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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 麥香

한국 최초의 김대건신부 생가(솔뫼성지)

작성자안천|작성시간25.10.18|조회수791 목록 댓글 4

김대건신부는 1845년 우리나라 최초로 사제로 서품된 신부이다.

그는 1821년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는 내포 솔뫼(소나무 동산)에서 

탄생했으며, 천주교 박해를 피해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을)으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 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며, 현재는 천주교 솔뫼성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국가지정문화유산인 사적 제529호로 지정(2014년 9월)되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생가 입구

 

또한 그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와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김대건신부(1846년 순교)까지 4대가 살던 곳이다.

김대건신부는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가서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 돼 10월 귀국한다.

 

생가 입구

 

귀국 후 용인 일대에서 사목활동을 하다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리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 때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된다.

 

김대건신부 생가

 

생가 뒷편 소나무 숲에는 김대건신부 동상을 비롯하여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2021년에는 성당을 신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2021년  김대건신부는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

 

성 김대건신부 생가터,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김대건신부 유적, 솔뫼성지 안내판

 

김대건(金大建,1821~1846)신부의 아명은 김재복(金再福),

보명은 김지식(金芝植)이며, 성인명은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이다.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천거로 마카오에서 유학하며 신학을 공부해

사제로 서품되고 귀국하였으나, 단 1년 밖에 사목 생활을 하지 못하고

붙잡혀 1846년(헌종 12) 병오박해 때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김대건신부 생가

 

약 80년 뒤인 1925년에 동료 순교자 78명과 함께 시복되었고,

다시 59년 뒤인 1984년 한국의 동료 순교자 102명과 함께 시성됐다.

 

생가 마루위에 걸린 김대건신부 초상화

 

김대건신부는 임해군과 광해군 형제의 외조부인 해녕부원군 김희철

동생 김희현의 9대손으로 그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신앙을 이어왔고

증조할아버지(김진후), 큰할아버지(김택현), 아버지(김제준)가 순교했다.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 때

 

증조부인 김진후의 세례명은 비오, 아버지 김제준은 이냐시오이다.

1836년 프랑스 파리외방 전교회에서 온 선교사 피에르 모방 신부가 

은이공소에 왔을 때에 세례성사를 받았으며, 모방 신부는 선교지의

주민들을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교육하고 성직서품을 주는

파리외방 전교회의 전통에 따라 신학생 3명을 선발했다.

 

 

당시 선발 기준은 1) 세속화되지 않은 16세 미만,

2) 부모가 가톨릭 신자인터라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배운 사람일 것,

3) 당사자가 성직자가 되려는 뜻이 있어야 함이었다.

 

생가와 우물

 

선발된 사람은 조선 카돌릭교회의 사정을 이해하는 정하상 바오로의

도움을 받았으며, 최양업 토마스, 김대건 안드레아, 최방제 프란치스코

신학생은 부친과 함께 모방 신부가 숙식하던 정하상 바오로 댁에 도착했으며,

이 중 김대건은 두 신학생보다 6개월 늦게 한문과 라틴어를 배웠다.

장독대

 

1834년에 입국하여 활동한 중국인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와 함께

중국과 조선의 국경을 출발하였으며, 중국인 안내원들이 옆에서 돌보았고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하여 비밀리에 수업을 받았는데, 마카오는

명나라 시대부터 포르투칼의 영구 임대 영지였기 때문이다.

 

소나무 숲속의 김대건신부 동상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프랑스어, 라틴어, 신학, 서양철학 등을

가르쳤으며, 신학생들은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산책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러나 세 사람 중 최방제 신학생은 1837년 11월에 16세의 어린 나이에

위열병으로 죽고 말았다.

 

김대건신부 동상

 

1839년에는 기해박해로 김대건신부의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

은사 피에르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

등이 순교하였으며, 조선인 두번째 사제가 되는 최양업의 부모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이성례 마리아도 이때 순교하였다.

복자탁덕(福子鐸德) 안드레아 김대건 지(의) 순교100주년 기념비와

성인 김대건신부 시성기념비

 

김대건은 이런 와중에서도 1845년 중국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됨으로서, 조선인 최초로 천주교 사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김대건신부 생가옆 솔숲

 

김대건신부는 중국 어선들이 조기잡이를 위해 조선 해안에 온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1846년 6월 5일 선교사 입국로 개척을 위한 조선 지도

편지들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보내려 하다가 발각되었는데

황해감영의 조사로 천주교 신부라는 사실이 밝혀져 순위도에서 체포되었다.

 

솔숲속의 조각작품과 그림들(1)

 

체포된 김대건신부의 죄목은 혹세무민과 청나라 밀입국 혐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내포 문화숲길의 조각작품과 그림들(2)

 

조선 조정의 몇몇 대신들도 그의 능력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여겨

천주교만 버리면 살려줄 뿐 아니라 벼슬도 내리고 후한 보상을

하겠다면서 달래 보았지만 김대건은 강력히 거부하였다.

 

순레자 식당 주위 풍경

 

배교는 거부하여도 조정에서 프랑스와의 협상을 요청해 오면

천주교 사제 신분으로 조선 정부를 대신하여 프랑스와의 협상을 좋게

이끌어 내는데 성공만 한다면, 천주교 공인 내지는 이미지가 올라갈

것으로 보고 해볼만한 일이었는데, 프랑스 함대가 자신들의 입장이 담긴

문서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떠나면서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순례자식당

 

조선 조정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배교를 다시 권하였으나,

김대건은 일언지하에 거부하였으며, 결국 사형 판결이 내려졌고,

1846년 김대건신부는 한강 새남터 형장에서 참수를 당하게된다.

 

솔뫼성지 안내판

 

 

김대건신부의 순교 이후 강화도 조약 체결 시까지 조선은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강하게 추진히게 되며, 최초의 조선인 천주교

사제로서 그가 소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시간은 불과 13개월이었다.

 

 

김대건신부가 참수당할 때 담당 관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김대건이 "이 위치면 될까요?"라고 하면, 관리가 "머리를 약간 앞으로

당기시고...  아, 네! 좋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을 받기 전날, 스승인 사제에게

어머니 우르술라의 여생을 보필해달라 부탁도 하였다고 한다.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직전 김대건신부는 

"나의 마지막 시간이 다다랐으니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인과 연락한 것은

나의 종교를 위해서이고 나의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내가 죽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라고 했다한다.

 

성모경당 초봉헌

 

본래 사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4일 뒤에 연고자가 시신을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대건 신부의 사례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경비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당시 17세의 소년 이민식 빈첸시오는

파수 군졸의 눈을 피하여 김대건 신부 순교 40일이 지난 뒤에

시신을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빼내는데 성공했다.

 

성모경당 입구

 

그리고는 시신을 안거나 업으며 험한 산길로 밤에만 걸어서 닷새 만에

자신의 고향 선산이 있는 지금의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도착하여

무사히 안장할 수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미리내 성지이다.

 

 

참수된 후 신자들이 수습한 김대건 신부의 두개골은 납으로

방부처리한 후 보존되었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의 의뢰로 한국

법의학자들이 이 두개골의 측정치를 이용하여 김대건의 생전 모습을

세 번에 걸쳐 복원하였는데 최종복원된 김대건의 얼굴은 흔히 알려진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갸름한 얼굴이었다고 한다.

 

성모 경당 돌담벽의 조각상들

 

지금도 김대건신부의 유해는 미리내 성지에 안장되어 있으며

경당 바로 밑에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김대건신부의 아래 턱뼈는

미리내 성지 내의 조그만 성당인 성 요셉 성당 제단 아래에 안치되어 있다.

 

솔뫼성지 안내석 ~ 한국 최초의 사제 성(聖) 안드레아 탄생

 

치아는 절두산 성지 순교기념관에 분리안치 되었고 기타 여러 뼛조각들도

성유물로 전 세계에 산재되었는데, 가톨릭대 성신교정 대성당 및

이천시 어농성지 성당에도 김대건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2021년에는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일부 유해를 부르키나파소에 안치했다. 

 

성당 입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소녀상

 

2023년 9월 16일, 교황이 거주하는 가톨릭 성지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4.50m 높이에 있는 외벽 벽감에 높이 3.77m,

가로 1.83m, 폭 1.20m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성상이 설치되었다.

 

성당 입구 조형물

 

  한진섭 요셉 조각가가 23년 1월부터 이탈리아 서북부 도시

피에트라 산타에 머무르며 8개월여간 작업하여, 바티칸에 세워진

첫 동양인 석상으로 대성전 외벽에 수도회 창설자가 아닌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은 처음이며,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것도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라고 한다.

 

솔뫼(SOLMOE)

 

솔뫼성당(기억과 희망) 전경

 

김대건신부 탄생 200주년(2021년)을 기념하여 천주교

복합 예술 공간인 "기억과 희망" 이 문을 열었는데, 이 건축물은

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사목 표어인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 에서

영감을 받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 형태가 장미꽃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성당 대성전 입구

 

대성전 내부

 

대성전 좌.우(좌석 날개 부분)

 

입구에서 밖으로

 

성당 입구 십자가

 

장미꽃 모양의 건물

 

 

성당 둘레의 14처(1~13처)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주변의 10월 들녘

 

성모칠고 조각상 입구

 

성모칠고(聖母七苦)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았던

일곱가지 슬픔과 고통을 말한다.

 

제1고 시메온의 예언, 제2고 이집트로 피신,

제3고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으심, 제4고 예수님 십자가를 짐,

제5고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제6고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

제7고 예수님 무덤에 묻히심

 

사제관 등 관리동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는 입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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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해 송(안광수) | 작성시간 25.10.18 김대건 신부 대단하신 분이군요?
    수고하신 덕분에 김대건신부에 자세히 알려주셔서 공부 잘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어요.
  • 답댓글 작성자안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0.19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휴일되세요.
  • 작성자靑麥/권 태화 | 작성시간 25.10.19 안천덕분에 김대건 신부의 출생에서
    순교시까지의 일대기를 상세하게
    알수있어 이제까지 잘몰랐던 일까지
    일었났던일을 공부 잘하고가네?
    안천은 한국의 문화답사 기술에 있어
    보배로운 사람일쎄
    정말 수고 많았네!
  • 답댓글 작성자안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0.19 몇번 벼르다가 시원한 계절이라 다녀왔다네.
    우리나라 천주교 제1 성지답게 아주 잘 조성되어 있었네.
    좋은 하루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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