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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조경 문헌(文獻)

[한정우기(閑情偶寄)] <居室部> 1. 房舍(방사. 원림 속 정자)

작성자석산|작성시간26.06.17|조회수21 목록 댓글 1
제2부. 거주하는 공간에 대하여(居室部)
1. 房舍(집의 방. 원림 속 정자)
人之不能無屋, 猶體之不能無衣. 衣貴夏凉冬燠, 房舍亦然. 堂高數仞, 榱題數尺, 壯則壯矣. 
然宜于夏而不宜于冬. 登貴人之堂, 令人不寒而栗, 雖勢使之然, 亦廖廓有以致之. 
 사람에게 집이 없어서는 안되는데, 이는 몸에 옷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옷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스한 것이 귀중한데, 집도 그렇다. 건물의 높이가 몇 길이고, 처마가 몇 자면(堂高數仞, 榱題數尺) 볼만하여 장관일 것이다. 그러나 여름에는 적당하나 겨울에는 적당치 않다. 귀한 사람이 집에 들어가면 사람으로 하여금 춥지 않아도 공손하게 만드는 것은, 비록 주인의 권세가 그렇게 만든 것일지라도, 또 건물이 높고 확 트여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我有重裘, 而彼難挾纊故也. 及肩之墻, 容膝之屋, 儉則儉矣.   
然適于主而不適于賓. 造寒士之廬, 使人無憂而嘆, 雖氣感之乎, 亦境地有以迫之. 此耐蕭疏, 而彼憎芩寂故也. 吾願顯者之居, 勿太高廣. 夫房舍與人, 欲其相稱. 
 나(주인)는 두터운 가죽 옷이 있으나 상대방(손님)은 좁아서 솜옷을 입기도 어렵기 때문에 어깨 높이의 담과 무릎을 들일 만한 작은 집은 검소하다면 검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곳은 주인에게는 적합하지만 손님에게는 불편하다. 이런 추운 선비의 초가는 사람을 근심이 없게해도 탄식하게 하는데, 비록 분위기에 물든 것이지만 또한 장소가 그렇게 몰아가는 것이다. 이는 쓸쓸한 것은 참을 만하지만, 적막한 것이 싫기 때문이다. 
 나는 현달한 사람의 집이 너무 높고 넓지 않기를 바란다. 무릇 집과 사람은 서로 균형(相稱)을 이루어야 한다. 
畵山水者有訣云, 丈山尺樹, 寸馬豆人. 
使一丈之山, 綴以二尺三尺之樹. 一寸之馬, 跨以似米似粟之人, 稱乎, 不稱乎
 산수를 그리는 사람에게 비결이 있다. “산은 한 장(丈) 크기로, 나무는 한 자(尺) 크기로, 말은 한 치(寸) 크기로, 사람은 콩의 크기(丈山尺樹, 寸馬豆人)로 한다.” 
 한 장 크기의 산을 두 자나 세 자 크기의 나무로 장식하고, 한 치 크기의 말에 좁쌀 크기의 사람이 걸터앉게 하면 균형에 맞는 것인가, 맞지 않는 것인가?
使顯者之軀, 能如湯文之九尺十尺, 則高數仞爲宜, 不則堂愈高而人愈覺其矮, 地愈寬而體愈形其瘠, 
何如略小其堂, 而寬大其身之爲得乎. 
 현달(顯達)한 사람의 몸을 탕왕(湯王)과 주 문왕(周文王)처럼 9척, 10척으로 그린다면, 건물의 높이가 여러 길이어야 적당하며, 그렇지 않으면 건물이 높을수록 사람은 더욱 왜소하게 느껴지고, 땅이 넓을수록 사람은 더욱 수척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여 당(堂)을 약간 작게 하고 그 몸(身)을 크게 그린다면 어떠하겠는가? 
處士之廬, 難免卑隘. 然卑者不能聳之使高, 隘者不能擴之使廣, 而汚穢者充塞者則能去之使淨, 
淨則卑者高而隘者廣矣. 
 처사의 오두막은 나지막하고 좁은 것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나지막한 것은 추켜 높일 수 없고, 비좁은 것은 확장하여 넓게 할 수 없지만, 오염되고 더러운 것이 가득 찬 곳은 제거하여 깨끗하게 할 수 있으니, 깨끗해지면 나지막한 것이 높아지고 좁은 것이 넓게 느껴질 것이다. 
吾貧賤一生, 播遷流離, 不一其處, 雖債而食, 賃而居, 總未覺稍汚其座. 
性嗜花竹, 而購之無資, 則必令妻孥忍饑數日, 或耐寒一冬, 省口體之奉, 以娛耳目.
人則笑之, 而我怡然自得也.
 나는 일생동안 가난하고 비천하여 정처 없이 떠돌며 지내어 일정한 거처가 없었으며, 비록 돈을 빌려 밥을 먹고 집을 빌려 살았지만 그 자리를 전혀 조금도 더럽게 느껴지도록 하지 않았다. 
 성격이 꽃과 대나무를 매우 좋아하여, 살 돈이 없으면 반드시 처와 자식에게 며칠 동안 굶주림을 견디거나 한겨울 추위를 견디게 하여, 먹고 입는 돈을 절약해서 나의 이목(耳目)을 즐겁게 했다. 
 사람들이 비웃었으나, 나는 스스로 즐거워하고 만족했다.
性又不喜雷同, 好爲矯異, 常謂人之其居治宅, 與讀書作文同一致也. 
譬如治擧業者, 高則自出手眼, 創爲新異之篇. 其極卑者, 亦將讀熟之文移頭換尾, 損益字句而後出之. 
 성격은 또 누구를 따라서 좋아(不喜雷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잘못 된 것을 고쳐주는 것을 좋아하여, 항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말하는 것은 책을 읽으면 글을 쓰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유하면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이 수준이 높으면,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참신하고 기이한 글을 창조한다. 매우 형편없는 사람도 숙독한 글에서 본래의 면모를 뒤바꾸어 자구(字句)를 생략하거나 보충하여 내놓는다. 
從未有抄寫全篇, 而自名善用者也. 乃至興造一事, 則必肖人之堂以堂, 窺人之戶以立戶, 稍有不合, 不以爲得, 而反以爲耻. 
 예로부터 문장을 통째로 베껴서 스스로 잘 활용했다고 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건물을 짓는(興造) 일에 관해서는, 반드시 남의 건물을 모방하여 짓고 남의 문을 엿보아 세우며,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득의(得意)하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치욕을 느낀다.
常見通侯貴戚, 擲盈千累萬之資以治園圃, 必先諭大匠曰, 亭則法某人之制, 榭則遵誰氏之規, 勿使稍異. 
而操運斤之權者, 至大厦告成, 必驕語居功, 謂其立戶開窓, 安廊置閣, 事事皆倣名園, 織毫不謬. 
 일상적으로 제후와 귀족 친척들이 천만금을 들여서 원포(園圃)를 만들 때는 반드시 먼저 훌륭한 장인에게 명령하길, 정자는 누구의 양식을 본받고, 누대는 아무개의 규범을 준수하여 조금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설의 총 권한을 가진 자는 큰 집이 완성된 걸 보고하면서, 반드시 교만하게 스스로 공이 있음을 말하면서, 그 문은 어떻게 세우고, 창은 어떻게 내었으며, 낭과 각은 어디에 두었는지, 건건마다 모두 이름난 정원을 모방했으며,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고 한다.      
噫, 陋矣. 以構造園亭之勝事, 上之不能自出手眼, 如標新創異之文人, 下之至不能換尾移頭, 學套腐爲新之庸筆, 尙嚣嚣以鳴得意, 何其自處之卑哉.   
 아! 비루하구나! 조원(造園)을 하는 데 있어 정자하나 멋지게 만드는 일이 위로 부터 온 것이지 스스로 수안으로는 불가능한 것은 내세울만한 새로운 것을 창작 못하는 글쓰는 자들과 같음이요, 아래로는 작은 기술을 배우지 못했거나, 배웠으되 잘못된 것을 새롭게하는 용렬한 솜씨에 불가하면서, 아직도 새들처럼 시끄럽게 떠들며 득의양양하고 있으니, 얼마나 비루함을 자처하는 것인가! 
予嘗謂人曰, 生平有兩絶技, 自不能用, 而人亦不能用之, 殊可惜也. 人問, 絶技維何. 
予曰, 一則辨審音樂, 一則置造園亭. 性嗜塡詞, 每多撰著, 海內共見之矣. 
設處得爲之地, 自選優伶, 使歌自撰之詞曲, 口授而躬試之, 無論新裁之曲, 可使逈異時腔, 卽舊日傳奇, 
一槪删其腐習而益以新格, 爲往時作者別開生面. 此一技也.   
 내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길, 평생 두 가지 뛰어난 기술이 있으나, 스스로 사용할 수 없고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없어 너무 애석했다. 사람들이 묻기를, 뛰어난 기술은 무엇인가? 내가 대답했다. 하나는 음악을 감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림안에 정자를 만드는 것이다. 성정이 전사(塡詞, 음악에 맞춰 詞를 짓는 것)를 좋아하여 많은 작품이 있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무대를) 설치할 땅을 얻어, 내가 선택한 배우에게 내가 지은 곳을 노래하도록 시키고, 가르친 것을 시험보도록한다면, 새로 지은 곡은 지금의 곡조와 아주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설사 옛날의 전기(傳奇, 明靑시기 장편 희곡)라도 일괄적으로 진부한 분위기를 없애고 새로운 격조를 첨가하여 옛날의 작가를 위해 새로운 형식을 창조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재주다.  
一則創造園亭. 因地制宜, 不拘成見, 一榱一桷, 必令出自己裁, 使經其地入其室者, 如讀湖上笠翁之書.
雖乏高才, 頗饒別致, 豈非聖明之世, 文物之邦, 一點綴太平之具哉.  
 (또 다른) 하나는 원림속 정자를 창조하는 것이다. 장소에 따라 적합하게 구상하여, 선입견에 구애받지 않고, 서까래 하나까지 반드시 스스로 재단 한 것이므로, 만약 그 장소를 지나가고 그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나(笠翁)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것이다. 
 비록 뛰어난 재주는 부족하지만, 별다른 운치는 풍부할 것이니, 어찌 성스럽고 밝은 세상에 문물이 발달한 나라에서 태평한 세상을 꾸미는 하나의 도구가 되지 않겠는가?   
噫, 吾老矣. 不足用也. 請以崖略付之簡篇, 供嗜痂者要擇. 收其一得, 如對笠翁, 則斯編實爲神交之助爾,  土木之事, 最忌奢靡, 匪特庶民之家當崇儉朴, 卽王公大人亦當以此爲尙. 
蓋居室之制, 貴精不貴麗, 貴新奇大雅, 不貴纖巧爛漫. 
 아! 나는 늙어버려 쓰이기에 부족하다. 개요를 간단한 책으로 간행하여 나(笠翁)처럼 별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선택하도록 제공하고자 한다. 그중의 하나를 얻으면 나를 마주하는 것과 같을 것이므로, 이 글은 실제로 나와의 정신적 교류에 도움이 될 것이다. 토목(土木)에 관해서는 사치와 낭비를 제일 금기로 하고 서민의 집에서만 검소함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왕공대인이라도 검소함을 숭상해야 한다. 
 대개 주거하는 방의 제도는 정밀한 것이 중요하지, 화려한 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면서도 아주 우아한 것이지, 정교함은 미세하면서 현란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凡人止好富麗者, 非好富麗, 因其不能創異標新. 舍富麗無所見長, 只得以此塞責, 譬如人有新衣二件, 
試令兩人服之, 一則雅素而新奇, 一則輝煌而平易, 觀者之目, 注在平易乎, 在新奇乎.
 일반사람들은 부귀하고 화려한 사람(富者)을 좋아하는 것이지 사치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신기한 것을 새롭게 만들어 창조하는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이 부유하고 화려하면 장점을 볼 수 없고, 단지 그것의 대강대강만을 보는 것이어서 비유하자면 사람이 두 개의 새옷을 볼때 두 사람에게 입어보게 한다음, 하나는 우아한 맛은 없지만 못보던 것이고, 하나는 휘황찬란하지만 많이 보던 것이라는 보는 자의 관점이니, 어찌 평이한(많이 보던) 것중 신기한 것이 있겠는가?       
錦繡綺羅, 誰不知貴, 亦誰不見之. 縞衣素裳, 其製略新, 則爲衆目所射, 以其未嘗睹也. 
금으로 자수를 놓은 비단의 화려함을 누구인들 귀한지 모르고, 또한 누구인들 그것을 보지 못하겠는가. 
명주로 짠 상의와 하얀 치마는 그 만드는 법이 간단하고 새롭지만 대중들의 눈에 비치면 그것이 보지 못하던 것이라 여길 것이다.  
凡予所言, 皆屬價廉工省之事, 卽有所費, 亦不及雕鏤粉藻之百.
且古語云, 耕當問奴, 織當訪婢, 予貧士也, 僅識寒酸之事. 欲示富貴, 而以綺麗勝人, 則有從前之舊制在.  
 대체로 내가 말한 것은 모두 값이 저렴하고 수공이 절감되는 사항에 속하며, 만약 비용이 들어도 화려하게 꾸미는 비용의 1/10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또 옛 말에 “농사는 남자 노복에게 물어야 마땅하고, 길쌈은 여자 노비를 찾는 것이 마땅하다(耕當問奴, 織當訪婢)”라고 했는데, 나는 가난한 선비로 이렇게 구차한 일만 알고 있다. 부귀한 것을 과시하여 화려한 것으로 남을 이기고 싶다면 옛 제도에 답이 있다.
新制人所未見, 卽縷縷言之, 亦難盡曉, 勢必繪圖作樣. 
然有圖所能繪, 有不能繪者. 不能繪者十之九, 能繪者不過十之一. 因其有而會其無, 是在解人善悟耳.
 새로운 양식은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하여 하나하나 설명해도 다 이해하기 어려우며, 반드시 양태(樣態)를 도면을 그리고 견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도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열에 아홉이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열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통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사리를 아는 사람이 잘 깨달아야 할 뿐이다. 
•榱(서까래 최), 桷(서까래 각).
•崖略(애략): 줄거리, 대강.
•塞責(새책): 대강대강 해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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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석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번역 중 생소한 용어는 중국고대건축용어사전을 참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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