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영석(英石) |
| 영주(英州. 현 廣東省 英德縣)의 함광현(含光縣), 진양현(眞陽縣) 사이의 지방에서는 시냇물 속에서 돌이 채취되는데 그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한 종류는 옅은 푸른색을 띠고 사이사이에 흰색 결이 나 있다. 한 종류는 회흑색(灰黑色)이고, 또 한 종류는 옅은 녹색인데 각각 봉(峯), 만(巒), 구멍, 눈(穿眼)을 가지고 있어 굴곡을 보이며 이어진다. 그 재질은 상당히 윤택하고 두드리면 은미한 소리가 울린다. 이것은 탁자에 설치에도 적합할 뿐만 아니라 분경(盆景)에 이용할 수도 있고, 자그마한 풍경을 조성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 |
| 또다른 한 종류는 돌의 색이 희고 사면에 봉만(峯巒)이 뾰족하게 솟아 있으며, 모서리가 많고 조금 투명하며, 면마다 빛이 나서 물건을 비춰 볼 수 있을 정도인데 두드리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돌을 채취하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기이한 부위라고 판단되는 것을 절단해 가지고 나오는데, 이것은 탁자에 놓아두는 정도로 쓰일 뿐이다. |
| (11) 산병석(散兵石) |
| 산병(散兵, 군사를 흩어버림)이라는 지명은 한 나라 장자방(張子房. 張良)이 초가(楚歌)를 불러 초나라 군사를 흩어지게 만든 장소이기에 이름이 붙여졌다. 이 지역은 소호(巢湖)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출되는 돌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갖가지 형상이 산 위에 노출되어 있다. |
| (돌의) 재질은 견고하고 색은 청흑색(靑黑色)이다. 태호석과 유사한 것도 있고, 고졸(古拙)라고 준문(皴紋)이 있는 것도 있다. 이 지방 사람들이 채취해서 운반해 판매하는데 양주(揚州)의 호사가들이 이 수석을 전매(專賣)해 간다. 그 중에 다른 것에 비하면 매우 크고 구멍이 뚫려 있어 마치 태호석의 봉(峯)과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아직 채취되지 않았다 |
| •장양(張良): 漢代 정치가. 자가 자방(子房)이다. 한고조 유방의 책사로 항우의 군대를 해하에서 포위한 다음 초나라 노래를 불러 항우의 군ㄷ대 사기를 떨어뜨렸다. [四面楚歌] •소호(巢湖): 현 안휘성 소현(巢縣)에 있고, 초호(蕉湖)라고도 한다. 양자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거대한 호수이다. |
| (12) 황석(黃石) |
| 황석(黃石)은 어느 지역에서든지 산출된다. 그 재질은 견고해서 도끼날이나 끌이 들어가지 않고 바윗결은 고졸(古拙)하다. 상주(常州)의 황산(黃山), 소주(蘇州)의 요봉산(堯峯山), 진강(鎭江)의 천산(圌山), 그리고 양자강 연안 지역과 그로부터 채석기(采石磯)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모두 이 돌이 선출된다. 일반 사람들은 이 돌이 볼품없다고만 할 뿐 기묘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
| •상주(常州): . 현 강소성 상주시와 무진현. 황산은 무진현 맹하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고, 이곳에 오르면 양자강을 조망할 수 있다. •요봉산(堯峯山): 현 소주시 서남단에 있다. 요임금 때 홍수가 나자 오나라 땅 사람들이 이 산으로 피난하였다고 전한다. •천산(圌山. 취산?): 강소성 진강시 동북쪽 60리에 있다. 군사적 요충지이다. 圌(둥구미 천. 산이름 취) •채석기(采石磯): 우저산(牛渚山) 밑에 툭불거져 나온 섬으로 현 안휘성 마안산시(馬鞍山市). 宋代에 우윤문(虞允文)이 이곳에서 金나라 군대를 대패시켰다. |
| (13) 오래된 돌. 구석(舊石) |
| 세상의 호사가들은 수석에 대한 헛된 소문만을 사모하여 오래된 돌(舊石)만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
| 어떤 이름난 원림에 있는 어떤 봉석(峯石)은 어떤 이름난 사람이 제영(題詠)을 단 것으로 어느 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해 내려온 것이니 이것은 진짜 태호석(太湖石)이다. 현재 그 원림이 황폐화되었으니 그 오래된 돌(沽石)을 적당한 값에 사고자 한다. |
| 라고 하면서 비싼 값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돌을 사서 오래된 골동품처럼 간수한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래된 돌이 있다고 듣기만 하면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산다. |
| 대체로 태호석(太湖石)이라 하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호사가들이 많이 채취해 갔기 때문에 아마도 드물게 남아 있을 것이다. 만약 그곳 말고 아직 땅을 파서 채취한 적이 없는 다른 산이 있다면 그중에서 구멍이 나있고 주름이 진 것(透漏)과 푸르스름한 골격(靑骨), 그리고 견고한 재질(材質)을 구비한 돌을 선택하여 채취하라! 그러면 태호석에 비하여 뒤질 것이 없다. 산 위에서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견디며 서 있던 돌인데 어떤 것은 새 것이고 어떤 것은 오래된 것이겠는가? |
| 무릇 돌을 채취함에 있어서는 수송해 오고 인공(人工)을 가하는 비용 정도가 든다 하겠지만, 그 돌이 원림(園林)에 이르면 다른 비용이 얼마나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어떤 돌 하나는 ‘백미봉(百米峯)’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을 얻기 위한 비용으로 100석이 들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 ‘백미봉’을 다른 곳으로 교역해 가고자 하면 다시 (운반비로)100석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름을 ‘이백미봉(二百米峯)’이라 해야 할 것이다. |
| 무릇 바위란 바람에 노출되어 있으면 오래된 것이고, 땅속으로 캐어낸 것이 새 것이다. 그런데 땅 속에서 출토된 것이 비록 흙빛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비바람을 맞게 되면 얼마 되지 않아 오래된 것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
| (14) 금천석(錦川石) |
| 이 금천석(錦川石)은 오래된 것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오색(五色)을 갖춘 것도 있고, 순녹색(純綠色)의 돌도 있는데, 결이 소나무 껍질을 그린 것과 같고, 높이가 한 길 남짓 되고 너비가 한 자가 되는 돌이 가장 좋다. 그런데 한 길 이내 되는 것이 많다. |
| 근래에 의흥(宜興)에도 금천석과 같은 돌이 산출되고 있다. 그런데 눈(眼)이 조약돌을 박아놓은 것과 같고, 색깔도 아름답지 못하다. 오래된 것은 주름과 눈이 모두 파여 있고 구멍이 나 있으며, 색깔과 재질이 맑고도 윤기가 흐른다. 그러므로 이것을 꽃밭의 나무 아래 세워놓으면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만약 이것을 가지고 가산(假山)을 조성하면 벽봉(劈峯)과 같이 될 것이다. |
| •금천(錦川): 遼寧省 금현의 소릉하(小凌河) |
| (15) 화석강(花石綱) |
| 송나라 때의 ‘화석강(花石綱)’은 하남(河南)에 속해 있는 변경지역 중 산동(山東) 지역에 근접한 지역의 곳곳에 있는데, 이것은 송나라 휘종(徽宗) 연간에 변경(汴京)으로 수송하던 중 버려진 것들이다. 돌의 형상이 교묘한 것이 많은데 육로로 운반하기가 몹시 힘들다. 만약 호사가들이 작은 덩이 몇 개를 가져다가 원림(園林)에 놓는다면 생동감이 우러날 것이다. |
| (16) 육합석자(六合石子) |
| 육합현(六合縣) 영거암(靈居巖)에는 모래밭 및 물가에 마노석(瑪瑙石)이 산출되는데, 이 마노석은 상당히 자그마한 것들이다. 크기가 주먹만 하고 순백색에 오색(五色) 무늬가 나 있는 것도 있고, 순오색(純五色)의 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
| 재질이 매우 따뜻하고 윤택이 있으며 영롱하고 투명한데, 그중에서 문채(문채)가 찬란한 것을 택해서 채취하여 비단처럼 바닥에 깐다. 혹은 이것을 (원림안의) 개울이나 골짜기 물이 흐르는 곳에 놓아두기도 하는데, 그러면 자연히 물이 맑게 보인다. |
| 돌의 글을 마치며 |
| 夫葺園圃假山, 處處有好事, 處處有石塊, 但不得其人. 欲詢出石之所, 到地有山, 似當有石, 雖不得巧妙者, 隨其頑夯, 但有文理可也. |
| 무릇 원포(園圃)와 가산(假山) 모두를 조성하려 할 때 곳곳마다 호사가가 있고 곳곳마다 좋은 돌이 있으나 (잘 다루는) 사람은 구하지 못한다. 만약 돌이 산출되는 곳을 묻는다면 도처에 산이 있고 산마다 좋은 돌이 있다. 그러니 비록 교묘한 형상의 돌은 얻지 못한다 해도 문리(文理)만 있으면 사용할 만하다. |
| 曾見宋杜綰 『石譜』, 何處無石? |
| 내가 예전에 송나라 사람인 두간(杜綰)이 지은 『석보(雲林石譜)』를 보았는데, (거기에서 말했듯이) 어느 곳이든 돌이 없겠는가? |
| 予少用過石處, 聊記於右, 餘未見者不錄. |
| 내가 돌을 사용해 본 적은 많지 않지만, 대략 이상과 같이 기록 하거니와 그 나머지 직접 보지 못한 것은 기록하지 않는다. |
| •두관(杜綰): 자는 계양(季陽). 호는 운림거사(雲林居士)로 『운림석보(雲林石譜)』를 지었다. 이 책에는 116종의 돌을 소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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