후 혹독한 로마통치에 반발하여 몇 번의 독립전쟁을 시도하였다. 이에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37년 후인 A.D. 70년, 로마는 이스라엘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후에 로마황제가 된 타이터스 장군의 군대가 시리아 군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 이스라엘과 로마간의 전쟁은 3년이 계속되었는데 이스라엘은 맛사다라는 곳에서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저항하였다.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과 맛사다를 3년 동안 봉쇄하면서 성안에는 아이를 잡아먹는 사건이 비일비재하였다. 자기 자식을 잡아먹을 수 없어 아이를 바꾸어 잡아먹기까지 하였다. 로마군대는 아이밴 자를 칼로 가르고 젖먹이를 어미 품에서 빼앗아 땅에 메어쳐 죽이는 잔인한 학살이 있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로마의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려 전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지 예루살렘은 그 때부터 이방인에게 짓밟히게 된 것이다. 구약에 기록된 형벌의 날이 그들에게 이루어지고만 것이다

 

 신약성경 133쪽, 누가복음 21장 20-25절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당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로마군대에 이끌려 사로잡혀 갔다. 이것이 서기 70년의 일이다. 서기 70년 이스라엘은 이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 세계로 흩어지는 환난의 시대로 들어갔다.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대로 전 세계로 흩어질 수 있었는가이다.

후에 로마황제가 된 타이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침략하기 전 지위는 황제의 궁정대장이었다. 휘하에 군대를 거느리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의 영을 받아 예루살렘을 치러가기 위하여 유럽 각지에 주둔한 로마군 가운데 정예군을 차출하였다. 따라서 전쟁이 끝난 후 유럽 각지 주둔군이 이스라엘 포로를 노예로 사용하기 위하여 데리고 갔는데 결과적으로 세계 각국으로 흩어지는 결과가 되었다. 하나님은 신기할 정도로 그의 말씀을 이루어 가신다.

 주님은 누가복음 21장 25절에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때가 차기가지 이방인에게 밟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의 때가 다 차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게 돌려준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 유대인에게 복음을 주러 오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주님을 배척함으로 그 복음은 놀랍게도 우리 이방인에게 돌려졌다.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셨다. 그 후 예루살렘은 철저히 이방인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A.D. 70년의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예수님 사후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에 걸쳐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일으켰었다. 당시 로마는 내부적으로 어수선한 데다가, 이스라엘 같은 변방의 반란으로 강력한 진압이 필요한 때였다. 더구나 유대 저항군과 전투에서 생존을 약속받고 투항했던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에게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어, 로마의 분노가 극심해진 상태였다. 결국 당시 로마 황제인 베스파시안의 아들 타이터스 장군이 이끄는 8만명의 병력이 이스라엘의 구심점인 예루살렘을 박살내고자 한 것이다.

  로마군은 예루살렘성을 에워싸고 압박하며 고사 작전을 폈다. 물줄기를 끊고, 식량보급로를 차단했다. 당시 로마군의 성벽을 공략하는 기술은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수준의 것이었다.그런데 예루살렘 성벽 또한 고지대에 위치한 데다가 워낙 견고한 터라,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여겼었는지 유대인들은 로마군의 투항 권유를 무시한 채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로마군은 예루살렘성 주변에 토성을 쌓기 시작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 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누가 19:43,44)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누가23:28 - 30)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태 23:38).

구약에 예언된 말씀에 더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바로 '토성'이다. 고지대의 비탈진 성벽 주변에 어떻게 토성을 쌓을 수 있었을까? 당시 전쟁을 직접 목격한 요세푸스가 「유대전쟁사」에 그 해답을 서술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유대 제사장 신분으로서 이전에 독립 전쟁을 지휘하다 생포되었던 저항군의 지휘자였다.

토성은 나무를 엮어 칸들을 만들고, 그 안에 톨과 흙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쌓았다. 그러자니 엄청난 양의 나무가 필요했다. 그 목재를 충당키 위해 예루살렘 주변 사방 18km(90퍼얼롱) 내 전 지역의 나무들을 완전히 벌목하여 황폐화시켰다. 우리 서울의 경우 시청을 중심한 반경 18km 내의 면적이면 서울이 거의 다 포함된다. 예루살렘의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난 면적이 초토화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량보급원이 돌려질 것을 염려해 유실수 역시 모두 베어 없앴다. 그 이전에는 나무들과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 예루살렘의 자태가 나무가 다 베어져 버린 벌거숭이의 황량한 벌판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요세푸스는 적고 있다.

후에 로마군이 점령하고 확인한 것이지만, 오랜 기간의 고사 작전으로 성 내에서는 먹을 것이 바닥나고 굶주림이 극에 달해 자식을 삶아 먹는 일이 벌어졌다.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가 그 가족조차도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은 사건(신명기28:56, 57)들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같은 유대인인 요세푸스 조차도 그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결국 성벽은 무너졌고, 로마군은 무자비한 살상을 서슴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엄마의 품에서 빼앗아 부모가 보는 데서 내동댕이쳐 죽이고, 그 부모마저 죽여 버렸다. 임신한 여인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와 임부를 죽였고, 여느 전쟁과는 달리 노약자라고 해서 살려 주는 일도 없었다. 이 전쟁으로 110만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다. 어떻게 예루살렘 성에 이렇게 많은 인구가 있었을까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후에 밝혀진 기록에 의하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였을 때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다는 것이다.

로마군은 성벽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질렀다. 성전이 불에 탐으로 인해 금으로 입혔던 것이 녹아내려 벽과 바닥에 스며들었고, 군인들이 그 금을 긁어내고자 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 파괴가 자행되었다. 성읍이 황폐케 되고, 성소가 황량케 되리란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당시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로마군은 죽이지 않은 10만여 명의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갔고, 예루살렘은 졸지에 죽은 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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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는 타이터스가 세운 개선문이 있는데, 그 개선문 내부에는 예루살렘 점령 당시 예루살렘성전에서 약탈한 금촛대를 로마로 이성하고 있는 광경이 새겨져 있다. 그 후 예루살렘을 제외한 이스라엘 전국에서 독립 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A.D.135년 하드리안 황제는 아예 이스라엘 전역 985개 성읍을 초토화시키고 58만 명을 학살한 후 생존자는 세계 전역에 이산시켜 살게 했다. 이스라엘 전역을 다 불태워 볼모지로 만들고, 국민 또한 그 땅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에는 주권만 없었지 영토나 국민은 있었는데, 국가를 구성하는 세 요소가 하나도 남지 않고 이스라엘 국가는 비참하게 망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 온 땅에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할 것이라는"(신명기 29:23) 성경 말씀이 그대로 사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시에 110만 명, 이스라엘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58만 명이 죽임을 당하면서 남은 자들이 세계 만방에 흩어짐을 당할 때 시작된 유대 민족의 수난은 그후 2천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수난과 고통으로 이어졌다.이스라엘 민족, 즉 유대인을 핍박하고 죽인 주된 구실은 그들이 망국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이산과 고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은 계속된다. 구약성경 1183쪽 에스겔 5장 14-17절을 보자. 내가 또 너로 황무케 하고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능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내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에게 네가 수욕과 조롱을 당하고 경계와 괴이한 것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멸망케 하는 기근의 독한 살로 너희를 멸하러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의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라 내가 기근과 악한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 온역과 살륙으로 행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전 세계 곳곳으로 흩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땅을 황무케 하고 너를 둘러있는 이방인의 능욕거리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본래 이스라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보낸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포도 한 송이를 어깨에 메고 왔다. 그런 이스라엘 땅이 황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포로로 붙잡혀가 경작하는 사람이 없으니 황무한 땅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로 가나안 땅은 황무지로 변하게 된 동기가 있었다.

 역사상 알랙산더 대왕의 페르샤 함대는 대단하였다. 그보다 앞서 바벨론왕국이 전성기를 맞아 느부갓네 살이 건축한 엄청난 규모의 바벨론성과 지구라트, 공중정원 등을 만들 때 이에 필요한 목재의 대부분을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오늘 날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산맥의 삼림을 벌목하여 가져왔다. 기록에 보면 페르샤 함대를 만드는데도 엄청난 량의 목재를 레바논 산맥의나무를 사용하였다. 시편의 여러 곳에 레바논의 백향목을 노래한 내용이 나온다.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는데도 레바논의 목재를 사용하였다. 그러니까 BC 500-300년간에 엄청난 량의 레바논산맥의 목재들이 벌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기름진 땅은 어디서 오는지 아는가.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산맥으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는 물 때문이다. 갈릴리 호수를 가득 체우는 물의 공급원이 바로 레바논 산맥이다. 그 물을 생산하는 근원이 레바논 산맥의 울창한 삼림이었다. 그런데 레바논 산맥의 울창한 삼림이 에스겔서가 기록될 당시 벌채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300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로 흘러가는 물이 마를 것이라는 것을 아신 것이다. 물론 그 후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회교도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양과 염소를 기르면서 삼림지는 초원으로 변하여 물이 현저히 감소하였다. 하나님이 이것을 보셨던 것이다.

 
참고자료           이스라엘의 최후

 1) 주후 36년 빌라도는 자신의 통치에 반대하여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기병과 보병 부대를 파견했다.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그 결과 사마리아인들은 로마 관리들에게 사절단을 보내어 빌라도의 잔인성에 항의하고 빌라도를 제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빌라도는 관직을 박탈당하여 로마로 소환 되었다. 그는 이후에 골(Gaul:지금의 프랑스 지역-편집자 주)로 유배되었으며 그 후에 자살했다.
 
 
2)
빌라도가 제거된 다음 빌라도와 헤롯 대왕이 이전에 통치했던 지역들과 유대는 헤롯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에게 맡겨졌다. 헤롯 아그립바는 하나님을 모독한 행위 때문에 그분께 죽임을 당한다(행 12:20-23 참조). 그래서 벨릭스(행 24장)와 베스도(행 25, 26장)가 아그립바의 통치를 계승하였다.

마침내 플로루스(Florus)라는 로마 관리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잔인하고 포악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로마 지배자들에 대항 하여 주전 65년에 반란을 일으켰다. 유대인들은 사해 변방에 있는 튼튼한 마사다 요새 를 점령하여 로마 수비대를 거기에서 무찔렀다.


 예루살렘에서는 엘리아살이라는 성전 수비대장이 "열심당"(Zealot)이라는 혁명적인 집단을 조직했다. 열심당원들은 예루살렘과 안토니아(Antonia) 성채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로마 수비대를 몰아냈다. 이러한 반란은 유대의 여러 도시들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3) 로마는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었던 케스티우스(Cestius)라는 장군에게 팔레스틴으로 들어가 이러한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그는 주후 66년에 이만 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틴으로 들어왔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 안으로 후퇴하였다. 여섯 달 동안의 포위 후, 어떤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케스티우스는 갑자기 후퇴하여 퇴각해 버렸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돌격하여, 퇴각하는 로마군 육천 명을 살해했으며, 적군이 남기고 간 막대한 양의 전리품을 노획했다. 유대인들은 이제 앞으로 로마군과의 어떤 회전에도 자신있게 응할 수 있게 되었다.

 4) 이 당시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아마도 하나님께 경고받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 강 건너편 베레아 지역에 정착했다. 케스티우스의 이유없는 퇴각 소식을 들은 로마 황제 네로는 자신의 가장 능력있는 장군들 중 의 하나인 베스파시안(Vespasian)을 보내 명령을 완수하도록 했다. 베스파시안은 이름 난 자기 아들 디도(Titus)와 연합하여 육만 명의 로마군을 이끌고 북부 갈릴리 지역을 침략했다. 많은 유대의 도시들이 파괴되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가 포로가 된 것도 바로 이 전투 중에서였다.

 5) 주후 68년 겨울, 로마에는 네로를 자살로 이끈 사건이 발생했다. 소란스런 1년이 지난 다음 베스파시안은 새로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그때 디도를 보내 유대의 무질서의 온상인 예루살렘을 점령하도록 하였다. 디도는 주후 70년 2월에 팔만 명의 로마군과 함께 수천 개의 공성퇴와 공성포를 갖고서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6) 예루살렘에서는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원수같이 여기는 세 파벌들이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놓고 사실상 서로 싸우고 있었다. 하나는 예루살렘 위쪽을 차지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아래쪽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은 성전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폭동과 암살이 빈번했다. 반면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성문 앞에서 진치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읍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왜냐하면 수만의 피난민들이 진군하는 로마 군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7)
항복하라는 디도의 호통은 조롱당했다. 포위공격은 공식적으로 유월절 절기 동안에 시작되었다. 이 전투는 어느 편에서도 결코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 역사상 아마도 가장 잔혹한 전투였음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은 적의 머리 위에다 육중한 돌을 떨어뜨리고 끓는 기름을 부었다. 이에 로마 군인들은 예루살렘 어느 성벽에서나 볼 수 있는 곳에 서 매일 수백 명의 유대인 포로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함으로 응수했다.

 기근이 곧 예루살렘 성읍을 휩쓸었다. 동물이 희소했기 때문에 7월 17일에는 매일 드리는 희생제사가 중단되었다. 여자들은 자기 자신의 죽은 자식을 먹기에 이르렀고, 성인 남자들은 식량으로 먹기 위해 새똥 몇 줌을 차지하려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8)
로마 군인들은 드디어 성벽의 한 부분을 무너뜨렸으나 필사적인 유대인들이 그 동안에 성 안쪽에 벽을 쌓아 놓은 것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국 9월 8일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강타하여 성전을 불태우고 성벽을 무너뜨렸다. 약 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칼에 찔리고 불에 타거나 십자가형으로 살해되었다.
 
9)
그리스도께서 약 35년 전에 예언하셨던 놀라운 예언이 이제 이루어졌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 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1, 2).

 세속 역사 자료에서 보면, 포위 공격을 하고 있었을 때 로마 군인들 사이에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돌 사이에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숨겨 놓았다고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음(확증되지는 않았지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 군인들이 모든 돌을 제거한 이유가 바로 이 금을 찾아내려고 했던 데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10) 디도는 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로마로 끌고 갔다. 로마에서 유대인 포로들은 위험한 광산에서 노역하거나 로마의 투기장에서 맹수의 먹이가 되어야 했다. 수만의 유대인들이 세계의 노예 시장으로 팔려 나갔다. 사실상 수많은 유대인 포로들은 노예 시장의 공급과잉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유대인 포로를 끌고갔던 로마인들은 포로들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디도는 주화(鑄貨)를 발행했는데 그 주화에는 이스라엘을 종려나무 아래 쇠사슬을 차고 비탄에 잠겨 앉아 있는 여인으로 묘사해 놓았다.
 
11)
앞에서 말했듯이 주후 65년에 유대인들은 마사다 성을 완강하게 사수했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다음 수백의 가족들이 그 불타는 도시 예루살렘을 어떻게든지 도망쳐 나와 마사다로 향했는데, 그 총 숫자는 최대로 잡아 남자, 여자, 소년과 소녀 967명 정 도였다. 마사다는 위가 쟁반같이 평평한 돌로 이루어진 배 모양의 요새였다. 이 요새는 주변과 거의 수직으로 약 430m 융기한 곳이다. 마사다 요새의 면적은 80,000㎞이며, 그 둘레는 거의 1.5km이었다. 마사다는 헤롯 대왕에 의해 주전 35년에 튼튼히 요새 화되었다. 요세푸스는 헤롯 대왕이 두 가지 이유에서 마사다를 요새화했다고 말했다.
 
 (1) 팔레스틴 지역의 로마령에 사는 유대인들이 헤롯 왕의 통치에 반란을 일으킬 경우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2)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즉,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설복하여 헤롯을 죽이고 유대에 대한 지배권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12)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헤롯은 마사다를 요새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두 개의 장엄한 궁전, 커다란 창고들, 따뜻한 목욕을 하기 위한 욕실들, 그리고 부유한 왕이 그 시절에 할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시설을 건설하도록 명령했다. 26,000㎥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교묘한 급수 저장고가 만들어졌다. 이 급수 저장고는 그 당시에 해마다 1월에 단 며칠 동안 내리는 비로 규칙적으로 채워졌다. 고원 주위를 둘러 쌓은 성벽은 높이가 5.6m, 폭이 3.6m였으며, 그 성벽 위에는 높이가 약 22m인 37개의 탑들이 세워져 있었다고 요세푸스는 전한다.

예루살렘에서 도망온 유 대인 가족들이 탑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헤롯이 백년 전에 그곳에 저장해둔 포도주, 기름, 곡식들 그리고 대추야자 열매와 같은 막대한 양의 식료품을 발견했다. 건조한 기후 때문에 식량은 그곳에서 저장되었던 때와 마찬가지 상태였다. 그 외에도 유대인 가족들은 막대한 양의 철, 청동, 납 그리고 일만 명의 병사가 무장하기에 충분 한 무기들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마 군인들은 이 도망친 유대인들이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주후 72년 봄에 로마의 장군 실바(Silva)는 제국의 체면을 잃지 않도록 일만 오천 명의 병사로 마사다 요새를 포위하여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3) 유대인들은 이 년 동안 버텼다. 이 이 년 동안에, 실바는 서쪽편까지 이르는 동쪽의 경사면을 건설했다(예루살렘에서 붙잡아 온 노예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그런데 이 서쪽편은 꼭대기에서 맨밑바닥까지의 높이가 가장 낮은 지점이었다. 그런 다음 실바는 성벽을 돌파했지만(디도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또다른 성 내벽을 쌓았 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이 내벽은 통나무들과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공성 망치는 이 성을 부수는 데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어떤 타격도 진흙을 더 단단하게만 했다. 실바는 내벽에 있는 거대한 통나무를 불태워버리려고 했다. 요세푸스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불을 지르자마자 북쪽에서 불어온 한 차례의 바람은 로마 군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 북풍은 위로부터 불꽃의 방향을 되돌려서 그들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로마 군인 들의 공성포가 불길 속에서 다 타버리려는 듯이 보이자 로마 군인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신의 섭리인양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강하게 불어쳤 고 불꽃은 성벽 쪽으로 흩날리면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한 덩어리의 불길로 바꾸어 놓았다"["유대 전쟁사"(The Jewish War), p. 384].

14) 유대인의 지도자 엘리아살 벤 야일(Eleazer ben Yair)은 사실 로마 군인들이 그 다음날이면 성벽을 돌파하는 데 성공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곧 유대인들의 아내들이 강간당하며 그들의 자식들이 노예가 되며 그리고 남자들은 살해될 것임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 최후의 밤에 야일은 모두에게 자살하도록 강요했다.

15) 야일의 연설은 너무도 감동적이었고 예기치 못했던 행동이었기 때문에 성인 남자들은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가슴 찢어지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야일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눈물 어린 작별 인사를 나눈 다음 각각의 남자는 자신의 가족을 신속 하게 죽였다! 다시 요세푸스의 말을 주목해보자.

 "그들은 과거에 겪었던 공포를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으며, 또한 이미 죽은 자들보다 한 순간이라도 더 오래 산다면 죽은 자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한 곳에 재빨리 모아서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남은 성인 남자들을 죽이는 일을 맡을 열 사람을 제비 뽑아 선택하고 나머지 모든 남자들은 각기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이 누워 있는 곁에 누워서 자신의 양 팔로 아내와 자식들을 껴안고 고통스런 일을 수행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을 맡겼다.

이 열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 모두를 단호하게 죽인 다음 서로에게도 꼭같은 규칙에 동의하여, 제비로 뽑힌 한 사람이 아홉 사람을 죽이고 최후의 자신은 자살했다. 그들 모두가 서로를 완전히 신뢰했기 때문에 그 일을 수행하는 고통에서 서로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 하여 최후의 아홉 사람까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먼저 죽은 자들의 행렬을 둘러보아 그들 중에 아직도 자신 의 손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궁전을 맹렬히 불태웠다. 그리고 모든 힘을 모아 자신의 몸을 칼로 찔러서 가족들 곁에 넘어져 죽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한 사람도 로마인들의 손에 남겨 놓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죽었다. 그러나 한 노파가 엘리아살의 친척인 다른 사람...그리고 다섯 명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도망쳤다"("유대 전쟁사", p. 391).

16) 주후 130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안(Hadrian)은 예루살렘을 재건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전의 솔로몬의 성전 터에다 쥬피터(Jupiter) 신전을 세웠다. 이 일은 유대인들의 반감을 샀다. 주후 132년에 바르 코크바(별의 아들)라는 한 용감한 젊은 유대인 전사가 일어나 발람의 예언에 대한 성취가 있을 것임을 외쳤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편 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 원수 에돔은 그들의 산업이 되며 그 원수 세일도 그들의 산업이 되고 그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민 24:17-19).
 그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 제사장인 랍비 아키바(Akiba)는 바르 코크바를 이스라엘의 참 메시야로 인정했다. 혁명에 가담하려면 누구나 충성의 서약으로서 손가락 하나를 잘라야만 했다.

17) 20만 이상이 혁명에 가담했다. 곧 그들은 로마군으로부터 50개의 군사적 거점과 1천 개 이상의 마을을 빼앗았다. 바르 코크바는 마침내 주후 135년에 로마의 장군 줄리우스 세베루스(Julius Severus)에 의해 진압되었다. 코크바는 살해되었고 랍비 아키바는 산 채로 피부가 벗겨졌는데, 여전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다"(신 6:4).

18) 오십 만 이상의 유대 백성들이 이 기간 동안에 살해되었는데, 유대인들은 그로부터 1948년 5월 그들의 고향 땅을 찾기까지 투쟁하였다. 한편 예루살렘에서는 로마 황제 하드리안이 예루살렘의 재건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을 "아엘리아 카피돌 리나"(Aelia Capitolina)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제 대부분의 "문명화된" 세계가 유대 인을 싫어했다. 소수의 유대인이 디베랴(Tiberas)에 정착했고, 디베랴는 유대주의의 중심이 되었다.

                                                   자료: 유대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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