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감옥에 갇히 베드로가 교회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기적적으로 석방되는 내용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교회에 찾아갔을 때 모두가 놀라게 되고 베드로는 한곳에 머물 수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것이 헤롯에게 알려지게 되고 베드로는 그야말로 일급수배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12:19에 보시면 베드로를 잡기 위해 헤롯이 나름 조치를 취해 봤습니다만 종적을 감춘 베드로에 대해 화가 난 헤롯은 감옥의 파수꾼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는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베드로가 이제는 바울처럼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지역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벧전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가 쓴 베드로전서 수신자들이 이방지역에 있는 성도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고린도전서 1장에 보시면 고린도교회 내에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로 분열되었다는 것을 보면 고린도에도 베드로가 다녀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렇게 예루살렘에서만 머물던 베드로가 이방지역에서도 사역을 하게 된 것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헤롯의 핍박 때문이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헤롯의 핍박을 복음전파의 긍정적 요소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사건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과정일 뿐이지 결코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이 짧은 구절을 통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발견하게 되는 것은 헤롯은 영적인 일에 참으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베드로가 감옥에서 희한한 방법으로 나온 것은 벌써 두 번째입니다. 5장에서도 천사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나왔고 12장에서는 5장보다 더 기적적인 방법으로 나온 것인데 그렇다면 헤롯은 이 사건을 통해 뭔가 깨닫고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할텐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질 않은채 가이사랴로 훌쩍 떠나버린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어간에 활동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라는 자가 쓴 책에 아그립바 왕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성경에 나오는 모습과는 매우 다른 인자하고 종교적인 열심히 있는 인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지내기를 좋아하고 율법을 지키기를 힘쓰고 하루도 제사를 드리지 않는 날이 없다고까지 설명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뜻밖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헤롯이 죄도 없는 야고보를 참수하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둔 것을 보면 매우 이중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는데 한가지 기억하실 것은 요세푸스의 설명이 틀린 것이 아니라 헤롯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성과 정치적인 욕심을 함께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적인 목적이 눈앞에 있게 되면 평소에 보이던 영성과 인자한 모습은 과감히 내팽개쳐버리는 기질을 가진 자가 바로 헤롯이었던 것이고 이런 모습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헤롯이 가이사랴로 가게 된 것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질 않습니다만 말씀드린 요세푸스의 책에 보면 당시 로마황제 클라우디오 황제가 지금의 영국에 원정을 갔다 승리하고 돌아오는 날이었고 이 날이 황제의 생일이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지금 헤롯은 바로 그 클라우디오 황제를 기념하고 찬양하는 성대한 잔치를 벌이기 위해 가이사랴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로마황제는 가이사랴에 있지도 않고 오지도 않음에도 헤롯은 자신의 상관에 해당되는 로마황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종류의 의식을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고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이 당장 눈앞에 있는데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 탈출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베드로의 기적사건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면 로마황제의 귀환식이 없었더라면 베드로의 탈출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필 이런 상황에서 로마의 귀환식이 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헤롯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육신적인 일들이 자꾸만 벌어집니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일들이 자꾸만 찾아오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법입니다. 주변환경들에 의해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도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변하면 환경이 변하고 내가 회복되면 나를 통해 환경도 회복되고 구원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세상에서 말하는 정신승리와는 다른 것입니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목자삼는 심령, 그 인생에는 이상하게 선하고 인자하신 일들이 그 주변을 맴돈다는 것입니다. 따라온다는 것이 자꾸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 4:7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이기 전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선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지금 가인을 아벨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입니다. 이상하게도 죽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창 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형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얻어 먹는 대신에 자신에게 있는 장자의 명분을 주고 말았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복입니다. 팥죽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말합니다. 에서는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육적인 일에 정신을 못차립니다. 이 에서가 누구라는 말입니까? 바로 본문 헤롯의 조상이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흐름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은 존재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것을 구하고 또 채워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기도, 예배, 교회를 위한 봉사... 이런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다면 에서의 후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인생은 자꾸만 그런 일들만 나타나고 바쁘고 나중엔 꼬이고 ..
오늘 본문에서 헤롯이 가이사랴로 간 것은 무덤을 향한 출발이었음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사도행전 10장을 통해서 가이사랴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에 대한 호칭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봉헌하는 도시라는 말인데 이곳이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문명이 밀집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헤롯이 퍼포먼스를 행할 예정이었는데 본문 20절입니다. 20절..
두로와 시돈은 지금의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레바논에 해당되는 나라들인데 금요기도회 때 솔로몬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만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백향목 나무를 가져온 곳이 바로 이 두로와 시돈이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해양무역이 상당히 발달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기는 한데 농산물이 늘 부족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 지을 때에도 솔로몬이 백향목을 받는 댓가로 곡식을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헤롯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지난 11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만 심한 기근이 이스라엘 북쪽 지역에 임함으로 안디옥 교회를 예루살렘 교회가 돕기로 하고서 헌금을 걷어 바울과 바나바 편을 통해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평상시에도 곡식이 모자라는 두로와 시돈에 기근이 닥쳤으니 오죽 힘들겠습니까?
한데 성경에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데 무슨 이유로 인해 헤롯과 관계가 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두로와 시돈에 분노를 발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두로와 시돈은 더욱 헤롯을 아쉬워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양식이 있는 헤롯이 갑이요 양식을 구해서 먹어야 하는 두로와 시돈은 을 중의 을인 것입니다. 분노한 헤롯을 달래고 화해해야 하는 입장에 선 것을 헤롯의 최측근 블라스도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을 20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21절에 날을 택했다는 것은 바로 글라우디오 황제의 귀환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헤롯이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연설을 했는데 이 장면에 대해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은으로 왕복을 만들어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가 바로 앞에 있는 해안도시입니다. 아침햇살에 반사된 은빛찬란한 왕복을 입고 워낙에 말을 잘하는 헤롯이 목청을 높여서 발언을 하니까 조금전 말씀드린 그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헤롯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 이야기가...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이 소리가 아니다” 요세푸스 기록에 의하면 ■“신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가 지금까지는 왕을 한 인간으로서 존경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왕을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인정하겠나이다”
로마황제를 칭송하는 의식에서 헤롯은 자신이 칭송을 받고 심지어 신으로 등극을 하고 있으니 한마디로 가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직후 심한 복통으로 왕궁으로 옮겨졌고 5일만에 급사하게 되는데 이때 나이가 57세였다고 요세푸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여러마리의 회충이 몸을 말아서 장을 막아 장폐색으로 복통과 함께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헤롯의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옳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능력과 지혜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니라. 예배드려야 할 시간입니다. 예배드리러 갑시다. 옳다. 죄와 타협의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아니라.. 헤롯은 옳다와 아니라를 구분못함으로 죽은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잘 보이면 성공하겠거니 하면서 야고보를 죽인 것인데 아니라 했어야 하는데 옳다고 한 것이고 당신은 신입니다. 이에 대해서 아니라 했어야 하는데 옳다 라고 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급과 심판은 늦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4절, 25절입니다.
헤롯이 어떻게 죽었건간에 여전히 하나님의 일은 진행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가 짖는다고 KTX가 멈추지 않습니다. 지구는 2차세계대전때도 하루에 한바퀴 돌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돌고 나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도 무심하게 돌고 있습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시계는 간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종말의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지금도 흘러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믿는 자들의 소망이요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는 자들의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무총회를 합니다. 사무총회 짧은 시간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심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시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동참을 결단하시는 믿음의 백성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나라, 영적인 일에 무관심한 채 육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보다 자신에게 영광을 돌림으로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헤롯을 통해 하나님 보다 물질을 사랑하고 죄를 먹고 마시는 이 시대와 그리고 부족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끝까지 사명 감당하다 순교한 야고보를 닮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부지런히 복음을 전했던 베드로를 닮아가는 온유교회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유교회를 통하여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