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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조경 문헌(文獻)

[한정우기(閑情偶寄)] <居屋部>3. 담장과 벽(墻壁) (3~4) 廳壁, 書房壁

작성자석산|작성시간26.06.22|조회수28 목록 댓글 0
3. 담장과 벽(墻壁)
(3) 廳壁(대청의 벽)
 청(廳)의 벽은 너무 소박해서는 안 되며, 너무 화려한 것도 피해야 한다. 자연히 명인(名人)의 작품이 빠질 수 없지만 반드시 농담(濃淡)이 적절히 뒤섞여 배치해야 운치가 있다. 내 생각에 족자로 표구(軸)하는 것이 직접 벽에 붙이는 것만 못하다. 족자는 바람이 불면 흔들려 명작이 손상될 염려가 있지만, 직접 붙이면 이러한 근심이 없으며, 또 크거나 작거나 모두 적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직접 붙이는 것은 또 직접 그리는 것만 못하다. “언제 고개지(顧愷之)가 벽에 가득 은자(隱者)의 거주지를 그렸는가?(何年顧虎頭, 滿壁畵滄州)”와 같은 상황은 자연이 고아한 사람들의 운치 있는 일이다. 내 서재가 우연히 이러한 양식을 모방하고 또 그 형상을 변화시켰는데, 좋은 친구가 오면 모두 이목이 일신(一新)되어 배회하고 머물며 떠나지 못했다.
 내 성격이 새를 좋아하지만 또 새 장을 제일 싫어하여 두 가지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가 없었는데, 1년 내내 모자라 머리를 짜내어 한 번 깨달음으로 마침내 훌륭한 방법을 만들어냈다. 바로 대청의 사방 벽에 4명의 명가(名家)를 초청하여 갖가지 색의 꽃나무를, 그리고 구름과 안개를 그려 감싼 다음, 바로 좋아하는 새를 구불구불 늙은 가지 위에서 길렀다.
 그림은 공허한 흔적에 불과하고, 새는 실제 형체가 있는데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내가 대답했다. 어렵지 않다. 새를 기르는 것은 앵무새(鸚鵡)에서 시작해야한다. 예로부터 앵무새를 기르는 사람은 반드시 구리(銅)로 만든 시렁(架)을 사용했는데, 구리로 만든 시렁에서 3면을 제거하고 발판이 되는 한 면과 물을 마시고 모이를 쫓는 두 개의 관을 남겨 놓았다. 먼저 소나무 가지를 그린 위에 작은 구멍을 판 뒤 앵무새가 앉을 구리 시렁을 그 속에 삽입하여, 매우 견고하게 하여 새가 왔다 갔다 뛰어놀아도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소나무는 착색하여 그린 소나무이고, 새도 색깔이 있는 새이므로, 서로 어우러져 한 번의 붓질로 그린 듯하다.
 좋은 친구가 도착하여 벽화를 올려다 보는데, 갑자기 가지 끝에 새가 움직이고 솔잎이 아래로 날개가 펼쳐지면, 혼비백산하여 신선의 솜씨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 날개짓을 하고 울어대 날아서 내려앉을 듯 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눈에 익어 비로소 그 안의 정황을 알고 나면, 박수 치고 훌륭하다 소리치며 인공으로 만든 정교한 것이 천연적인 것보다 훌륭하다고 칭송하지 않겠는가?
 만약 사방의 벽에 모두 앵무새를 기른다면 또 부화뇌동을 피해야 하므로 반드시 다른 새를 섞어야 한다. 새 가운데 잘 우는 새는 화미조(畵眉鳥)를 제일로 꼽는다. 그러나 앵무새의 새장은 제거할 수 있지만, 화미조의 새장은 제거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나에게 또 한 방법이 있다. 용처럼 구부러진 나뭇가지를 골라 한 부분을 잘라서, 촘촘한 가지는 그대로 남겨두고, 성긴 가지는 철사로 그물처럼 얽는데 너무 성글지 않고 또 너무 촘촘하지 않게 하여, 전체적으로 날아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그 안에서 화미조를 기르며, 벽에 삽입하는 것은 앞의 방법과 같다.
 이쪽의 새 소리가 막 그치면 저쪽에서 우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푸른 날개를 막 잡으면, 붉은 눈동자를 다시 굴린다. 새가 잘 울고 잘 쪼아대므로, 꽃나무도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흐르는 물은 소리를 내지 않으나 우는 듯하고, 높은 산은 적막하되 적막하지 않다. 자리를 끝내고 떠나는 손님들은 모두 은호(殷浩)가 허공에 글을 쓴 것처럼 대단히 괴이한 일로서 이보다 지나친 것이 없을 것이라 했다.
  • 裱軸(표축): 족자 형태로 표구하다.
  • 은호(殷浩)가 허공에 글을  것:  종군장군 은호가 평민으로 강등되어 信安에 있으면서 종일 허공에 ‘돌돌괴사(咄咄怪事, 대단히 괴이한 일이로다)’라는 4글자를 썼다고 한다. 괴이한 일을 가리킨다. 『세실신어』
3. 담장과 벽(墻壁)
(4) 書房壁(서재의 벽)
 서재의 벽은 소탈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소탈하게 하려면 기름과 칠을 제대로 절대로 피해야 한다. 기름과 칠의 두 가지 물질은 속물로서, 이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용했으며, 좋아서 칠한 것이 아니다. 문과 창살에 반드시 기름과 칠을 해야 하는 것은 비바람을 견디기 위해서다. 건물의 기둥과 서까래엔 반드시 기름과 칠을 해야 하는 것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만약 서재의 내부에 인적이 드물고 비가 들어치지 않아 두 가지 걱정이 없는데도 이러한 전철을 밟으면, 항상 오동기름 비린내와 칠 냄새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어찌 자신의 몸에까지 칠을 하여 종기가 나게 하지 않는가? 석회로 벽을 바르고 표면을 연마하여 매우 매끄럽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다음은 종이로 바르는 것이다. 종이를 바르면 건물의 기둥 및 창살까지 모두 모두 같은 색으로 할 수 있다. 설사 벽에 석회를 발랐더라도 기둥 위에 종이를 붙여야 하는데, 종이의 색과 석회는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벽 사이에 서화가 당연히 없어서는 안 되지만 아주 번잡하게 부착하여 공백을 남기지 않는 것은 또 문인의 속된 사고 방식이다.
 천하만물은 수가 적어야 귀중하다. 보장(步幛)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한 번 봐야 귀중한 것이다. 만약 왕개(王愷)처럼 40리를 걸쳐 설치하거나 석숭(石崇)처럼 50리에 걸쳐 설치한다면,  정오의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수놓은 비단을 나열한 점포에 불과할 뿐이다. 번잡한 곳을 보면 진저리가 나지 않겠는가?
 옛날에 승려 현람(玄覽)이 형주(荊州)의 척기사(陟屺寺)에 갔을 때, 장조(張璪)가 서재의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리고 부재(符載)가 이 그림을 찬양하는 글을 썼으며, 위상(衛象)이 시로 읊었는데 또 한 시대의 삼절(三絶)이라 했지만 현람이 모두 석회로 덮어버렸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현람이 “내 절의 벽에 옴(疥)이 있을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진실로 고승(高僧)다운 말이지만 너무 심했다. 근래 서재의 벽에는 장편의 시문과 짧은 작품을 남김없이 모두 붙여놓아, 번잡한 거리의 객사에 왕래하는 과객 가운데 글을 남기지 않는 이가 없는 것과 비슷하며 빠진 것은 한마디뿐이다.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모년 모월 모일 아무개가 아무개와 여기서 한 번 즐겁게 놀았다.(某年月日某人同在此一樂).”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벽에 돋아난 옴(疥)이므로 나는 현람의 약으로 이를 고치려 한다. 
 벽을 바르는데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도처에서 모두 그러하여 방 안 가득히 일관되게 흰색일 뿐이다. 나는 정체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괴이하여 남몰래 새롭게 하고자 했다. 끊임없이 새롭게 했으며, 또 작은 재주로 도공(陶工)이 되어 도자기를 모방하여 그윽한 서재를 변화시켰는데, 비록 실내에 있어도 신선세계에 있는 것과 같으므로 또 사람의 이목을 일신시키는 일이었다.
 먼저 진한 홍갈색(醬色)의 종이 한 겹을 벽에 발라 바탕으로 삼은 뒤 푸른 콩 색의 운모전(雲母箋)을 손이 가는 대로 찢어 자잘한 조각으로 만드는데, 사각형이거나 납작하거나 짧거나 길거나 삼각형이거나 사각형과 오각형으로써 둥글지 않게만 만들어 손에 잡히는 대로 진한 홍갈색의 종이 위에 붙인다. 하나를 붙일 때마다 반드시 진한 홍갈색 종이가 한 줄 드러나게 하고, 크고 작은 것을 뒤섞여 기울어지거나 똑바르거나 들쭉날쭉하도록 하면, 다 붙인 뒤에는 방 안 가득히 모두 얼음이 갈라진 듯 자잘한 문양이 나타나 가요(哥窯)의 아름다운 자기와 같게 된다. 쪼가리가 큰 것에는 또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자잘한 쪼가리 사이에 배치하면 청동 종에 글자를 새기고, 청동 술통에 글자를 새기며 청동 쟁반에 명문(銘文)을 만드는 것과 같아 어느 것 하나 운치 있는 일이 아닌 게 없다.
 내게 얼마를 썼느냐고 질문하지만, 보통의 종이값 외에 약간의 자르고 붙이는 노력이 더해졌을 뿐이다. 똑같이 돈을 써서 진부한 것과 신기한 것에 차이가 나타나는데, 다만 마음을 좀 더 기울였을 뿐이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心之官則思)”라고 했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마음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종이로 바른 벽에는 판자(板)의 사용을 절대로 피한다. 판자가 건조되면 갈라 터지며, 판자가 터지면 종이가 찢어질 것이다. 나무 막대기로 가로세로 격자를 만들면, 병풍의 골격과 같이 그렇게 만든다. 이전 사람들이 기물을 제작하여 사용할 때 모두 여러 양식을 시도한 뒤에야 성공했으며, 병풍에 판자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 격자를 사용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다.
 풀칠하는 붓의 경우에는 종려나무(棕)을 사용하고 다른 물체는 사용하지 않는데, 그 방법도 여러 번의 시도를 거친 것으로 종려털(棕)을 버리고 다른 물체로 바꾸면 종이와 풀 두 가지가 서로 조화롭지 못하다. 풀칠의 두께가 균일하지 않거나 혹은 붓이 너무 뻣뻣하거나 너무 부드럽게 든다. 이것은 천연적으로 이 소재가 이러한 용도에 쓰이도록 된 것으로서, 사람이 선택하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교묘한 것은 옛 사람의 교묘함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알고 있지만, 옛 사람들도 여기에 크게 노력을 들여 모두 배워서 알게 된 것이며, 태어나면서 안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누가 알까?
 벽 사이에는 공간을 마련하여 벽장을 대신할 수 있다. 이것은 복생(伏生)이 벽에 책을 감추는 일을 모방한 것으로 매우 예스러운 풍치가 있지만, 용도가 옛날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장소에 다른 물건을 놓을 수 있으나 오직 책은 보관해서는 안 되는데, 벽돌의 흙은 성질이 습하여 습기가 차기 쉬우며, 습기가 차면 좀(蠹)이 생겨나므로 썩는 것을 방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이 벽에 책을 감추었다는 것은 아마도 헛소리인가? 내가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동서남북의 기후가 다르므로 이러한 방법은 다만 서쪽과 북쪽 지역이 적당하고, 동쪽과 남쪽 지역에는 적당하지 않다. 서쪽과 북쪽 지역은 지대가 높고 바람이 거세며, 땅을 몇 길 파야 비로소 샘을 찾을 수 있다. 습기는 물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물도 얻을 수 없는데 습기가 어디서 발생하겠는가? 가령 매우 습한 지역이라도 거센 바람이 불면 습한 기후가 건조한 기후로 돌아가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벽 사이에 책을 보관하는 것은 연(燕)・조(趙)・진(秦)・진(晉) 지역에서만 가능하지만, 이 밖의 지역에서는 모두 피해야 한다. 다른 물건을 보관하더라도 역시 때때로 열었다 닫아서 부는 바람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랫동안 닫아놓고 열지 않으면 또 습기가 가득 차서 벌레가 생기는 근심이 있다. 그 속을 텅 비게 하여 받침대만 설치하고 문을 만들지 않아 서가의 형태와 비슷하게 하는 것보다 오묘한 것이 없는데, 쓸모가 있으면서 내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며, 또 반석처럼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교묘한 양식과 훌륭한 계책은 집에서 지내는 데 절대 없어서는 안 된다.
 나에게 또 벽에 등불을 감추는 방법이 있는데, 눈을 보호할 수 있고 기름을 절약할 수 있다. 하나의 물건으로 두 방에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져다가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가난한 선비가 남을 이롭게 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우리가 기나긴 밤에 독서를 할 때 등불이 눈을 찔러 원기와 정신을 가장 많이 소모시킨다. 기와 등잔(瓦燈)에 불을 담아 불빛에 세어나는 구멍 하나를 남겨서 책만 비추고, 나머지 빛은 모두 등잔 안에 가두어 다른 곳을 비추지 못하도록 한 것이 있었다.
 나는 쓸모 있는 불빛을 쓸모없는 곳에 방치하여, 하늘이 만든 사물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괴이하게 여겼다. 그래서 광형(匡衡)이 벽에 구멍을 뚫는 일을 모방해서 담에 작은 구멍을 뚫고 저 방에 등을 설치하여 빛이 이 방까지 비치도록 했다. 저는 저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책을 읽으면, 등은 하나이지만 온 집안의 용도로 사용되고 또 등불 때문에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 수 있으니 오지 등잔과 비교하면 그 이로움이 어찌 10배에 그치겠는가? 
 가난한 선비에게 알려주면 재물을 나누는 그것에 맞먹을 수 있다. 만약 앞으로 내가 많은 자산을 갖게 되더라도, 인색하지 않게 하는 것이 또 이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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