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 월. 고린도전서 14:1-19
방언의 한계와 예언의 유익
바울은 '가장 좋은 길'인 사랑을 따르는 구체적인 지
침으로 은사의 활용법을 제시합니다. 특히 방언과
예언을 대조하며 공동체 예배의 본질이 '덕을 세움'
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예언'은 미래를 예측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말로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는 사역을 뜻합니다. 은사 자
체에 우열은 없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에
게만 유익한 방언보다 공동체 전체를 유익하게 하는
예언이 더 훌륭하고 추구할 만합니다. 나의 은사가
나만의 만족에 머물고 있지는 않는지, 아니면 지체
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세워 주고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바울은 악기의 비유를 통해 명료한 소통
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피리나 거문고가 구별된
소리를 내지 못하면 곡조를 알 수 없고, 나팔이 희미
한 소리를 내면 군사들이 전투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배 중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통역 없
는 방언은 예배 시간에 부적절합니다. 공적 예배에
서는 회중에게 뜻이 선명히 전달되도록 말해야 합니
다. 일만 마디 방언 보다 의미가 선명한 다섯 마디 말
이 더 낫다는 바울의 말처럼 모든 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해야 좋은 기도, 좋은 설교입니다. 내
은사와 신앙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사랑의
원리로 소통하는 것이 예배에 적합한 태도입니다. 바
울은 '영으로 기도하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방언은 영적인 뜨거움
을 주지만, 지성이 배제된 기도는 당사자에게도 '반
쪽짜리 신앙 활동'입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조
차 깨닫지 못한다면, 그 영적 경험은 인격적인 변화나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 나 홀로 신비에 취해 있을 때 곁에 있
는 지체는 그 의미를 모르기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습니다. 참된 영성은 나의 영과 마음이 함께 깨어
있고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배려를 포함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 돋보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공동체
에 유익하도록 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