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마치며 |
| 崇禎甲戌歲, 予年五十有三, 歷盡風塵, 業遊己倦, 少有林下風趣, 逃名丘壑中, 久資林園, 似與世故覺遠. |
| 숭정(崇禎, 明 의종) 갑술년(甲戌年, 1634)에 내 나이 53세로 세상의 풍진을 두루 다 겪고, 생활에 쫓겨 떠도는 것도 이제 실증이 났다. 나는 젊어서부터 자연에 은거하려는 흥취가 생겨나서 산수 사이에 도피하여 오래도록 원림을 조성하는 일에 종사했으니 세속적인 일과는 인연이 멀어졌다고 하겠다. |
| 惟聞時事紛紛, 隱心皆然, 愧無買山力, 甘爲桃源溪口人也. 自嘆生人之時也, 不遇時也, 武侯三國之師, 梁公女王之相, 古之賢豪之時也, 大不遇時也. 何況草野疏愚, 涉身丘壑! |
| 세상 돌아가는 것의 혼란스러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자연에 은거하려는 마음을 갖게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산을 살 수 있는 재력이 없다 보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이웃 사람이라도 되는 것은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나는 시대를 잘 타고 나지 못하였다고 한탄하지만, 제갈공명(諸葛孔明)도 삼국시대의 군사(軍師)였고, 양공(狄仁桀 封號)도 여왕(則天武后) 밑에서 재상이었으니, 저 옛날의 현자, 영웅도 크게 좋은 시대를 타고 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나는 초야(草野)에 묻혀 있는 재주 없고 어리석은 사람이요, 산수에 몸을 맡긴 떠돌이가 아닌가! |
| 暇著斯 『冶』, 欲示二兒長生, 長吉, 但覓梨栗而已. 故梓行, 合爲世便. |
| 한가한 틈에 이 『원야(園冶)』를 지어서 장생(長生), 장길(長吉) 두 아들에게 보여주고자 했으나 그 아이들은 아직 나이 어려서 먹는 배나 밤을 찾을 뿐이다. 그리하여 인쇄에 붙이니 세상에서 편리하게 사용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 •두관(杜綰): 자는 계양(季陽). 호는 운림거사(雲林居士)로 『운림석보(雲林石譜)』를 지었다. 이 책에는 116종의 돌을 소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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