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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한마당 35회 후기

작성자그라미|작성시간17.10.10|조회수468 목록 댓글 3

숲을 이루는 사람들

양인숙

 

숲을 이루는 나무를 심은 일은 참 중요하다.

옛사람들은 10년을 경영할 사람은 과일나무를 심고 100년을 경영할 사람은 상록수를 심고

1000년을 경영할 사람은 은행나무 소나무를 심는다는 말을 들었다.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한 말인지는 알지 못한다.

은행나무 소나무는 그만큼 세월을 이겨내는 나무라는 뜻이다.

그래서 홀로 다짐 한 것이 있다.

나는 소나무를 심어 키우며 천년을 살아남을 글을 쓸 것이다. 독야청청이 아니라 함께 동시동화나무 숲을 이루어 보는 것이다. 마음먹고 글을 쓰며 나무를 키워온 세월이 20여년, 그것도 일반 소나무보다는 귀한 백송 씨앗을 구해 심었다. 산골 집에 심었다가 누군가 가져가는 바람에 애써 키우던 나무를 도둑맞기도 했다.

안되겠다 싶어 큰 화분을 준비하여 광주 집 옥상으로 옮겨왔다. 날마다 물을 주며 기른다는 것이 수월한 일은 아니다. 지금은 20여년 생 10여 그루와 10년생 100여 그루가 나를 즐겁게 한다.

그래서 고성 숲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는 좀체 오지 않았다.

드디어 원고청탁이 왔다. 마침 그 너머가 궁금해세 번째 동시집에 삽화를 그리던 참이었다. 원고마감날짜를 달력에 표시를 해 놓았다. 원고를 보내고 동시집 만드는 일에 온통 정신을 쓰다가 지쳤을 무렵 설악산 봉정암을 가기로 했다. 마침 날씨가 좋아 대청봉까지 목표를 삼았다. 봉정암에 일단 짐을 풀고 대청봉을 향해 올라갔다. 한번은 오르리. 작년에는 봉정암까지였지만. 소청대피소에 올랐을 때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대청봉을 오르기로 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내가 또 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구름 사이를 헤치며 끄덕끄덕 대청봉을 향해 갔다.

우와!” 거기서 나는 보았다. 하늘을.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몇 발작 전까지만 해도 대청봉표지석을 덮고 있던 구름이 문을 열어주듯 파란 하늘이 환하게 비춰주었다. 환희롭다는 것, 다시 잠시 머물고 내려와 봉정암에 도착을 하니 날이 어둑해지고 했었다. 아침 9시부터 걷기 시작 했으니 꼬박 9시간을 걸었던 샘이다. 다리는 아파도 마음은 날아갈 듯 했다.

다음날 동화의 산실 같은 오세암을 거쳐 내려오는 중 택배가 왔다는 것이다. 명절이 가까우니 형제들이 보낸 것이려니 했다. 밤늦게 도착을 하여 풀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 일박 한 사이 집에 도착된 것들을 보다가 상자를 보았다. 어라, 박스를 여는 순간의 정겨움. 편지 한 장. 930일 동시동화나무로의 초대장이었다. 문득 동시 동화나무에 이름을 새겨준다는데 새겨둘 것이 아니라 가져다 심으면 어떨까?

배익천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백송을 키우는데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심어서 잘 가꾸겠다고 하셨다. 얼마나 반가운 문자인지.

백송은 십년을 자라도 많이 자라지 않는다. 옮기기 수월한 십년 생으로 실한 나무로 다섯 그루를 골랐다. 나무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동시 동화 숲으로 이사 가는 거야. 거기서 잘 자라 큰 나무가 되어야 해. 어느 하늘 밑 어디에 있더라도 어떤 환경이 주어져도 너는 잘 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가더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야. 거긴 아주 맑고 행복한 곳일 테니까. 열심히 잘 자라. 너는 할 수 있어

2017930일 나주에 계시는 이정석선생님이 집까지 태우러 오셨다. 늘 웃는 선배님. 시간 맞추어서 이성자선생님이 딸 희정이랑 같이 오셔서 우린 정확하게 2시에 광주를 출발했다. 백수가 된지 딱 한 달째라며 우리를 아주 놀랍게? 빠르게 동시동화나무 숲으로 이동을 하게 해 주셨다.

드디어 도착한 동시동화나무 숲. 배익천선생님이 나오시며 반갑게 맞이하셨다. 백송을 내리며 지금 심자고 했더니 두라고 했다. 내일 우리가 돌아간 뒤, 천천히 나무가 설 자리에 꼭 맞는 장소에 심으시겠다고 했다. 나무를 아끼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려다가 짭박(순간보다 더 짧은 순간을 이르는 전라도 사투리) 마주친 유경환 선생님의 나무와 표지석. 잊고 있던 분을 만난 듯 나는 그 자리에 박힌 듯 섰다. 유경환선생님과의 인연은 조선일보 신춘문예부터 시작 되었다. 2002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나를 뽑아주신 분이다. 그 뒤로 두어번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갔을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돌에 눌려 크지 못한 풀꽃이라면 내가 돌을 치워주겠다

그 말씀처럼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은 없었다. 무식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하나로 맨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도 머리 털며 일어나야 했던 내 상황. 내 발목을 잡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던 시기. 그런 나를 신춘문예에 당선시켜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나를 누르고 있는 돌까지 치워주신다는 말씀. 그러나 나는 그런 그 분의 마음에 보답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2007년 우리 곁을 떠나셨던 선생님. 그러고 보니 벌써 선생님 가시고 십년이다. 왈칵? 돌을 만지며 선생님, 여기 이렇게 계셨군요. 선생님의 마음을 져버리지 않은 글쟁이로 자라겠습니다.’ 다짐을 하며 어서 들어가자는 재촉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때맞추어 나온 동시집 그 너머가 궁금해를 도장만 찍어 갔는데 오시는 분들의 이름을 몰라 이름표를 봐가며 책을 드렸다.

덤벙거리는 사이 시간이 되고 음식이 차려졌다. 예원선생님의 정갈한 음식솜씨는 5년 전 방파제에서 맛을 봤던 터다. 푸짐하면서도 넘치지 않고 수수한 듯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넉넉하게 배를 채우고 나자 제 35회 열린 한마당 잔치가 시작 되었다.

먼저 축하할 일이 있는 작가들을 불러냈다.

다음엔 수록작가들 소개가 있었다. 동시를 쓴 사람, 그림이 있는 동화를 쓴 문정옥, 순간순간이 아깝다는 김문홍선생님, 가족의 협조가 좋은 작품을 낳는다는 이묘신 작가님, 어느 정치인이 읊는 바람에 유명한 시가 되었다는 조동화선생님의 나 하나가 꽃 피어시 낭송

조용히 낭송을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한그루 나무였다.

내가 열심히 기록하는 것을 맞은편에서 보고 있던 유영주작가가 말했다.

지난번에 제가 그랬습니다. 술도 못 마시고 선생님들 하시는 말씀 적느라고. 오늘은 실컷 먹고 놀겠습니다.”

나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적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책 나누어드린 분들을 적느라 이름이 불릴 때마다 적었던 것인데.

이날 특별했던 분은 강원희 선생님과 송정욱이사님, 심광래선생님 이영원선생님이었다. 만나는 인연 중 특별하지 않은 분이 있을까만

강원희선생님은 오래 동안 LA에서 손자녀들을 키우느라 늘 고향이 그리웠단다. 아무리 이곳이 힘들고 외롭더라도 이 땅의 바람으로 동화나무 숲을 다니고 싶다는 말씀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나 역시 두 아이가 다 외국에 있는 관계로. 거기다 2월이면 시카고를 다녀와야 한다. 세 번째 외손자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강원희 선생님은 이번에 재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하여 축하를 받았지만 화가 이중섭의 애련한 사랑을 생각하며 지금의 작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 준 이 땅이 고맙다고 했다.

송종욱 이사님은 책 차례 어디를 봐도 이름 한자 나오지 않은 (맨 뒤에 편집을 마치고이름 석자 달랑 나옴)분인데 [사단법인 동시동화나무 숲]이 되기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은 분이라고 소개를 하셨다. 왠지 모르게 송이사님 앞에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그런 마음이었다.

심광래선생님을 소개하는데 누구와 닮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개그맨 심형래를 닮았다. 바로 위의 형님이란다. 개그맨의 형님을 보다니. 오늘은 참 특별한 날이다. 바보캐릭터의 심형래 형님께도 책을 드릴 수 있어 즐거웠다.

다음은 이영원선생님이다. 처음 이정석선생님이 이 아래 가보지 않겠냐고 해서 따라갔을 때는 그냥 석수장이인줄 알았다. 돌에 이묘신이란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돌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을 보다가 옆 정자로 향했다. 계곡에서 내리는 물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보니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살랑살랑 노닐고 있었다. 계곡을 돌아 다시 와도 누가 와서 보던 말던 돌에 이름 새기는 일에 열중했다. 인사를 할 수도 없었다. 기계를 사용하여 작업을 할 때는 자칫 잘못하면 다칠 수 있기에 조용히 물러 나왔었다. 배익천 선생님이 소개를 해 주어서야 아! 이영원선생님이었구나. 알 수 있었다.

모두의 소개가 끝나는 가 했는데 중대발표가 남아 있었다.

그 동안 추진을 해 오던 단체 설립 허가증이 도착하여 있었다.

[사단법인 동시동화나무의 숲]

이제는 흩어졌다 모이는 그런 작은 모임이 아닌 단체로서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대표이사는 당연히 아동문학의 방파제가 되겠다던 홍종관선생님이고 사무국장에는 이규희선생님으로 정해졌다. 사단법인이 되었다고 일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이 참 많다. 대표이사와 사무국장의 임무 역시 막중하다. 앞으로의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인데 이규희 선생님 그 밝은 표정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흥겨운 술잔치, 양주에 와인에 소주 막걸리,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지만 난 밤술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주 한잔만을 마셨다. 술은 계속 나오고 이야기도 계속되고.

담소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점차 비워지는 자리, 빠지면 빠지는 대로 모이고 모여서 드디어 테이블을 세 개 연결하여 한 팀으로 뭉쳤다. 오늘 동화나무를 심은 이묘신, 박혜선, 배익천선생님 이정석선생님과 한 테이블에 앉았을 때였다. 배익천선생님의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었다.

글을 쓸 때는 한 가지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 이선생님도(이정석) 평론을 쓰는 바람에 그 좋은 동시가 빛을 내지 못했다.”

평론을 쓰다가 보면 내 글을 쓰지 못해요. 남의 글을 보던 잣대를 내 글에 들이대면 더 못 쓰게 되더라구요.”(이름을 잊었음)

맞는 말이다. 이것저것 하다가 보면 내 글이 뒷전이 된다. 실기와 이론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12시가 거의 되었을 무렵 나 역시 슬그머니 자리를 비우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는 벌써 올라 와 자리를 잡고 방바닥과 나란히 한 분들이 많았다.

코고는 소리에 얼른 잠을 이룰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눈을 감고라도 새벽이 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어디선가 풀 깎는 기계소리에 잠을 깼다. 그러나 그 소리는 기계소리가 아니었다. 슬그머니 피해 나와 숙소에서 연결된 나무다리를 건너 숲으로 향했다.

이곳이 처음이라 차근차근 돌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새소리를 듣는다. 길을 따라 걸어가니 산딸나무도서관이 나왔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이지 않을까? 도서관 안에는 먼지가 쌓여 있긴 하지만 책 몇 권이 세워져 있었다. ‘아 이런 도서관도 좋겠구나.’ 나 역시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동시동화나무 숲을 만들어 보고 싶으니까. 입지조건은 여기보다 훨씬 좋은 장소이지만 개발을 할 힘이 미약하여 마음속에만 있는 참이다. 작은 도서관을 돌아 나와 어제 밤 전기가 나가 어둔 길을 걸어 가보았던 자정향실이 보고 싶었다. 아직은 조용한 듯 하여 건너다만 보고 돌아서는데 이영원선생님이 벌써 나와서 작업을 준비하고 계셨다. 안 주무신 것일까? 일어나서 얼핏 듣기로는 새벽까지 담소가 이어졌다는데. 마침 불을 들고 돌 주변을 태우고 있어서 돌을 굽는 줄 알았다.

 

주변에 진드기가 있어요. 지난번에는 샤워하고 보니 발가락 사이에 붙어 있더라고요

아 그래서 불로 진드기를 퇴치하시는 것이구나

내가 있어 말을 걸면 작업에 방해가 될까봐 어제 보았던 계곡으로 정자로 돌아 하청호선생님의 나무가 있는 곳을 돌아 올라오니 열린아동문학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벽까지 이어졌던 술자리가 어수선하여 정리를 하려고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어디 있어?” 이성자선생님이었다.

이쪽으로 왔나 하고 봤더니 없네

글밭을 함께 일구어가는 도반, 동행? 후기를 쓰려면 글샘의 전설을 봐야하니 오라는 것이다.

안내하는 곳으로 갔더니,

! ‘어쭈구리

이건 소중애선생님 단어인데

참 눈이 이럴 땐 좁다. 바로 위에 소중애선생님 나무가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내 기억은 아직 쓸만하다. 나는 어떤 낱말로 사람들에게 기억될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내려왔다.

글샘오솔길을 걸어 내려와 문학관 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정리를 시작하자 희정씨도 이성자샘도 같이 도와 식탁을 말끔히 정리했다.

다시 아침 식탁이 소박하지만 푸짐하게 차려지고 있다. 예원선생님이 불러 가보니 남은 포도를 잘라 씻어야 한단다. 가는 길 목마르지 않게 간식으로 싸 줄 거라고 했다. 포도를 자르는데 감로선생님은 음식물쓰레기처리를 하고 계셨다. 그걸 보면서 참 많은 일을 하시는구나.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를 미리 분리했더라면 저 일이나마 줄여드릴 수 있었을걸. 죄송했다.

 

포도를 봉지 봉지 담아 싸 놓고 나오니 그 동안 나오신 선생님들이 잔디밭에서 환담을 나누고 계셨다. 산딸나무가 왜 산딸나무인지. 열매가 딸기 모양이어서 그런다. 산딸열매가 아주 예쁘게 익었다. 심광래선생님이 부드러운 스트레칭을 하고 계셨다. 온 몸의 힘을 빼고 팔을 발부리에 달까말까 하게 흔드는 것이다. 은근히 시원했다. 느닷없이 잔디밭이 온몸운동을 하는 장소가 되었다. 언제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동심, 경계 없이 편할 수 있는 마음.

 

아침을 먹었다. 숲을 거닐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아쉽지만 온 사람은 떠나야 한다는 진리. 내 자리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풍성하였다.

차를 타기 전, 어제 내려놓은 백송들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전한 말 잊지 말라고. 잘 자라고 있으면 언젠가는 찾아 올 것이라고.

나무 한 그루, 내가 쓰는 글 한 편, 나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분신들이기 때문에.

다 잘 될 거야. 우리 항상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출발 했으니. 갈 때도 소리 없이 안녕!”

나오는 길에 꿈동이를 보고 왔다. 이영원선생님이 디자인을 하였다는 꿈동이가

또 와. 기다릴게. 올 때는 내 부리를 보고 오면 돼

인사를 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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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예원 | 작성시간 17.10.10 선생님
    후기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금빛포구 | 작성시간 17.10.10 양 샘, 쓰시느라 수고한 만큼 아주 리얼하게 감동이 옵니다. 백송이 터를 잘 잡기를 기원해 봅니다^^
  • 작성자초록의자 | 작성시간 17.10.17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글도 주인을 닮았네요. 백송이 잘 자라도록 동동숲에 들를 때마다 저도 마음 한자락 나누겠습니다. 알레르기로 힘들어하는 저를 위해 베푼 마음도 잊지않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시 많이 쓰세요~. -박선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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