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4 설교되새김 -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4 그들의 온갖 행실이 그러하니, 하나님께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음란한 생각이 그들 속에 가득 차서, 주님을 알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이런 결정을 하셨다고 한다. 바로 “심판”이다.
그리고 그 “심판”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전쟁이 될 것이다.
심판이 시작되고(전쟁이 시작되면)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다.
15 나는 이제 내 곳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지은 죄를 다 뉘우치고,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환난을 당할 때에는, 그들이 애타게 나를 찾아 나설 것이다.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기대는 이렇다. “그들(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할 때는 나를 찾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기다림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전쟁’은 복인가? 저주인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의 편안함과 유익과 즐거움, 기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한다.
내가 편안하면 사랑하시는거다. 내가 즐거우면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거다.
반대로 내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우면 하나님이 날 버리신거다.
더 나아가 고통과 역격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의심한다.
설교제목이 이 주제다.
“어떻게 사랑이 그럴 수 있나?” “어떻게 믿음이 그럴 수 있나?”
나의 편안함, 즐거움, 이익이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측정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수 있나?
절대 그럴 수 없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았듯이 ‘전쟁’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나를 돌이키시려고 주신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다. 복이다.
신앙생활이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바른 삶에 이르지 못한다.
믿음의 생활이 ‘자기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하면 참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절대로 내 삶의 현상과 형편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오로지 기준은 하나님 말씀 뿐이다.
성경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면 맞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지는 내 형편이나 현상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성경을 보고 알고 믿고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