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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조경 문헌(文獻)

[원야(園冶)] 글을 마치며 (計成)

작성자석산|작성시간26.06.12|조회수17 목록 댓글 1
글을 마치며
崇禎甲戌歲, 予年五十有三, 歷盡風塵, 業遊己倦, 少有林下風趣, 逃名丘壑中, 久資林園, 似與世故覺遠.
숭정(崇禎, 明 의종) 갑술년(甲戌年, 1634)에 내 나이 53세로 세상의 풍진을 두루 다 겪고, 생활에 쫓겨 떠도는 것도 이제 실증이 났다. 나는 젊어서부터 자연에 은거하려는 흥취가 생겨나서 산수 사이에 도피하여 오래도록 원림을 조성하는 일에 종사했으니 세속적인 일과는 인연이 멀어졌다고 하겠다. 
惟聞時事紛紛, 隱心皆然, 愧無買山力, 甘爲桃源溪口人也. 自嘆生人之時也, 不遇時也, 武侯三國之師, 
梁公女王之相, 古之賢豪之時也, 大不遇時也. 何況草野疏愚, 涉身丘壑!
 세상 돌아가는 것의 혼란스러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자연에 은거하려는 마음을 갖게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산을 살 수 있는 재력이 없다 보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이웃 사람이라도 되는 것은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나는 시대를 잘 타고 나지 못하였다고 한탄하지만, 제갈공명(諸葛孔明)도 삼국시대의 군사(軍師)였고, 양공(狄仁桀 封號)도 여왕(則天武后) 밑에서 재상이었으니, 저 옛날의 현자, 영웅도 크게 좋은 시대를 타고 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나는 초야(草野)에 묻혀 있는 재주 없고 어리석은 사람이요, 산수에 몸을 맡긴 떠돌이가 아닌가! 
暇著斯 『冶』, 欲示二兒長生, 長吉, 但覓梨栗而已. 故梓行, 合爲世便.
 한가한 틈에 이 『원야(園冶)』를 지어서 장생(長生), 장길(長吉) 두 아들에게 보여주고자 했으나 그 아이들은 아직 나이 어려서 먹는 배나 밤을 찾을 뿐이다. 그리하여 인쇄에 붙이니 세상에서 편리하게 사용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두관(杜綰): 자는 계양(季陽). 호는 운림거사(雲林居士)로 『운림석보(雲林石譜)』를 지었다. 이 책에는 116종의 돌을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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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석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2 원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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