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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조경 문헌(文獻)

[朝鮮時代 文化空間] 신익상(申翼相)과 신의집(申義集)의 정림촌 별서(靜林別墅)

작성자석산|작성시간26.06.14|조회수29 목록 댓글 0
신익상(申翼相)과 신의집(申義集)의 정림촌 별서(靜林別墅)
 조태억(謙齋 趙泰億, 1675~1728)이 학탄(鶴灘)에서 더욱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벗 신의집(申義集, 1678~?)이 벼슬에서 물러나 정림(靜林)에서 한가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신의집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자는 양직(養直)이고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신숙주(保閑齋 申叔舟)와 신용개(二樂亭 申用漑)의 후손이다. 
 신의집의 조부는 우의정을 지낸 신익상(申翼相)이고 부친은 목사를 지낸 신숙(三畏堂 申潚, 1658~1713)이며 모친은 이단하(戀齋 李端夏, 1625~1689)의 딸이다. 또 부인은 낭원군(朗原君 李偘, 1640~1699)의 손녀이며, 딸은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의 큰 형 이광태(無妄軒 李匡泰, 1693~1754)에게 시집갔다. 
 신의집(申義集) 그 자신은 역사에서는 미미하지만 홍중성(芸窩 洪重聖, 1668~1735), 이하곤(澹軒 李夏坤, 1677~1724), 이형상(甁窩 李衡祥, 1653~1733), 최창대(昆侖 崔昌大, 1669~1720), 이광좌(雲谷 李光佐, 1674~1740) 등과 詩會를 가지곤 하였으니 그의 文名은 짐작할 수 있다.  
 신의집(申義集) 집안이 정림(靜林)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신익상(醒齋 申翼相, 1634~1697)이다. 성재의 자는 숙필(叔弼)이고 호는 육오당(六吾堂), 정휴당(靜休堂)도 사용하였다. 육오당은 아산(牙山)의 금곡(金谷)에 있던 별서 이름이고, 정휴당은 경기 광주의 정림촌(靜林村)에 있던 별서이다. 정림촌(靜林村)은 몽촌토성 동쪽지역을 이르는데 정림사(靜林寺)라는 절이 있었기에 생긴 이름이다.  
 신익상(申翼相)은 대사간과 도승지 등의 벼슬을 지냈고, 낙산(駱山)의 동쪽에 경저(京邸)를 두었지만, 양주에 따로 선영이 있었기에 노원촌사(蘆原村舍)로 물러나 살 때가 많았고 남양(南陽)의 신리(新里)에 있을 때는 지족암(止足庵)이라는 별서를 짓고 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환갑의 나이를 맞은 1698년 정림촌에 조용히 살고자하는 마음을 담은 별서, 정휴당(靜休堂)를 마련하였다. 
 신익상(申翼相)이 조정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1689)되는 사건 때문이었다. 그러다 1694년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복귀하여 판서에 올랐다. 조정의 중추를 맡았지만 정국이 원낙 혼란스러울때라, 자주 정휴당(靜休堂)으로 물러나 휴식을 하곤 하였다. 「외구검지중추권공행장(外舅僉知中樞權公行狀)」에 따르면 아산이나 남양의 별서가 바다와 가까워 병을 조리하기 맞지 않아 정림촌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은 원래 그의 이종형 권세경(權世經, 1626~1644)이 살던 곳이다. 권세경은 자가 백상(伯常)이고, 본관이 안동(安東)인데 인근 청담에 살던 권극중(權克中)의 후손으로 정림에 세거하였고 또 선영도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얼마 되지 않지만 약간의 전장을 마련하고 몇 칸의 집을 지어 노년을 보내려고 한 것이었다.  
靜林寓舍(정림우사) / 신익상(申翼相) 『성재유고(醒齋遺稿)』 책3
寬閑數畝地  蕭灑屋三間  관휴수무지  소쇄옥삼간 놀고 있는 몇 무(畝)의 땅에
 소쇄하게 초가삼간 지었지
境僻無塵鬧  林深絶往還  경벽무진투  임신절왕환 끝자락에 있는 땅이라 소란스럽지 않고
 깊은 숲이라 오가는 이 없다네
庭前看白鶴  窓外對靑山  정전산백학  창외대청산 마당 앞으로는 흰 학(白鶴)이 보이고
 창 너머로는 푸른 산과 마주한다네
隨處詩情在  新荷動碧灣  수처시정재  신하동벽만 가는 곳마다 시흥(詩興)이 일어나니
 새로 심은 연꽃도 푸른물에 일렁이네

 신익상의 정림의 집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조촐하게 세운 초가삼간이 오히려 은자(隱者)에게 어울린다. 뜰에 학을 키우는 것도 은자의 소일거리인데, 창너머로 푸른 산을 바라보노라면 도연명(陶淵明)이 말한 “유연하게 앞산을 보노라(悠然見南山)”의 경지에 이를 듯하다. 도처에 시흥(詩興)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데 여름을 맞아 연꽃이 피어나니 또 시를 짓는다. 

題草堂(초당에 쓰다) / 신익상(申翼相) 『성재유고(醒齋遺稿)』 책3
數間茅屋靜林寺名傍 
投老郊扉策最良   
  수간모옥정림방  
투노교비책최량
 몇 칸 초가가 정림사(靜林寺) 곁에 있으니
 늘그막 교외의 사립문이 최고의 계책이라 
庭宇舞看雙白鶴
  池塘遊對兩元央   
  정우무간쌍백학 
지당유대양원앙
 마당에 한 쌍의 흰 학이 춤을 추고
 지당(池塘)에는 원앙 짝지어 노는걸 본다네
隣翁溪友時邀迓
  明月淸風自王張   
  인옹계우시격야  
명월청풍자왕장
 이웃 노인은 개울가의 벗 반갑게 맞아주고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은 절로 왕성하구나
我亦鹿門思隱客
  每逢佳處興偏長   
  아역진문사은객  
메봉가처흥편장
 나 역시 세상에 살며, 은자를 꿈꾸는 자인지라
 아름다운 곳을 만날때마다 흥이 더욱 길어지네
 신익상(申翼相)은 정림의 별서에 ‘산수헌(山水軒)’이라는 현판을 걸어두었던 듯하다. 조태억(趙泰億)의 「차산수헌운(次山水軒韵)」에 따르면 “원래 산수헌은 중종 때 明의 홍산(鴻山) 화찰(華察)이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 써준 현판인데 이를 신익상이 구하여 자신의 집에 걸어둔 것이다”라 하였다.   
 1696년 신익상(申翼相)이 산수헌에 붙인 글 「山水軒記(산수헌기)」에서 “산은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요, 물을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산과 물을 이름으로 한 헌(軒)이 내 손 안에 떨어진 것은 아마도 오늘 나를 위해 준비해둔 듯하다. 아! 기이하다. 이제 내가 늙고 병들었으니 정림(靜林)의 들판에서 밭을 갈면 아마도 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물처럼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어찌 안분자족하면서 물러나 은둔할 우연한 기회가 아니겠는가?”라 하였다. 이 글의 마지막에 스스로를 정림옹(靜林翁)이라 하였으니 별서에 이 현판을 걸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익상(申翼相)은 정림의 별서에 산과 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정림에서 보이는 8가지 풍경을 팔경시에 담았다. 
靜林八詠(정림팔영) / 신익상(申翼相)  『성재유고(醒齋遺稿)』 책4
① 馬山曉色(연농강수) 마산의 아름다운 새벽빛
② 南漢朝雲(운장도사) 아침에 남한산성에 피어오르는 구름
③ 籠巖夜月(죽오청풍) 한밤 농암에 어린 달빛
④ 夢村煙樹(송암세우) 몽촌의 안개낀 숲
⑤ 木覓夕烽(매창호월) 저녁 남산 위로 솟아나는 봉화
⑥ 華岳遠岑(채이청향) 아스라이 멀리 보이는 북한산 봉우리
⑦ 栽松行人(낙포여장) 재송정(栽松亭)을 지나는 행인
⑧ 平郊晩雨(화원대서) 저물녘 넓은 들판에 뿌리는 비
靜林八詠 寄示柳台(정림팔영을 지어 유대감에게 보이다) 夢村煙樹 / 신익상(申翼相)  『성재유고(醒齋遺稿)』 책4
夢村西望野橋邊
  深樹煙生欲暮天  
 몽촌서망야교변  
심수연생욕모천
 몽촌에서 서쪽으로 들판의 다리를 바라보니
 깊은 숲에 안개가 피어나 날이 저물려 하네
煙外數家明㓕處
  畵來那得倩龍眠  
 연외수가명멸처  
화래나득천용면
 안개 너머 몇 채의 집에 등불이 깜빡이는 곳
 그림으로 그리려면 용면거사(龍眠居士)에게  부탁해야겠네
 신익상(申翼相)은 정림의 별서를 완성한 후 둘째 아들 신재(申濟)와 함께 살고자 하였으나 불행히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 집은 가문의 종손인 신의집(申義集)의 소유가 되었다. 신의집은 낙산(駱山) 동쪽 조부의 경저에 거주하지 않고 백악(白嶽) 기슭에 있던 전평군(全坪君) 이곽(鷺洲 李漷, 1659~1698)의 집을 물려받아 살았다. 이곽은 낭선군(朗善君) 이우(觀瀾亭 李俁, 1637~1693)의 아들로서 바로 신의집의 장인이다. 임상덕(老村 林象德, 1683~1719)의 「無懷齋記(무회재기)」에 따르면 이곽은 그 서재의 이름을 ‘無懷齋’라 하였다고 한다.      
 벼슬에 큰 뜻이 없었던 신의집(申義集)은 조부가 마련한 정림의 별서 산수헌(山水軒)을 더욱 사랑하였다. 신의집은 1725년 장성부사로 있다가 벼슬을 걷어치우고 정림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벗들은 그를 ‘靜林’이라는 호로 불렀다. 이 시기 신의집의 가장 절친한 시우(詩友)는 조태억이었다.  
 조태억(趙泰億)의 문집 신의집과 수창한 작품이 무척 많다. 특히 이들의 우정은 『학림옥로(鶴林玉露)』라는 공동 시집까지 편찬하기에 이르었다.     
鶴林玉露序(학림옥로 서문) / 조태억(趙泰億) 『겸재집(謙齋集)』 권10
鶴林玉露者. 羅大經所編書也. 奚以名是編也. 以鶴灘靜林酬和之詩. 故借是名而名焉.
『학림옥로(鶴林玉露)』라는 것은 나대경(羅大經)이 편찬한 책이다. 어찌해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는가? 학탄과 정림이 수창한 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이 서명을 빌려 이름 붙인 것이다.
盖余以乙巳春. 解相俟譴于鶴灘之曠然亭. 時則吾友申養直自長城府解紱. 歸于靜林之別墅. 兩家相近直十里有餘. 顧余畏約不敢出. 養直時騎牛荷笠而至. 或竟夕或經宿乃去.
 내가 을사년(1725) 봄 재상에서 물러나 학탄의 광현정에서 견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는 내 벗 신양직이 장성부사에서 해직되어 정림의 별서로 돌아와 있었다. 두 집의 거리가 겨우 10리 남짓이었다. 내가 움츠려 들어 감히 나가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양직이 가끔 소를 타고 삿갓을 쓰고 찾아오곤 하였다. 어떤 때는 저녁이 다 되도록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루를 묵고 가기도 하였다.   
養直癖於詩. 又閑居無所事. 過余輒有吟賦. 而余以言語文字. 遭罔極之誣. 陷不測之禍. 方且杜口結舌. 焚筆與硯. 以存懲毖之啚.
 (신)양직은 시에 벽(癖)이 있고 또 한가하게 사느라 할 일이 없었기에 나를 찾아오며 문득 시를 짓곤 하였다. 그러나 나는 언어와 문자 때문에 망극한 모함을 받아 예상할 수 없는 재앙에 빠져 있었기에 바야흐로 입을 닫고 혀를 묶고 있었으며, 북과 벼루를 불살라 후환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而於養直不敢以此爲解. 養直賦一詩. 余亦和一詩. 養直賦十篇. 余亦和十篇. 非其和而自唱者. 盖不十之二三焉.
 그러나 양직에게는 감히 핑계를 대지 않고 양직이 시 한 수를 지으면 나도 또한 한 수를 짓고, 양직이 10편을 지으면 나도 또한 10편을 지었다. 화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래한 것은 열에 두셋도 되지 않았다.
 몽촌토성 동쪽의 정림은 당시 한강 본류인 송파강으로 학탄과 바로 통하였기에 거리가 10리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때 조태억(趙泰億)은 좌의정으로 있었는데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겸직하고 있던 대제학과 호위대장 등 모든 벼슬에서 해임되었다. 도성 밖에 물러나 살았지만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니 신의집이 학여울을 찾아오면 酬唱을 하며 반가운 만남을 가졌고 이러한 만남이 못할 때는 편지로 시를 주고 받았다. 
 신의집이 하도 시를 좋아했기에 조태억(趙泰億)에게 수시로 시를 재촉하였다. 이 무렵 조태억이 지은 시에 “시 빚이 너무 많기에 배 한 척 구해서 도망가야 하겠소. 자네도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니 반드시 섬강(蟾江)에 따라와 숨어야 하지 않겠소?”라 할 정도였다. 시에 이어지는 글에 따르면 신의집은 복잡한 정치현실에서 조태억이 절도로 위리안치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이 때 지은 시가 일실(逸失)될까 우려하여 아예  시집으로 엮고 필사하여 한 권씩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시집이 『학림옥로(鶴林玉露)』이다. 원래  『학림옥로』는 중국 宋의 나대경(羅大經)이 편찬한 책이지만, 학탄과 정림에서 한 글자를 따서 이 책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신의집(申義集)은 53세 되던 1741년 무렵 정림을 떠나 마포로 이주하였다. 한때 호를 삼주(三洲)혹은 삼호(三湖)라고도 하였는데 마포의 별칭이다. 그의 정자는 여락정(余樂亭)이라 하였는데, 한유(韓愈)가 「與孟東野書(여맹동야서)」에서 “강호는 나의 즐거움이라(江湖余樂也)” 하였으니 여기에서 이름을 취한 것으로 가늠된다. 홍중성과 조태억은 그를 위하여 「余樂亭八景 爲申養直作(여락정팔경위신양직작)」에서 ‘余樂亭八景’을 지어주었다.    
余樂亭八景(여락정팔경) / 홍중성(洪重聖)  『운와집(芸窩集)』 권3
① 麻湖浴鳥(연농강수) 마포(麻浦) 강물에서 목욕하는 새
② 杏亭歸帆(운장도사) 은행정(銀杏亭) 앞에서 돌아오는 배
③ 牛岑落照(죽오청풍) 와우산(臥牛山)의 저녁 햇살
④ 蛾眉霽月(아미제월) 잠두봉(蠶頭峯)의 맑은 달빛
⑤ 陶村暮煙(매창호월) 도촌(陶村)의 저녁 안개
⑥ 仙峰曉嵐(채이청향) 선유봉(仙遊峰)의 새벽 산 안개(山霧)
⑦ 栗島明沙(낙포여장) 밤섬(栗島)의 밝은 모래 밭
⑧ 石浦漁火(화원대서) 석포(石浦)의 고기잡는 햇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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